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내로남불로 시작해서 내로남불로 끝났다

by김성곤 기자
2020.12.23 06:00:00

내로남불, ‘촌철살인 대가’ 박희태 유명 어록
여야 이중잣대 비꼬은 ‘내로남불’ 여전히 유행
21대 국회 접어들며 내로남불 현상 유독 심화

박병석 국회의장이 지난 1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정원법 개정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종결 찬반 투표에서 찬성180표로 토론 종결을 선언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여야를 통틀어 한국 정치사에 빛나는 ‘명(名) 대변인’ 출신이다. 13대 국회 시절 민정당 대변인을 지냈을 때 거친 독설이 아니라 유머와 해학이 넘쳐났던 논평으로 유명했다. ‘내로남불’과 ‘총체적 난국’이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내로남불은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180도 입장이 달라지는 현실정치의 속성을 정확하게 꿰뚫는 말이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대가였던 박 전 의장이 남긴 가장 유명한 어록이다.

올해 한국정치를 돌이켜보면 여전히 내로남불이 판을 치고 있다.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도 유독 정치권만이 소모적 투쟁을 반복했다. 국내 대학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 역시 내로남불과 유사한 의미의 ‘아시타비’(我是他非)‘였다. 21대 국회 원구성 협상 과정이나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여야 모두 상황을 아전인수(我田引水)식으로 해석했다. 여야 모두 반대를 위한 반대는 여전했고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하지 못하는 이중잣대를 앞세웠다. 반성과 성찰은 아예 없이 아무런 명분도 없이 손쉽게 입장을 뒤집었다.

내로남불의 구체적인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 정도다. 여야 모두 자유로울 수 없다. 다만 매를 더 맞아야 할 대상은 거대 여당인 민주당이다. 올해 민주당이 보여준 화려한 변신은 그야말로 현란하다. 주요 이슈에 대한 입장은 상황 논리에 따라 바뀌었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현 국민의힘의 전신인 미래통합당이 비례대표용 위성정당 창당에 나서자 온갖 비난을 퍼부었다가 180도 입장을 뒤집었다. 또 내년 4월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는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선을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며 무공천 규정이 명시된 당헌도 뒤집었다. ‘원칙없는 승리’보다 ‘원칙있는 패배’를 선택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계승하는 정당이 맞나 싶다. 아울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는 야당에 보장했던 비토권을 삭제한 것은 물론 야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반대토론)를 보장했다가 수적 우위를 앞세워 종결투표에 나선 무력시위도 선보였다. 이밖에 현 정부의 대표적인 실정인 부동산정책 난맥상과 관련해서는 아직까지도 이전 보수정부를 탓하거나 저금리를 핑계로 내세운 것도 볼썽사나운 내로남불 사례다.

민주당의 내로남불은 끝이 없다. 청문회 정국이 한창이지만 과거 야당 시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특히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 이미 위험수위를 넘었다. 높아진 여론의 검증대를 통과할지도 미지수다. 민주당은 여전히 눈치를 보고 있다. 만일 민주당이 야당이었다면 국민의힘보다 더 강력하게 변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지 않았을까?

여야의 내로남불이 판을 칠수록 국민들은 피곤하다. 반대로 역지사지가 넘쳐나면 국민들은 정치권을 향해 박수를 칠 것이다. 87년 민주화 이후 권력은 10년 단위로 여야를 넘나들었다. 이제 내로남불은 그만해도 될 때다. 새해에는 여야의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보고 싶다. 그게 국민이 편안해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