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은의 지구 한바퀴]⑤마야 문명의 신비 `치첸이사`

by김재은 기자
2015.05.30 09:00:00

[이데일리 김재은 기자] 신혼여행 일정을 짜며 파타고니아 다음으로 고민을 많이 했다. 툴룸에 갈 것이냐 칸쿤에만 있을 것이냐.

파타고니아 지역을 추천한 후배가 툴룸을 꼭 넣으라고 신신당부했지만, 한 달간 지구 한 바퀴를 돌기로 한 우리는 툴룸을 포기하고, 칸쿤 4박을 택했다. 대신 일일투어로 1000여년전 마야문명의 ‘치첸이사(Chichen itza)’를 가기로 했다. 다녀온 분들의 강력추천이 있기도 했고, 세계 7대 불가사의의 도시, 마야문명을 직접 눈으로 보고자 함이었다.

칸쿤에서 남서방향으로 205km 떨어진 곳에 세계 7대 불가사의 치첸이사가 자리한다. 사진=구글맵
아침 일찍 호텔 로비서 픽업 차량을 타고 이동했다. 문닫은 작은 수족관 앞에선 여러 호텔에서 온 사람들을 목적지별로 다시 나누곤 버스에 태워 각각 출발하는 구조였다. 역시나 치첸이사를 가는 사람이 제일 많다.

버스를 타고 두시간 정도 갔을까. 세노테(Cenote)에 내려준다. 자유롭게 수영을 하고, 점심 뷔페를 먹으면 된다고 했다. 세노테는 낮은 편평한 석회암 지역에서 볼 수 있는 함몰된 구멍에 지하수가 모여있는 천연 우물을 말한다. 마야문명이 꽃 핀 유카탄 반도 칸쿤에만 수천개가 자리하고 있다. 지금 보니 우리가 간 세노테는 가장 크고 유명한 익킬(ikkil) 세노테는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나 독특한 경험이었다는….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계단을 따라 걸어 내려가면 신기하게도 파아란 우물같은 아지트 공간이 나온다. 특히 위에 뚫린 구멍으로 쏟아져 내리는 햇빛은 신비감을 더한다.

세노테. 구멍 사이로 강렬한 햇빛이 들어온다. 사진=김재은 기자
수영을 못하는 나로선 그저 발 좀 담그고 사진 좀 찍고 말았다. 구명튜브가 있긴 했지만, 물이 너무나 차가워서 오래 있기 힘든 탓이다. 신랑은 여기저기 수영하며 돌아다닌다. 30분정도 놀았을까. 춥기도 했고, 배도 고팠던 우리는 샤워를 하고 2층에 마련된 야외 뷔페에서 점심을 먹었다. 버스에서 내릴 때 이미 옷에 초록색 동그란 스티커를 하나씩 붙여줬는데, 이게 점심 뷔페 이용권이다. 맥주도 한잔 마시며 닭다리와 함께 멕시칸 음식을 배불리 먹었다.

신비스러운 세노테. 지금 봐도 참 멋지다. 사진=신랑
칸쿤에서 서남쪽으로 205km 떨어진 치첸이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7~13세기 후반의 대도시 유적이다. 전성기인 900~1000년경에는 유카탄 지역의 광대한 지역을 총괄하는 국제도시로 번영했다고 한다. 마야문명은 중앙아메리카의 멕시코 남동부, 과테말라, 유카탄반도를 중심으로 번영했던 문명으로 약 2000년전부터 생겼을 것으로 추측된다. 300~900년까지 문명의 황금기였으나 고 마야문명은 10세기에 멸망했다. 이후 일부 마야유민이 유카탄 반도로 이동, 신마야문명을 세웠다.(위키피디아)

드디어 치첸이사에 닿았다. 치첸이사는 마야어인 치첸잇하에서 유래했는데, 치(chi)는 마야어로 입, 입구를 뜻한다. 첸(Chen)은 세노테(Cenote)를 의미하고, 잇(it)은 마법사를, 하(za)는 물이라고 한다. 치첸잇하의 원래 의미는 ‘마법사의 물이 있는 세노테의 입구’란 뜻이다.

쿠쿨칸 피라미드에 그림자가 드리워 뱀이 내려오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사진=구글 이미지
적지 않은 입장료를 내고 치첸이사 유적지로 들어섰다.(물론 일일투어비에 입장료도 포함돼 있다.) 한 눈에도 가운데 보이는 피라미드가 시선을 압도한다. 800년전 만들어진 엘 카스티오(El castillo)로 불리는 쿠쿨칸(kukulcan)피라미드다. 높이 24m에 45도 각도로 이뤄진 피라미드는 각 면에 91개(4면 364개)의 계단이 있고, 중앙에 1개를 포함해 365개의 계단으로 이뤄져 태양의 신전으로 불린다. 특히 춘분과 추분날 오후 3시부터 5시사이에 북쪽에 위치한 뱀머리에 그림자가 드리우며 뱀이 피라미드에서 내려오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한다. 쿠쿨칸의 뜻은 ‘깃털 달린 뱀’이다. 뱀을 신성시 여겼던 마야인들은 뱀이 만물을 재생시키고 풍요로움을 준다고 믿었다.



치첸이사 볼경기장 사진=구글 이미지
쿠쿨칸 피라미드 못지 않게 치첸이사에서 유명한 게 볼경기장(Ball Court)이다. 중미에서 가장 크다는 길이 168m, 너비 70m의 이 경기장에선 볼게임 경기가 펼쳐졌다. 한 팀에 7~8명씩 두 팀으로 나뉘어 경기장 벽에 높이 달려있는 링에 손과 발을 사용하지 않고, 무릎과 팔꿈치, 엉덩이를 이용해 고무공을 통과시켜 득점을 하는 게임이다. 특이하게도 이긴 팀의 주장이 진 팀의 주장에게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이긴 팀 주장은 죽음으로써 신에게 가까이 가는 것으로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신기하게도 볼 경기장에서 박수를 치면 여러 번 울리며 다시 되돌아온다. 몇 번을 쳐 봐도 신기하다. 아, 쿠쿨칸 피라미드 계단 정면에서도 박수를 치면 새 울음처럼 독특하게 반향된다.

열심히 설명하던 가이드가 치첸이사를 둘러 볼 시간을 40분정도 준 것 같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도 찍고, 구경도 하고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치첸이사가서 나무마스크 하나 사오지 않은 게 제일 후회된다. 달랑 캐리어 1개씩 들고 봄, 여름, 겨울을 오가려니 짐을 줄이는 게 가장 중요한 미션이었던 탓이다. 가격은 1만~2만원선이었던 것 같다. 물론 큰 것은 더 비쌌겠지만…. 바가지가 심하다고 하니 흥정을 잘 해서 하나 장만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우리가 치첸이사에 다녀왔다는 흔적은 몇 장의 사진들과 따로 모았던 치첸이사 노점에서 산 마그넷 2개 뿐이다.

화려한 색감의 마스크들. 하나 사오지 못한 게 아쉽다. 사진=김재은 기자
마야인들은 숫자 0을 발견하고 20진법을 사용하는 등 수학과 천문에 능통했다고 한다. 하지만 10세기 갑자기 멸망했다는데, 내란설, 가뭄설, 토양황폐설 등이 분분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지 않고 있다. 다시 버스에 오른 우리는 치첸이사에서 조금 떨어진 마야의 도심 바야돌리드에 내렸다. 가장 유명한 성당이라는데 그냥 허름한 성당 느낌. 이미 하루종일 버스타고, 뙤약볕에 지낸 지라 더 이상은 감동이 없다. 피곤함뿐이다. 대충 사진을 찍고 버스에 올라 그대로 골아떨어졌다.

피라미드와 볼경기장 외에도 해골의 재단, 천개의 기둥, 전사의 성전, 천문대 등은 스쳐 지나갔거나 보지 못한 것 같다. 아니 정확히는 전사의 성전만 확실히 봤을 뿐 다른 것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치첸이사에 대해 좀 더 공부하고 갔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더 진하게 남는다. 하루를 꼬박 써야 하지만, 멕시코, 특히 칸쿤까지 가서 안 보고 올 수 없는 치첸이사. 상황만 된다면 버스투어가 아니라 좀 여유있게 둘러보는 일정을 추천하고 싶다. 근처 익킬 세노테에서 수영도 즐기며….

치첸이사가 인상적이었던 만큼 고대 마야인들이 왜 멸망했는지 참 궁금하다.

올해 초 미국 라이스대학 연구팀은 과거 마야문명이 약 100년간에 걸친 가뭄으로 인해 멸망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정말 가뭄때문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