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성의 금융CAST]10년전 RCS란 게 있었지…

by김유성 기자
2021.08.14 11:00:00

카카오톡 진입에 맞선 통신사들의 연합 SMS
10년 지난 오늘날, 아는 사람 '거의 없어'
빅테크 VS 금융사 간 대결 양상, 과거 RCS와 비슷
'빅테크 쫓기'보다 '디지털 소비자'에 집중해야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2012년 6월 이동통신 3사는 단단히 뿔이 났다. 카카오톡이 보이스톡이라는 음성통화 서비스를 내놓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자기네 문자 서비스 매출을 ‘갉아 먹는 것’도 모자라 음성통화 시장까지 넘본다고 하니, 위기감이 한껏 고조될 수 밖에 없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이동전화 사용자 대부분은 10초에 21원을 내거나 한 달 200분 정도의 정액제 요금을 썼어야 했다. 해외 지인들과의 통화는 반드시 통신사들이 제공하는 국제전화를 사용해야 했다. 001, 002, 00700 등이다.

그러다 이동통신 3사 중 막내 격인 LG유플러스가 보이스톡 허용으로 방침을 굳히면서 이들의 반발도 힘을 잃었다. 통신 당국도 아닌 통신 기업이 플랫폼 기업의 서비스에 대해 왈가왈부하기 쉽지 않기도 했다.

당장 소비자들의 통화 수요가 보이스톡으로 몰려갈 듯 했지만 일어나지 않았다. 당시 국내 보이스톡은 잡음이 워낙 심해 일반적인 통화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통신사들이 고의로 품질을 다운시켰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신기한 점은 그 난리를 칠 때는 보이스톡 잡음이 심했는데, 몇 년 지나지 않아 굉장히 깨끗해졌다는 점이다. 보이스톡 음질이 일반 전화통화보다도 더 좋은 때도 있었다. 때 마침 4G LTE로 전환되면서 데이터 기반 음성 통화 서비스를 통신사들도 제공했다.

보이스톡에 거세게 저항했던 이유는 통신사들이 갖고 있는 ‘두려움’에 있다. 이들은 2010년 3월 아이폰에서 시작한 카카오톡이 문자서비스(SMS) 시장을 집어 삼키는 것을 눈으로 똑똑히 봤다. 한 회사당 수 천억원의 문자 서비스 매출을 올리고 있었는데 카카오톡이 나오면서 순식간에 내려 앉았다고 생각했다. 통신주 주가의 바닥이 뚫린 것도 이 때부터다.

2010년 이전, 정확히 말하자면 스마트폰 시대 이전 우리의 통신 생활은 어땠을까.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일 때 이동통신 생활을 시작했던 A씨를 예로 들어보자. A씨는 문자 한 통에 30원, 전화 통화 시에는 10초에 21원의 요금이 붙었다. 쓰지도 않고 번호만 유지해도 부과되는 기본료도 1만원이 넘었다.

혹여나 피처폰에 있는 무선인터넷 버튼이라도 누르면 ‘통신료 헬게이트’가 열렸다. kb당 요금을 받다보니, 운세라도 한 번 보면 요금 1만원이 훌쩍 넘었다.

다만 한 가지 고려해야할 점. 통신 설비를 구축하기 위한 막대한 자본을 이들 통신사가 쏟고 있었다는 점이다. 시설 투자에 따른 비용이 고스란히 사용자들의 요금에 전가될 수 밖에 없었다.

굳건할줄 알았던 통신사 위주의 이동통신 서비스 구조는 2007년 아이폰이 미국 시장에서 출시되면서 균열이 갔다. 이른바 스마트폰의 시대다. 그런데 한국 시장은 국내 통신 규제를 이유로 아이폰의 직접 유입이 막혔다. 결과적으로 국내 제조사와 통신사는 아이폰이 가져올 쓰나미를 대비할 시간을 벌게 됐다.

이 같은 시간 벌기는 국내 소비자들에게 긍정적이었을까? 아이폰 대항마로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이 내놓은 폰을 보면 알 수 있다. 바로 옴니아 시리즈다. 피처폰 옴니아는 그런데로 쓸만했지만 스마트폰 옴니아II는 ‘희대의 걸작?’으로 이름을 남겼다. 스마트폰 제품군에서는 삼성전자의 흑역사로 기록될만 하지만, 마케팅과 판매치만 놓고 봤을 때는 가히 신화적이었다.

옴니아2 광고 포스터
카카오톡은 2010년 넘어갈 때 즈음 혼란기에 나왔다. 그해 8월 안드로이드 버전에 출시됐고 삼성전자의 갤럭시 시리즈에서도 쓸 수 있게 됐다. ‘무료로 상대방의 핸드폰에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라는 ‘쌈박한 카피라이트’에 국내 통신 소비자들은 매료됐다. 카카오톡은 단숨에 국민 서비스가 됐다.

이 즈음 국내 통신사 관계자들은 타령 아닌 타령을 했다. 카카오톡 타령이다. ‘카카오톡 저게 끌어간 우리 문자 매출만 수천억원이다’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통화 서비스까지 끌어간다고 하니, 통신사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이럴 때 한 묘안이 떠올랐다. ‘우리가 돈이 없냐, 기술이 없냐, 카카오톡 대체제를 만들자’였다.

이름 하여 나온 게 바로 RCS다. Rich Communication Service의 약자로, 사진도 보내고, 파일도 보내고 단체 채팅방도 만들고 하는 서비스다. 통신사들은 RCS를 만들면 그게 카카오톡 대항마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 RCS는 세계 통신사들의 연합 서비스라고도 볼 수 있었다. 해외 통신사들도 와츠앱 같은 모바일 메신저와의 서비스 경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해외나 국내나 ‘카카오톡류 서비스에 시장을 빼앗길 수 없다’라는 절박함이 있었다.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문자서비스는 이제 카카오톡이 주도한다. 아니, 문자서비스라는 말 자체가 고어(古語)가 될 지경이다.

그래도 통신사는 망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을 거두고 있다. 이들이 수십년간 세워놓은 굳건한 통신망 덕분이다. 앉아서 벌던 이익은 줄었을지언정, 이들이 갖는 중요성은 줄지 않았다.

또 하나. 여전히 사람들은 RCS를 모른다. 통신사들도 구태여 RCS를 내세우지 않는다. 조용히 문자서비스의 진화판으로 우리 생활에서 운영되고 있다. 우리는 문자로 사진을 보내고 웹 주소 링크도 송신한다. 그저 잘 진화된 문자 서비스인 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문자 서비스를 공짜로 쓰고 있다. 10초 통화했다고 20원 내는 일도 거의 없다. 요금 체계는 데이터 중심으로 바뀌었다. 내가 몇 분 통화했냐가 아니라, 내가 몇 MB의 데이터를 썼는가가 요금의 관건이 됐다.

시대의 흐름이지만, 통신사들이 돈을 버는 구조를 전면적으로 개편한 덕분이다. 데이터 중심의 통신 생활 변화에 따라 요금제도 그에 맞춰 바꿨다.

사진 : 이미지투데이
소비자들은 예전보다 더 많은 서비스를 누리고 있다. 통화보다도 메시징 서비스를 더 많이 하고 있다. 지하철 내 영상 청취는 아주 쉬운 일이 됐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하나. 우리가 내는 통신 요금은 10년전, 20년전과 비교하면 더 비싸진 느낌이다. 정확히 보자면 비싼 스마트폰에서 데이터를 많이 쓰는 사람일 수록 내는 요금이 많아졌다.

통신사들은 디지털 시대 들어서도 영악하게 적응했다. 소비자들에 더 많은 서비스 경험을 안겨주고 그에 따르는 요금을 받고 있다. 나름 카카오톡과 경쟁과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어쩌면 카카오의 기업 가치를 보면서 나름 ‘정신승리’하는 것을 터득했을지도 모른다)

10년 전 통신사와 카카오의 대결 양상은 지금 금융사와 빅테크 간의 대결에서도 볼 수 있다. 맥락적으로 여럿 비슷하다. 완고했던 금융사들의 사업 구조가 빅테크의 플랫폼 서비스에 균열이 가고 있다. 예대마진이라는 안정적 사업 구조를 갖고 있던 은행 입장에서는 싫은 상황이다. (누구라도 앉아서 돈 벌다가, 뛰어 다니면서 돈을 벌라고 하면 싫어할 것이다.)

그래도 가만히 있으면 도태될 것 같다. 윗선 경영진에서는 디지털화를 선언했다. 뭐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실제 은행들이 낸 아이디어는 꾸준히 진행된다면 빅테크를 위협할 만한 것들도 여럿 있다. 대환대출 플랫폼도 어쩌면 은행들의 대(對) 빅테크 연합전선일 수도 있다. 10년전 RCS처럼.

다만 ‘우리도 잘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은 막연한 기대감일 수 있다. ‘공존’에 답이 있지 않을까. (등 떠밀려 억지로 나섰지만) 데이터 중심의 요금제를 고안해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한 통신사들처럼...

금융사들의 서비스가 좋아진 것도 사실이다. 우선 이들의 모바일 서비스는 훨씬 편해졌다. 금리 비교도 쉬워졌다. 금융 소비자들이 누리는 편익은 높아졌다. 빅테크의 진격이 없었다면, 이런 편익을 지금 금융 소비자들이 누릴 수 있을까?

한가지 더. 금융사들은 통신사들처럼 우리 사회에 완고하게 뿌리를 박고 있는 ‘인프라’ 기업이다. 망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대체제가 국내외에 널린 빅테크들보다 유리한 부분이다. 20년 후 네이버와 카카오가 존재할까? 자신있게 말하기 힘들다. 그러나 KB와 신한 외 다른 금융사들은 존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