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박형수 기자
2015.07.24 06:30:00
통상임금·산재재해 범위 확장 등 사회적 영향력 행사
간통죄 폐지, 부부간 강간 인정 등 변화된 사회상 반영
[이데일리 박형수 기자] 법원의 판결문은 세상을 지키기도 하고 바꾸기도 한다. 특히 최종 판결을 내리는 대법원과 법률의 위헌성 여부를 가려내는 헌법재판소는 시민의 일상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월26일 국가가 법률로 간통을 처벌하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위헌이라고 선고했다. 간통죄를 처벌하는 형법 241조가 제정된 지 62년 만에 폐지됐다.
검찰은 위헌 결정 당일 간통죄로 수감 생활을 하던 9명을 석방했다. 수사를 받고 있던 598명에 대해서는 혐의없음 결정을 내렸고, 1심 재판을 받고 있던 335명에 대해서는 공소를 취소했다. 법원은 항소심이나 상고심 재판을 받고 있던 28명에 대해 무죄를 구형했다. 수사나 재판을 받던 1770명이 처벌을 면했다.
법조계에선 간통죄 폐지로 배우자 간통에 대해서 형사적으로는 처벌할 수 없게 됐기 때문에 ‘징벌적 손해배상(위자료)’의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리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정당 해산, 의원직 상실로 이어지기도 했다. 헌재는 지난해 12월 19일 통합진보당(통진당)에 대한 해산결정을 내렸다. 비례대표 부정경선과 중앙위원회 폭력사태, 지역구 여론조작 사건 등 통진당 활동이 법치주의와 선거제도를 부정한다고 판단했다. 민주주의 이념에 반한다고 본 헌재는 통진당 해산을 명령하면서 소속 국회의원 5명의 의원직 상실도 함께 선고했다. 의원직을 상실한 지역구 3곳에서 재보궐 선거가 치러졌고,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의원이 의정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대법원도 실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문제에 대해 최종 결론을 내놓는다. 최근 눈에 띄는 판결로는 노사 간에 첨예한 논쟁거리였던 통상임금 사건, 성적 자기결정권을 새롭게 해석한 부부 강간사건 등이 있다.
2013년 12월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953년 근로기준법을 도입한 이후 60년 만에 처음으로 통상임금의 개념을 규정했다. 대법은 통상임금에 대해 정기, 일률, 고정적으로 지급되는지를 따져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정기상여금과 최소한도가 보장된 성과급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했다. 또 기술이나 자격보유자에게 지급되는 자격 수당, 근속기간에 따라 지급액이 결정되는 근속수당, 부양가족 수와 상관없이 지급되는 가족수당은 모두 통상임금에 포함됐다. 대법이 통상임금의 판단 기준을 내놓은 뒤 관련 소송이 잇달아 진행됐고. 일부 사업장은 통상임금 범위를 자발적으로 재조정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노사협상을 통해 대기업은 10개사 가운데 4개사가 통상임금 범위를 다시 조정했다.
2013년 부부 사이에서도 강간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 판례가 처음으로 나왔다. 당시에는 흉기로 위협하는 경우에만 부부 강간죄를 인정했다. 올해 초 대법원은 흉기 위협이 없어도 부부 강간을 인정한 첫 판결을 내놨다.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했다는 점에서 이목을 끌었다.
하급심에서도 때론 의미 있는 판결이 나온다. 서울중앙법원과 서울행정법원은 잇달아 시민의 집회 자유를 지켜주는 판결을 내놓았다.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단체를 대상으로 정부는 집회로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은 시민단체의 손을 들어줬다. 자칫 막대한 배상금을 물게 됐다면 앞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겠다고 집회를 주최하는 단체가 사라질 수도 있었다. 행정법원도 유령 집회로 집회의 자유를 제한해선 안 된다고 판결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의 백혈병을 산업재해로 인정한 행정법원 판결도 노동계에서는 의미 있는 판결로 꼽는다. 그뿐만 아니라 학습지 교사를 노동조합법상 노동자로 인정해 법의 보호를 받도록 한 것도 행정법원 판결이다. 국가 권력기관의 전횡을 막아주는 것 역시 법원의 역할 가운데 하나다. 서울고등법원은 수사기관의 요청만으로 인터넷 포털업체가 개인의 통신자료를 넘기는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법원은 해당 포털업체에 개인 정보 제공 여부와 어느 범위까지 개인 정보를 제공할지에 관한 세부적 기준을 마련해 개인정보를 보호하려는 충분한 조처를 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판결이 난 후 네이버, 다음, 카카오 등은 수사기관에 고객 정보를 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