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왜 마약류에 관대할까? [김기자의 여의도경제카페]
by김유성 기자
2024.08.10 11:30:00
최근 마약 관련 범죄 급증, 정부 단속도 强
공급책만 잡는다면 가격만 올리는 역효과
서구유럽에선 마약시장 내 수요 줄이는 접근 중
최근 펜타닐 등 값싼 마약의 등장, 고민은 더 커져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한국이 마약 청정국이 아니란 것은 이제 상식이 됐습니다. 얼마 전에는 대학 연합 동아리에서 마약을 유통하고 흡입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국회에서도 마약과 관련한 수많은 법률안이 발의됐습니다. 지난 21대 국회를 기준으로 봤을 때 ‘마약’이란 단어로 국회 검색되는 발의안 숫자는 64개나 됩니다. 22대 국회 들어서는 7개 법률안이 발의됐습니다. 22대 국회가 시작한지 만 두 달이 지났다는 점을 생각하면 적지 않은 숫자입니다.
21~22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 대부분은 마약류 관리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중 일부 법률안은 투약자들의 교화를 목적으로 두고 있습니다. 이들을 치료하고 관리하자는 취지가 반영된 것이죠. 단속도 중요하지만 투약자들에 대한 관리도 중요하다고 보는 시각이 예전보다 강해졌다는 점에서, 서구 선진국의 모습과 닮아가는 듯 합니다.
단순히 생각하기로 마약의 ‘마’가 ‘마귀 마(魔)’일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마약(痲藥)에서 마는 ‘저리다, 마비되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다소 중립적인 뜻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뭉뚱그려 ‘마약’이라고 부르는데, 성분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가 됩니다. 법적으로 마약류는 코카인, 아편, 헤로인 등을 뜻하고 프로포폴, LSD, 필로폰 등은 ‘향정신성의약품’에 분류됩니다. 마리화나나 하시시가 포함된 ‘대마류’도 여기에서 구분됩니다.
국가는 당연히 이들 ‘마약류’를 엄격히 단속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당초 사용 목적이 진통제와 같은 의약용에서 시작된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과용하지 않게 써야 하는데, 세상이 정부 당국자의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죠. 국가의 통제망이 완벽하지 못하다는 얘기입니다.
따라서 음성적 시장은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선에서 가격이 형성되고 거래가 일어난다는 것이죠. 우리나라와 중국은 이 시장 규모를 줄이기 위해 공권력을 동원해 공급자를 규제합니다. 수요자에 대해서도 범법자에 준해 처벌합니다. 19세기 아편전쟁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중국은 마약류 소지자에게도 강한 중벌로 처벌합니다.
그러나 이 같은 단속과 처벌이 효과를 낼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유는 여럿 있는데 (암거래되는) 마약류 시장은 대게 (사회적으로) 합리적이지 못한 수요자와 공급자가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시장 거래에 있어 고려되는 조세 등 국가 규제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수요와 공급에 따른 가격 결정의 원리만 존재할 뿐이죠. 단, 많은 경우 공급자 우위의 시장이 되곤 합니다.
왜냐, 이곳 시장에서 (마약류에 중독된) 수요자는 가격이 높아져도 구매를 줄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매자가 되는 것이죠. 이를 두고 고상한 경제학 용어로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 비탄력적이다’고 합니다. ‘가격을 아무리 높여도 수요가 둔감하게(덜 탄력적으로) 반응한다’라는 얘기입니다.
| 비탄력적인 수요곡선(Inelastic demand)과 탄력적인 수요곡선(Elastic dema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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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수요자가 있는 시장을 공급자가 가만히 바라만 볼까요? 그렇지 않겠죠. 일반 시민이라면 법적 제재에 대한 두려움으로 감히 뛰어들지 못할 것입니다. 허나 마약류 공급책은 그 수준을 뛰어넘은 범법자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설령 A라는 마약상을 경찰이 잡아들였다고 해도, 제2의 A는 얼마든지 나옵니다.
예컨대 경찰이 거대 마약조직을 발본색원했다고 가정해봅시다. 시장에 투입되는 중독성 강한 마약류의 양은 ‘단기적으로’ 감소할 수 있습니다. 공급은 줄어들고 수요는 늘어나니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라가게 되는 것이죠. 제2, 제3의 공급자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여지가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작았던 조직이 더 커지는 것이죠.
아마도 이런 맥락에서 마약류 단속을 해도 효과가 ‘그때뿐’일지 모릅니다. 게다가 펜타닐처럼 염가에 환각성은 더 큰 마약류가 나오고 있습니다.
유럽 등 마약류가 흔해진 나라에서는 ‘비싸진 가격’이 가져올 파급에 주목하는 모양새입니다. (어쩌면 마약류가 너무 흔해져 ‘강력한 단속’이 별 효험을 못가져온다고 본 것일 수도 있습니다.) 비싸진 마약류를 얻기 위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고 보는 것이죠.
지난 2008년에 나온 논문 ‘마약 단속 정책의 의도치 않은 효과, 범죄증가’(대한정치학회보 16집 1호, 2008년 6월 : 47~66, 임기홍)를 보면 중독성이 강한 마약류의 단속 정책은 범죄 발생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정부의 강력한 단속은 (우리나라의 경우) 중독성이 약한 마약류(향정신성 의약품) 정도에서 효과가 있다고 본 것이죠.
이런 이유로 마약류 암거래 시장이 큰 서유럽 국가들은 수요자에 대해서는 교육과 치료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마약류 시장에서 수요자를 줄이려는 정책이죠. 2차 범죄를 예방하면서 수요 감소에 따른 마약류 시장의 축소를 노리는 것이죠. 우리 정서로는 이해가 안되는 ‘서구 국가들의 마약사범 관리’ 행태가 경제학적으로는 납득이 되는 것이죠.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미국 경찰의 행태입니다. 시장원리를 중요시하는 나라라고 하는데, 수요자보다는 공급자를 더 강력히 단속하고 처벌하는 빈도가 높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혹자는 ‘마약 공급책이 대게는 유색인종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합니다. 시장 논리도 그들의 뿌리 깊은 편견 앞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나 봅니다.
시장 얘기가 나왔으니 조금 더 이야기를 풀어나가 보겠습니다. 시장의 강점은 경쟁을 통해 기술 혁신을 이루고 재화와 용역의 가격을 낮추는 데 있습니다. 시장 원리에 근거한 자본주의 경제가 이론만 화려한 사회주의 경제를 이긴 결정적 이유입니다.
한 예로 1990년대 컴퓨터 한 대 값을 생각해 봅시다. 당시 486DX 컴퓨터 한 대를 사려면 수 백만원의 돈을 줬어야 했습니다. 1990년대 초중반까지는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나 컴퓨터를 집에 들여놓고 썼죠. 그런데 지금은 훨씬 싼 값으로 더 좋은 성능의 PC를 씁니다. 이제 컴퓨터는 사치재가 아닌 보편재의 범주에 들었습니다.
이런 원리는 마약류 시장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펜타닐처럼 값은 싸면서도 중독성이 강한 마약류의 등장이 예입니다. 그나마 마약류 시장의 진입 장벽과 같았던 ‘가격’마저 무의미할 지경이 됐습니다.
경기권의 한 지역구 의원도 비슷한 우려를 했습니다. 자기네 지역구에서 최근 들어 마약류에 환각돼 돌아다니다가 경찰에 신고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했습니다. 아파트와 같은 주거밀집 지역이다보니 특히 눈에 더 띌 수밖에 없다고 했죠. 미국 내 빈민 마약류중독자들이 길거리를 헤매는 것이 결코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마약 보편화 시대에 우리 국회도 세심한 입법 접근이 필요해 보입니다. 무조건 강하게 단속하고 ‘쳐 넣었던’ 과거와 달리 너무 많이 바뀌어 있는 것이죠. 확실히 (정부 입장에서) 과거보다 마약류 관리가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한국은 마약 청정국이다’를 자부심으로 알고 살아왔던 저의 입장에서도 최근의 변화는 반갑지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