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용의 세계시민] 석가모니와 연꽃

by고규대 기자
2023.05.26 08:31:31

인제 백담사의 형형색색 연등 물결(사진=연합뉴스).
[이희용 다문화동포팀 자문위원] 인도 북부 카필라국의 왕비 마야부인은 룸비니동산에서 무우수(無憂樹) 가지를 잡고 아이를 낳았다. 이름은 싯다르타였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었는데, 발자국마다 연꽃이 피어났다. 이때부터 연꽃은 불교의 상징이 됐다.

보리수 밑에서 위대한 깨달음을 얻어 석가모니(샤카족의 성자란 뜻)로 불린 그는 한 제자가 연꽃을 바치자 아무 말 없이 이를 들어 대중에게 보였다. 모두 어리둥절해 있을 때 가섭만이 그 뜻을 깨닫고 미소를 지었다. 염화시중(拈花示衆)이란 고사성어를 낳은 이 일화로 연꽃은 불교의 진리와 동격이 됐다.

석가모니가 무슨 뜻으로 연꽃을 들어 보였고, 가섭은 어떻게 이해했는지 알 수는 없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졌기 때문에[이심전심·以心傳心] 말이나 글로 설명할 수도 없다[불립문자·不立文字]. 다만 연꽃의 특징이나 덕성을 보고 짐작할 뿐이다.

연꽃의 첫 번째 특성을 나타내는 말은 처염상정(處染常淨)이다. 진흙탕에서 자라면서도 오염되지 않고 고결한 자태를 뽐낸다. 중국 북송의 유학자 주돈이도 ‘애련설(愛蓮說)’을 지어 이런 덕목을 칭송했다. 표면의 나노 구조에 따른 연잎의 자정작용은 현대 과학으로도 입증돼 ‘연잎효과(Lotus effect)’로 명명됐고, 섬유나 도료(塗料) 등 각종 신소재 개발에도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이를 석가모니불의 생애에 빗대 설명하기도 한다. 다른 모든 부처는 더러운 땅 예토(穢土)를 싫어해 사바세계를 버리고 극락정토에 살고 있는데, 석가모니는 다섯 가지 더럽고 나쁜 일로 가득찬 오탁악세(五濁惡世)에 태어나 살면서도 그것에 조금도 물들지 않고 해탈해 부처가 됐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꽃과 열매가 함께 피고 맺는 화과동시(花果同時)다. 보통의 초목은 꽃이 먼저 핀 뒤 지고 나면 열매를 맺는다. 꽃은 원인이고 열매는 결과인데도 어리석은 중생은 이를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연의 열매는 꽃잎 속 꽃받침에 들어 있다.

천지만물은 모두 크든 작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브라질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뉴욕에 태풍을 일으킨다는 ‘나비효과(Butterfly Effect)’가 이를 잘 설명해준다. 모든 원인과 결과가 필연적으로 연관돼 있다는 인과설은 시간적으로도 적용된다. 불교에서는 과거의 업(業)으로 현생을 받고, 현재 짓는 업에 따라 미래의 과보(果報)를 받는다고 한다.



경남 함안연꽃테마파크에는 아라홍련(阿羅紅蓮)이란 이름의 연꽃이 자라고 있다. 2009년 성산토성에서 신라 목간(木簡) 발굴작업을 하다가 700년 전 연씨를 발견했는데, 이 가운데 몇 개가 싹을 틔운 것이다.

이처럼 연씨는 잘 썩지 않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조건만 맞으면 발아한다. 연꽃의 세 번째 특성인 종자불실(種子不失)이다. 불가에서는 석가모니 가르침처럼 영원하다는 것에 비유해 설명한다.

27일 서울 조계사를 비롯한 전국의 사찰에서는 석가모니의 탄생을 기뻐하고 그의 가르침대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봉축 법요식이 열린다. 지난 20일 서울 종로에서는 코로나19로 중단됐던 대규모 연등 행렬이 4년 만에 펼쳐졌다.

연꽃은 석가모니의 생애와 가르침을 상징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4월 초파일에 매다는 연등(燃燈)도 연꽃 모양으로 즐겨 만든다. 조계종의 영문 홍보지 제호가 ‘로터스 랜턴(Lotus Lantern)’이고 연등회의 영문 명칭도 ‘라이팅 랜턴 페스티벌(Lighting Lantern Festival)’과 ‘로터스 랜턴 페스티벌’을 함께 쓴다.

연등회는 온 국민이 즐기고 세계인이 주목하는 축제다. 평등과 자비와 지혜의 가르침은 불교 신도가 아니더라도 모두에게 큰 울림을 준다. 불기 2567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연꽃의 덕성을 생각하며 각기 소망을 담아 마음속 등불을 하나씩 켜보면 어떨까.

◇글=이희용 다문화동포팀 자문위원(전 연합뉴스 한민족센터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