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간 가슴으로 키운 자식 22명…"상처딛고 성장하는 모습 뿌듯"
by김보영 기자
2017.05.11 06:30:00
주부 박옥자씨, 위탁 부모로 지낸지 어느덧 14년
입양 후에도 또렷한 기억…공허함·그리움에 속앓이
"상처 딛고 자라는 모습에 포기할 수 없어"
| 박옥자(51·앞줄 가운데)씨가 위탁 보호를 하다 해외 입양을 보낸 지민(10·앞줄 오른쪽)양이 지난달 양부모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만나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박옥자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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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보영 기자] “첫 아이 동민(가명)이, 호주로 입양돼 이제 10살이 된 지민(가명)이, 매일 울어서 마음을 아프게 했던 명수(가명)….”
위탁 부모로 일하는 주부 박옥자(51·여)씨. 그는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이들 이름과 얼굴, 저마다의 특징까지 또렷하게 기억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씨가 위탁 부모가 된 건 지난 2004년 지인을 따라 동방사회복지회 가정위탁지원센터를 방문한 일이 계기가 됐다.
당시 초등학교 2, 4학년 두 아들을 둔 박씨는 여가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이나 부업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였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어느덧 ‘업’( 業)이 되다시피 했고 현재 맡고 있는 아이까지 포함해 지금껏 위탁 아동 22명을 돌봤다.
첫 위탁 아동은 태어난 지 보름도 안 된 사내아이 동민이었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져 가정위탁지원센터에 맡겨진 동민이는 박씨의 품에서 7개월 정도 자라다 미국 시카고의 한 가정에 입양됐다. 박씨는 “위탁 가정에 보내지는 아동들 대부분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신생아 혹은 세 살이 채 안 된 영아”라며 “한창 사랑받고 조심스레 키워져야 할 나이에 이 가정 저 가정 전전하며 정을 붙이고 이별을 반복해야 한다는 게 마음이 아팠다”고 돌이켰다.
위탁 아동들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세 돌이 될 때까지 박씨 가족 품에서 자랐다. 박씨는 “대개 아이를 맡기는 친부모나 입양 가정 쪽에서 위탁 기간을 사전에 결정하지만 입양 절차가 더디거나 친부모 측 사정이 나빠져 위탁 기간이 길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설명했다.
위탁 기간이 길어질수록 아이를 떠나보내는 일이 쉽지 않다고 했다. 아이들이 박씨를 ‘친엄마’로 여겨 이별을 힘들어 하기 때문이다.
박씨는 “아이들도 자신이 떠나는 순간을 직감한다. 해외 입양을 위해 출국하던 날 공항 가는 차 안에서 팔목을 부여잡고 ‘엄마’라고 부르면서 내내 울기도 했다”며 “아이들뿐만 아니라 남겨진 우리 가족들도 한동안 공허함과 그리움에 힘들긴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박씨는 그러나 “잠시나마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아이들이 상처를 딛고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보람을 느껴 위탁 부모 역할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떠나 보낼 아이들을 기억하고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백일과 돌마다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는다. 앨범은 2부를 만들어 하나는 입양 가정에 보내고 나머지 한 부는 직접 보관한다. 아이들을 보낸 뒤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내보며 그리움을 달랜다.
박씨는 또 다시 아이와의 이별을 준비 중이다. 14개월 간 친딸처럼 기른 위탁 아동 유빈(가명·20개월·여)이가 이달 말 미국 보스턴의 한 가정으로 입양간다.
박씨는 “밝고 온순하며 가족들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싶어하는 사랑스러운 아이”라며 “친부모의 심정으로 돌봤는데 떠나보내려니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더 좋은 가정에서 마음껏 사랑받고 자랄 수 있다면 더이상 소원이 없겠다”고 말했다.
파양이 반복돼 여러 가정을 전전하는 과정에서 가여운 아이들이 또다시 상처를 받지 않게 하는 게 박씨의 유일한 바람이다.
박씨는 “새 대통령도 선출됐는데 한 번 버림받은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