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봤습니다]재활용 선별장 가보니…우유 썩는 냄새에 어질, 재활용 절반은 폐기

by윤여진 기자
2017.08.10 06:30:00

중량제봉투 속 음료융기 악취 진동
깨진 그릇 조각 쏟아져 손 다칠뻔도
땅콩껍질, 낙엽, 화분흙까지 재활용 내놔
선별한 재활용품도 절반은 소각 또는 매립

본지 윤여진 기자가 지난 8일 서울 영등포구 성산대교 남단에 있는 재활용 선별장에서 흔히 페트병이라 불리는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PET)를 분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데일리 윤여진 기자] “PP(폴리프로필렌·polypropylene)는 거기 넣으면 안 되는데….”

커피 전문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테이크 아웃’ 전용 플라스틱 컵 뚜껑을 집어들자 강모(62)씨가 소리쳤다. 재활용품 쓰레기 선별 작업 경력 10년차 베테랑인 강씨는 신참인 기자에게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PP가 PET 보다 더 두꺼워. 탄산음료수병이나 생수병만 걸러내면 된다”고 알려줬다. 강씨는 “PP역시 재활용 대상이긴 해도 실제론 소각하는 게 현실”이라며 “PET보다 재질이 두꺼워 물 세척 때 둥둥 떠 사람이 일일이 세척해야 하기 때문에 분리수거로 얻는 이익보다 비용이 더 든다”고 설명했다.

재활용 쓰레기 선별장 체험에 나선 지난 8일 서울 영등포구 성산대교 남단 작업장. 작업장 책임자가 팔 토시와 앞치마를 내밀었다. 기본 복장에 마스크와 손수건 등 ‘옵션’까지 지급해 준 책임자는 “요즘 같은 여름에 팔 토시를 안 하면 피부병이 생길 수도 있다”고 겁을 줬다.

가만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 폭염에 고생깨나 하겠구나 싶었다. 이날도 낮 최고 기온이 32도까지 올라가며 찜통 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문제는 날씨가 아니었다.

컨베이어 벨트 위로 끊임 없이 쏟아지는 재활용 쓰레기 더미 옆에 서 있은 지 1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현기증이 일었다. 우유 썩는 냄새가 코를 찌른 탓에 머리가 띵하다 못해 지끈지끈 아파왔다. 우유갑이나 음료 용기 등은 물로 헹궈 말린 뒤에 내놓아 하는데 그렇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작업에 나선 지 30분쯤 지나자 후각은 아예 마비되다시피했다.



강씨는 “젊은 양반이 이런 냄새 맡기 쉽지 않지”하며 어깨를 토닥였다. 그는 “8시간 동안 작업장에서 일하고 나면 ‘우유에 술 탄’듯 한 냄새가 온 몸에 밴다”며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퇴근길 전철 안에서는 여전히 민망하다”고 했다.

컨베이어 벨트 위 재활용 쓰레기 중엔 ‘도대체 왜 이런 걸 재활용으로 배출했나’란 의구심이 드는 것들이 꽤 많았다. 땅콩 껍질이나 낙엽, 화분 흙 등 누가 봐도 재활용이 되지 않는 진짜 쓰레기 들이 재활용 쓰레기 더미에 섞여 있었다.

심지어 깨진 사기 그릇 조각들이 쏟아지기도 했다. ‘날카로운 재활용품을 분리수거 할 땐 신문지 등에 싸서 배출하라고 배웠는데….’ 좀 더 주변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영등포구 재활용 선별장엔 하루 35t가량의 재활용 쓰레기가 들어온다. 주로 관내 주택가에서 배출한 것들로 한 달 기준 950~1000t의 재활용 쓰레기를 이곳에서 분리수거한다.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면적 기준이 1000㎡ 이상인 주거시설은 자체적으로 재활용 쓰레기를 선별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아파트 단지가 이 기준에 해당된다.

선별장은 지난 2014년 경기 부천시에 수돗물을 공급하던 취수장의 유휴 부지에 들어섰다. 구청은 선별장에 체육시설 등 구민들의 여가 시설을 더해 체험 학습이 가능한 자원순환센터를 만들었다. 이 곳에는 작업자 30명, 구청이 직접 고용한 환경미화원 50명, 시설관리직원 20명이 함께 근무하고 있다. 영등포구 청소과 관계자는 “선별된 것 중 실제 재활용되는 건 45% 정도이고 나머지 50%는 소각, 5%는 매립된다”고 설명했다.

작업한 지 두 시간 정도 지났을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컨베이어 벨트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듯한 착시 현상이 나타났다. 이곳 작업자들은 1시간 근무를 한 뒤 15분 동안 의무적으로 쉬게 돼 있다. 땀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이마에 손수건을 묶었던 한 작업자는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휴게실로 자리를 옮겼다.

낮 12시, 드디어 이날 목표치인 세 시간을 채웠다. 할당된 작업 분량을 마친 뒤 환경미화원 전용 샤워실을 찾았다. 땀에 전 몸을 씻은 뒤 작업자들과 함께 먹은 점심은 진수성찬 못지않은 ‘꿀맛’이었다.
서울 영등포구 성산대교 남단에 있는 재활용 선별장에 곧 폐기처리될 불가연성의 폐합성 수지가 차량에 실려 있다.(사진=윤여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