by하지나 기자
2016.02.27 09:05:00
[이데일리 하지나 기자] 지난 한 주 내내 주요 포털사이트 인기검색어는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이슈로 도배를 이뤘는데요. 지난 23일 김광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 시작된 필리버스터는 닷새째 계속되며 다양한 진풍경과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은수미 의원은 지난 24일 오전 2시 30분부터 12시48분까지 자그마치 10시간 18분동안 연설을 하면서 국내 최장시간을 기록됐습니다.
필리버스터는 ‘해적선’ ‘해적’을 뜻하는 스페인어 ‘필리부스테로’(filibustero)에서 파생된 말인데요. 필리버스터는 소수당이 다수당의 일방적인 표결을 막기 위해 합법적으로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사실상 필리버스터에는 무제한 토론 외에도 규칙발언의 연발, 각종 동의안과 수정안의 연속적인 제의, 출석거부, 총 퇴장 등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의회에서 긴 연설을 통해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방식은 고대 로마 시절에도 있었습니다.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는 정부의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 종종 밤까지 긴 연설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 당시 로마 원로원은 해질녘까지 모든 임무가 끝나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히스파니아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카이사르는 카토의 긴 연설로 개선식을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개선식을 치르기 전까지 로마에 들어설 수 없고, 집정관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포럼에 출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원로원에 부재 출마를 허락하는 청원을 했지만 카토의 필리버스터로 그의 청원은 결국 무산됐습니다.
의회 민주주의가 발달한 미국에서도 필리버스터는 종종 활용됩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필리버스터 사례는 1935년 16시간을 연설한 휴이 롱 루이지애나주 상원의원, 1957년 24시간 18분의 최장시간을 기록한 스트롬 서먼드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상원의원 등을 들 수 있는데요.
휴이 롱 상원의원은 16시간 필리버스터를 하면서 로크포르치즈샐러드 드레싱의 레시피를 읽고 굴튀김 요리법을 이야기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자리를 비우거나 의제와 관계없는 발언은 금지되어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의제와 관계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성경을 읽는다거나, 또 어떤이는 자신의 자서전이나 전화번호부를 읽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이었던 1964년 4월 동료인 자유민주당 김준연 의원의 구속동의안 상정을 저지하기 위해 5시간 19분동안 연설한 사례가 있는데요. 1969년 박한상 신민당 의원이 3선 개헌을 막기 위해 법사위에서 10시간 15분동안 연설한 최장 기록이 있지만 상임위에서 했다는 점에서 좀 차이가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후 무제한 토론제는 1973년에 비상국무회의에서 국회법을 개정하면서 폐지됐습니다. 하지만 2012년 개정된 국회선진화법에 포함되면서 39년만에 부활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의 사례를 살펴보더라도 필리버스터를 통해 법안 통과를 저지하는데 성공한 적이 없습니다. 당장 4.13 총선을 앞두고 선거법 획정안 처리도 시급하구요. 여야간의 대화와 타협이 절실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