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4지 한장에 책 1500권이 들어있다?

by조선일보 기자
2010.01.08 10:14:00

美 주요 신문·잡지사, 전자책 단말기 ''스키프 리더'' 만들어
"온라인 서점이 왜 뉴스 유통 독점하나"… 아마존에 도전장
커지고… 얇아지고… 약간 휘어져… 신문·잡지 구독에 최적, LG가 디스플레이 공급

[조선일보 제공] 전 세계 200개 잡지와 15개 일간지, 38개 주간지를 보유한 미디어그룹 허스트가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 전자책 단말기(e-리더) '스키프 리더(Skiff Reader)'를 처음 선보이고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그동안 온라인 서점 업체 아마존이 주도하던 e-리더 시장에 콘텐츠를 직접 생산하는 신문·잡지사들이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e-리더는 휴대폰보다 2~3배 정도 큰 화면을 가진 '독서 전용 전자기기'로, 수십~수천권의 책을 저장해 읽거나 매일 신문·잡지를 내려받아 구독할 수 있다. 신문·잡지·출판사의 입장에서는 e-리더가 종이로 만들어진 신문·잡지·도서를 대체·보완해줄 새로운 시장이다. e-리더 시장은 2007년 말 아마존이 '킨들(Kindle)'을 처음 선보인 후, 2008년 100만대, 2009년 300만대 규모로 급성장했다. 올해도 2배 이상 커질 전망이다.

▲ 미국 신문·잡지사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e-리더‘스키프 리더(Skiff Reader)’는 지금까지 나온 e-리더 가운데 가장 크면서도 두께는 가장 얇다. 이 제품은 LG디스플레이가 생산하는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패널(구부러지는 탄력성을 가진 화면)을 사용한다./스키프 홈페이지


스키프 리더는 지금까지 아마존·소니·반스앤노블 등 e-리더 제조 및 유통업체가 내놓은 모든 종류의 e-리더보다 훨씬 크면서 두께는 가장 얇다. 스키프 리더는 가로 9인치(228.6mm)·세로 11인치(279.4mm) ·두께 0.27인치(6.8mm)며, 무게는 498g이다. 화면 크기는 11.5인치(292.1mm)다.

그동안 e-리더가 일반 도서의 다운로드 및 독서에 초점을 맞춘 데 비해, 스키프 리더는 신문·잡지 구독에 최적화한 제품인 것이다. 핵심 부품인 화면(패널)은 LG디스플레이가 개발해 납품한다.

현재 e-리더 시장을 이끄는 아마존의 '킨들 시리즈(킨들·킨들2·킨들DX)'의 대표 제품인 킨들2는 6인치의 화면 크기에 두께 9.14mm, 무게 289g이며 1500권의 책을 저장할 수 있다. 소니의 '소니 리더 데일리 에디션'이나 반스앤노블의 '누크'도 비슷하다.

▲ (사진 왼쪽)사진은 연내 판매될‘스키프 리더’의 완성품 모습. 스키프 리더의 크기는 가로9인치 (228.6mm)·세로 11인치(279.4mm)로, A4용지(가로 210mm·세로 297mm)와 거의 똑같은 사이즈다, 스키프의 두께는 지금까지 출시된 e-리더 가운데 가장 얇은 6.8mm다.(사진 오른쪽)/스키프 홈페이지

또 스키프 리더는 미국 이동통신사 스프린트의 통신망을 이용해 언제 어디서나 책을 다운받을 수 있으며, 무선랜(WiFi·단거리 무선 접속망) 접속도 가능하다. 이 제품은 스프린트의 1000개 휴대폰 소매점에서 판매할 예정이다. 허스트와 스프린트측은 연내 출시한다고 밝혔다. 스키프측은 "판매 예정가는 밝힐 수 없지만, 경쟁력 있는 가격이 될 것"이라고 했다. 경쟁제품 킨들2·킨들DX의 가격은 각각 259달러와 489달러다.



스키프 리더의 개발 프로젝트는 허스트가 주도했으며, 뉴스코퍼레이션·타임·콩드나스트(Conde Nast)·메레디스(Meredith) 등 4개 신문·잡지사가 협력 관계를 맺었다. 이들 5개 신문·잡지사는 전 세계에 1억4000만명의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신문·잡지사가 이렇게 전자 제품을 직접 만들어 내놓은 이유는 단말기 판매 수익을 노렸다기보다, 자사의 뉴스 콘텐츠를 지키기 위한 측면이 강하다. 이는 2000년대 인터넷에서 소비자의 뉴스 소비가 늘어났을 때, 구글과 같은 검색엔진 및 포털업체들이 뉴스 유통을 독점했다. 이들이 신문·잡지사의 뉴스 콘텐츠를 헐값 또는 무단으로 활용해 수익을 내면서 오히려 신문·잡지사들은 수익 감소를 경험했다.

실제로 e-리더 시장의 60% 이상을 장악한 아마존의 킨들은 그동안 이용자에게 받은 신문 구독료 가운데 30% 정도만 신문사에 줬으며, 킨들을 통한 신문 구독자의 정보도 신문사에 주지 않았다. 킨들이 신문의 e-리더 유통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기 시작한 것이다.

▲ (사진 왼쪽)미국에서 777개 서점을 보유한 최대 서점 체인 반스앤노블은 지난 10월 e-리더‘누크(nook·사진)’를 보였다. 미 국 언론들은 반스앤노블이 오프라인 서점으로서 온라인 서점 아마존과 맞수라는 점에서 누크에‘킨들 킬러killer)’라 는 별칭을 붙였다, 아마존은 2007년 말 킨들을 처음 선보인후 지난해 킨들2와 킨들DX를 잇따라 내놓았다. 특히 킨들DX(사진)는 화면 크기가 기존 제품(킨들·킨들2)보다 큰 9.7인치로서 아마존은 이 제품이 앞으로 신문·잡지의 e-리더 구독시장을 이끌 것이라고 밝혔다.(사진 오른쪽)/블룸버그뉴스

미국·영국·호주 등 전 세계에서 월스트리트저널과 같은 신문 33곳을 보유한 뉴스코프의 루퍼트 머독 회장은 "아마존은 킨들에서 신문을 구독하는 이용자들을 신문사의 독자로서 취급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해왔다.

신문·잡지사들의 아마존 견제는 최근 들어 본격화하고 있다. 뉴스코프는 최근 아마존의 경쟁자인 소니에 뉴욕포스트·마켓워치·월스트리트저널 플러스 등 킨들에 없는 자사의 뉴스 콘텐츠를 독점 제공하기로 했다. 소니는 뉴스코프와의 계약에서 신문사의 수익 배분율을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독자 정보도 신문사와 공유하기로 했다.

일본에서는 고단샤 등 50개 출판사들이 '잡지 콘텐츠 디지털추진 컨소시엄'을 결성하고, 2011년까지 독자적인 e-리더를 만들어 아마존의 킨들에 대항하기로 했다. 소니·샤프·파나소닉 등 일본 전자제조업체들이 이들 잡지사와 손을 잡았다. 국내에서는 교보문고가 KT, 인터파크가 LG텔레콤과 협력해 e-리더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신문사와 출판사들이 단말기 제조업체와 제휴를 맺고 독자적인 e-리더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