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브리핑]'양날의 칼' 유동성 파티, 당분간 증시 더 띄우겠지만…

by김정남 기자
2020.12.07 07:20:19

[이번주 뉴욕 증시 전망]
증시 '유동성 파티'…3대 지수 사상 최고
부양책 협상, ECB 회의, 백신 뉴스 주목
돈 더 쏟는 당국…당분간 강세 랠리 펼듯
레벨 부담 점증…조정장 미리 대비할 때
1개당 2만달러 넘을까…비트코인 주목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밥 프린스 최고투자책임자(CIO). (사진=브리지워터)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팬데믹 이후 풀린 유동성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투자를 총괄하는 밥 프린스 최고투자책임자(CIO)가 지난달 말 CNBC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미국 대선 이후 급등한 뉴욕 증시를 두고 ‘유동성 장세’라고 정의 내린 것이다. 그는 브리지워터를 이끄는 레이 달리오 회장에 이은 2인자 격이다.

그는 특히 주식과 금을 콕 집으며 유동성 장세의 수혜를 볼 것이라고 했다. 요즘 미국 주식은 말할 것도 없다. 뉴욕 증시 3대 지수는 막대한 돈을 등에 업고 현재 사상 최고점에 있다.

최근 본지와 단독 인터뷰 한 ‘원조 닥터둠’ 마크 파버는 △연방준비제도(Fed)의 유동성 공급 △재무부의 재정적자 심화 등 두 가지를 초강세장의 배경으로 꼽았다. 파버는 프린스와 마찬가지로 당분간 증시는 오를 것으로 봤다. 하지만 그는 “지금 증시는 버블”이라며 “조정을 대비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특히 증시 내 양극화를 언급했는데, 팬데믹 내내 폭등세를 보이는 빅테크주를 두고 “2000년 닷컴 버블을 떠올리게 할 정도”라고 했다. 예컨대 테슬라 주가(83.67달러→599.04달러)는 올해 들어 무려 615.96% 뛰었다. 파버는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가 처음 3만선을 돌파한 지난달 24일로부터 5거래일 뒤인 지난 2일 오후(현지시간) 인터뷰했다. 다우 지수 내 정보통신(IT) 종목의 비중은 22.8%로 단연 최대다.

파버는 다만 에너지주, 은행주 등은 오히려 거품이 빠졌다고 판단했다. “마치 두 개의 증시가 있는 것 같다”는 게 그의 말이다. 증시가 버블 상태에 있지만, 옥석 가리기를 통해 조정장에 대비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두 투자 거물처럼 월가 내에는 당분간 증시를 오를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우위에 있다. 이와 동시에 레벨이 너무 높기 때문에 언제든 차익 매물이 쏟아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부쩍 많아졌다.

이번주 뉴욕 증시의 키워드 역시 유동성이다. 투자자들은 중앙은행과 정부의 돈 풀기 뉴스에 집중할 전망이다.

무엇보다 증시가 몇 달간 그토록 바랐던 코로나19 추가 부양책 타결이 목전으로 다가왔다. 지난주 3대 지수가 모두 1~2%대 오른 건 합의가 임박했다는 소식 때문이다. 당초 협상만큼 2조달러 안팎의 큰 규모는 아니다. 민주당은 2조달러 이상 입장에서 한발 물러나 9000억달러 규모를 주장하고 있다. 이에 공화당이 어떻게 반응할 지가 관건이다. 월가 인사들 사이에서는 당장 이번주 타결할 수 있다는 관측이 조금씩 나온다. 굳이 연말까지 가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3대 지수가 추가 상승할 수 있는 힘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오는 10일 주간 실업보험 청구 건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고용 부진이 심상치 않아서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달 비(非)농업 일자리는 24만5000개 증가했다. 블룸버그의 전문가 전망치(46만개 증가)에 비해 20만개 이상 작았다. 코로나19 충격에 따른 실업난이 지표로 계속 나타날 경우 추가 부양책 협상은 탄력을 받을 수 있다. 현재 미국의 실업난은 역사상 최악 수준이다.



중앙은행의 움직임도 관심사다. 연준은 다음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여는데, 이에 앞서 이번주 유럽중앙은행(ECB)이 통화정책회의를 연다. ECB가 팬데믹긴급매입프로그램(PEPP), 장기대출프로그램(TLTROs) 확대 등 추가 조치를 취할 것은 기정사실화돼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지난달 중순께 ECB 포럼에서 “PEPP 등의 효과가 있었다”며 “추후 몇 주간 정책 결정에 사용할 많은 정보를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 추가 부양을 강하게 시사한 것이다.

ECB의 공격적인 행보는 연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지난주 고용 지표를 본 이후 “노동시장 개선세가 명백히 둔화했음을 보여준다”며 “이번달 FOMC에서 채권 매입 만기를 연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CB가 시장 예상보다 ‘약한’ 정책을 내놓지 않는 한 강세 재료로 작용할 수 있다.

백신 뉴스는 실시간 체크할 필요가 있다. CNN이 입수한 미국 정부의 ‘워프 스피드 작전’ 문서를 보면, 미국 식품의약국(FDA) 내 백신·바이오 약제 자문위원회(VRBPAC)는 10일 회의를 열고 화이자 코로나19 백신의 사용 허가 여부를 FDA에 권고한다. 모더나 백신 허가 여부를 논의할 자문위는 17일 열린다. 냉정히 말해 처음 백신 낭보가 나왔을 때처럼 강세장을 이끌 재료는 아니다. 다만 승인 과정의 현실화를 눈으로 확인하면 증시를 떠받칠 재료로 충분하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현재 미국 내 코로나19 충격은 여전하다. ‘최악의 겨울’ 관측 속에 사실상 일상이 마비된 상태다. 그럼에도 당장 증시에 악재로 작용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악재이기 때문이다.

실물경제에 돈이 돌지 않다 보니 역설적으로 금융시장에 호재로 작용하는 측면 역시 있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미국 화폐유통속도(명목GDP/M2)는 1.104로 사상 최저다. 3분기의 경우 1.146으로 전기 대비 소폭 올랐지만, 역사상 최저 수준이라는 건 같다. 화폐유통속도가 낮다는 건 풀려 있는 돈이 실물경제 생산 활동에 제대로 쓰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른바 ‘돈맥경화’다. 분모인 광의통화(M2)가 단연 역대 최대라는 변수가 있지만, 그래도 풀린 유동성이 실물경제에서 돌지 않고 금융시장으로 흘러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이 동떨어져 움직이는 건 단기적으로 불가피하다.

그러나 레벨이 너무 높다는 게 자명한 점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언제든 차익 실현 매물이 나올 수 있다는 건데, 현재의 유동성 파티 분위기로는 이마저 ‘건강한 조정’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주 또 지켜볼 필요가 있는 상품은 비트코인이다. 지난달 30일 1비트코인당 1만9684.00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증시에서 차고 넘친 돈이 비트코인까지 띄운 것이다. 이번주 1개당 2만달러를 돌파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비트코인은 3년 전인 2017년 말 2만달러에 육박한 뒤 불과 1년 만인 2018년 말께 3000달러 초반대로 떨어진 아픈 기억이 있다. ‘투전판’ 오명을 썼던 이유다. 이번 역시 비트코인이 과연 가치투자의 수단으로 봐도 되냐는 논란이 많다. 과거보다는 하나의 상품으로 인정하는 기류가 월가 일각에서 생긴 점은 분명하지만, 부담을 가질 만한 레벨이라는 인식이 더 우위에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을 이끄는 래리 핑크 회장은 최근 한 컨퍼런스에서 “비트코인이 글로벌 금융시장의 한 자산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아직 검증되지 않은 시장”이라고 했다. 파버는 “2018년 말 비트코인 매수를 추천했던 적이 있다”면서도 “지금은 너무 오른 것 같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