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4명 중 1명 ‘파견·용역 비정규직’…해법찾기 팔 걷은 정부

by박종오 기자
2017.05.18 06:00:00

한전 한수원 한국철도 공사공사 등 10개 공기업 긴급회의
하반기 경영평가 전면 개편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박종오 기자] 공공부문(公共部門) 일자리의 질 개선 작업이 부쩍 속도를 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2일 ‘비정규직 제로(0) 시대’를 선언하자 정부도 공공기관 비정규직 문제 해법 찾기에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공공기관 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 공공정책국은 17일 한국전력공사, 한국수력원자력, 인천공항공사, 한국철도공사, 한국공항공사 등 비정규직 인력이 많은 10개 공기업 담당자와 긴급회의를 열고 비정규직 현황 파악 및 개선 방안 등을 논의했다.

대통령 발언 닷새 만에 대책 마련에 착수한 것이다. 기재부 고위관계자는 “정부가 그간 공공부문 비정규직 개선 대책을 추진했지만, 결과적으로 아웃소싱(외주화)을 통한 비정규직이 늘고 작년 서울 구의역 사고 등 이로 인한 문제도 발생해 구체적인 실태를 파악하자는 것”이라며 “대통령이 12일 방문한 인천공항공사도 대표적으로 아웃소싱 인력이 많은 회사”라고 말했다.

현재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은 전체 직원 3명 중 1명꼴에 달할 만큼 많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인 ‘알리오’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중앙정부 산하 공기업·준정부기관·기타공공기관·부설기관 등 공공기관 355곳의 임직원은 총 33만 3821명이다.

이 중 36.2%인 12만 737.22명이 비정규직이다. 해당 기관이 직접 채용한 비정규직이 3만 7408.22명, 파견·용역·사내 하도급 등을 통해 간접 채용한 비정규직(소속 외 인력)이 8만 3328명에 달한다.

실제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직원 수는 이보다 많다. 기관이 직접 고용한 비정규직 중 하루 8시간 미만을 일하는 시간제 노동자의 경우 인원을 소수점 단위로 세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하루 8시간을 일하는 전일제 노동자를 1명으로 잡고, 하루 2시간 근무 노동자는 0.25명, 4시간 근무 노동자는 0.5명으로 계산하는 식이다. 공공기관에서 하루 4시간만 일하는 단시간 노동자가 2명이라면 통계상으로는 1명만 채용한 것으로 집계한다는 얘기다.

정부가 특히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회사 업무를 외부 업체에 맡기는 아웃소싱이다. 공공기관이 직접 고용한 비정규직을 줄이는 대신, 파견·용역 같은 간접 채용을 대폭 늘리는 추세여서다.



실제로 공공기관 355곳이 직접 고용한 비정규직은 지난 2012년 말 4만 5317.64명에서 지난해 말 3만6499.17명, 올해 1분기 3만 7408.22명 등 4만 명 밑으로 내려갔다. 반면 아웃소싱을 통해 간접 고용한 비정규직(소속 외 인력)은 2012년 말 6만 3117명에서 작년 말 8만 2264명, 올해 1분기 8만 3328명으로 2만 명가량 급증했다.

정부가 그간 상시·지속적인 업무를 하는 기간제 비정규직 노동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축소 대책을 추진하자, 각 기관이 정원과 인건비 관리 대상이 아닌 간접 고용 비정규직을 늘리는 ‘풍선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 대책도 우선 이런 간접 고용 인력을 줄이는 데 방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재부는 공기업과의 회의 및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올해 하반기 중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로드맵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공공부문 간접 고용 실태 조사도 맡긴 상태다. 기재부 고위관계자는 “중앙정부와 중앙부처 산하 공공기관뿐 아니라 지방정부, 지자체 산하 지방공기업 등에도 간접 고용 비정규직이 많다”며 “고용노동부 비정규직 태스크포스(TF) 등 관계부처가 앞으로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당장 올해 정부가 편성하려는 추가경정예산과 내년 본예산에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비용이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 로드맵에는 문 대통령 대선 공약에 따라 상시·지속 업무 및 안전·생명 분야 업무 종사자의 정규직 전환 원칙,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신규 채용 제한 방침 등이 담길 것으로 전망된다. 공공기관 경영 평가 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실적을 지금보다 많이 반영하는 것도 정부가 추진할 과제다.

현재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청년 미취업자의 고용 실적, 경력 단절 여성 고용 노력 등의 평가 항목이 있지만 비계량 항목(정성평가)인 데다 가중치도 낮다. 공공기관 관계자는 “이런 일자리 항목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고 숫자로 평가하지도 않기 때문에 대부분 만점을 받는다”고 전했다. 앞으로는 이를 계량 항목으로 바꾸거나 가중치가 늘어날 전망이다.

다만 정부 내부적으로는 고민도 깊다. 임신·단기 프로젝트 등으로 불가피하게 비정규직을 고용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정규직 일자리 창출 숫자에 따라 공공기관을 줄 세우는 후유증도 우려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연구·개발(R&D)이 설립 목적인 공공기관을 일자리 실적으로 우선 평가한다면 기관의 정체성과 경영평가 취지가 맞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투자실장은 “공공기관 경영 평가 기준을 바꿔 일자리를 늘리는 건 단기적인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궁극적인 일자리 해법은 아니다”라며 “정부가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AI), 생명공학 등 국가 산업의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면서 민간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