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4대책 ‘현금청산’ 밀고 가는 이유

by황현규 기자
2021.02.18 06:00:00

주택 공급 위한 현금청산…“감정가액=정당보상”
재산권·거주이전 자유 침해 논란 커져
중곡 아파트, 공공시행 철회…“현금청산 부담”
"2·4대책 수정, 정부는 더 부담 될 것"

[이데일리 황현규 기자] 2·4대책의 핵심인 공공주도개발 가능지역의 ‘현금청산’ 논란에도 정부가 ‘보완없이 강행’ 의지를 밝히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가 지난 16일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현금청산 관련 방침을 수정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고,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다음날 “위헌소지가 없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하면서 반발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일부에선 정부의 현금청산 기조가 추후 공공 주도 공급대책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단 우려도 제기한다.

[사진공동취재단]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 강당에서 열린 ‘공공주도 3080+ 대도시권 주택공급 획기적 확대방안 브리핑’에서 발표하고 있다.
현금 청산 논란은 정부가 “2·4대책에 포함된 방식으로 개발할 가능성이 있는 곳에 대책일(2월 4일) 이후 집을 살 경우 입주권을 받을 수 없고, 현금청산 받게 된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2·4대책에 포함된 방식이란 공공주도복합개발과 공공직접시행정비사업 등이다. 역세권·준공업지역·저층주거단지와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구역이 해당한다. 정부가 당장 추산한 대상지역만 서울에 222개구역으로, 이들 지역에 집을 사면 현금보상을 받은 뒤 쫒겨나야 한다는 얘기다.

당장 해당 지역은 거래가 멈추다시피 하면서 재산권 침해·위헌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에 대해 ‘현금 청산은 위헌이 아니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정부 주장의 근거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바로 △공익성 △정당 보상이다.

토지보상법상 현금청산(강제수용)은 공익사업에 한해 이뤄진다. 다시 말해 집값 안정화와 주거복지를 위한 주택 공급은 공익적 사업으로 볼 수 있으며 이에 따른 현금청산도 가능하다는 논리다. 윤성원 국토부 1차관도 “도심 내 주택공급확대 정책은 공익적 필요성에 따른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신효 오세정 변호사도 “공익적 사업의 경우 개인의 사적 재산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금 청산의 법적 논리가 충족될 수 있다”고 했다.

해당 지역이 개발 사업지인지 모르고 매수했을 경우라 해도 국토부는 “감정가액을 기준으로 정당보상을 하기 때문에 정당한 보상”이라고 보고 있다.

법무법인 백하 장혁순 변호사도 “이미 대법원판례상 감정가액을 정당한 보상으로 보고 있다”며 “개발 이익 등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해서 감정가액을 정당하지 않다고 보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미 2·4대책을 기점으로 현금청산 기조를 밝힌 만큼, 매수자들도 보상에 대해 인지를 한 셈”이라고 말했다.

국토부의 설명에도 여전히 위헌 소지가 크다는 법조계 목소리가 적지 않다. 주요 근거는 △예측 불가능성 △선택권 제한 △거주이전의 자유 침해다.

사업지가 지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매수했더라도 추후 개발지역으로 지정되면 현금 청산한다는 게 2·4 대책의 핵심이다. 법무법인 인의 박경준 변호사는 이에 대해 “해당 지역이 공공사업을 할지 안 할지 예측할 수 없는데다가, 해당 집을 산 사람을 모두 ‘투기꾼’으로 볼 수 있는 명분도 없다”며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에서의 결정이 추후 입주권 여부를 판가름한다는 것 자체가 재산권 침해”라고 반박했다.

법무법인 을지 차흥권 변호사도 “이미 정비사업의 근간이 되는 도정법(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에도 ‘재건축·재개발 단계별로 분양권 양도 불허 시점’을 명시하고 있다”며 “기존 도정법을 참고해 대책 발표날이 아닌 구역지정 시점 등으로 구체적인 현금청산 시점을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민간 재건축·재개발과 달리 입주권과 현금청산을 선택할 수 없게 만든 점도 재산권 침해라는 주장이다. 법무법인 정향 김예림 변호사는 “2·4 대책 이후의 매수자에게 입주권 선택 여부를 허용하지 않고, 현금청산만 가능케 한다는 건 선택권 제한”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현금청산으로 매수가 끊겨 집을 팔지 못하는 집주인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 또한 넓은 의미의 거주 이전 자유의 침해”라고 봤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현금청산’ 카드를 꺼내 들면서 당장 거래가 막히자 “공공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나서는 소유주들도 적지 않다. 개발사업에 대한 기대감으로 거래가 늘어야 그만큼 가치가 높아져 개발 이익도 커지는데, 지금 방식은 그럴 수 없도록 차단했기 때문이다.

서울 광진구 중곡아파트는 대책 발표 이후 공공직접시행 정비사업을 적극 검토했으나 최근 입장을 바꿨다. 중곡아파트 소유주 24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136명 전원이 공공직접시행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파트 매수세가 끊기면 시세가 오히려 하락해 개발이익이 상대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봤다

재건축 추진위 관계자는 “사업 단계별로 아파트 가치가 점프하는데, 이를 시세대로 평가하긴 어렵다”면서 “차라리 조합도 시행에 참여하는 기존 공공재건축 혹은 민간재건축으로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공공의 목적을 위해 정당한 보상(감정가액)을 한다해도 절차적으로 반발이 생길 수 있다”며 “현금청산 대상자는 물론이고 집주인들도 매수가 끊기는 데 대한 부담감으로 사업 결정을 보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학과 교수는 “정부가 지금와서 2·4대책을 수정하는 것은 리더십과 정부 신뢰성에 큰 오점을 남길 수 있다”며 “가뜩이나 개발 사업으로 집값 상승에 대한 부담감이 큰 탓에 쉽게 수정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