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잘나가는 '순하리'의 말 못할 탄생비밀

by안승찬 기자
2015.05.19 07:56:19

존재감 없던 부산·경남 겨냥한 제품으로 작전 성공
서울 시장 확대엔 주저..기존 17도 소주 잠식 걱정
"14도부터 와인과 영역 겹쳐..본격 판매확대 쉽지 않을듯"

(사진=롯데주류 제공)
[이데일리 안승찬 기자] ‘처음처럼 순하리’의 인기가 예사롭지 않다. 소문은 무성한 데 제품을 구하기 어렵다. 국내 감자칩 시장을 뒤흔든 ‘허니버터칩’의 초기 현상이 비슷하다는 관전평이 나온다.

예상 밖의 관심과 호응을 받고 있지만, 처음처럼 순하리에겐 탄생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처음처럼 순하리는 애초부터 부산 경남 지방을 겨냥해 출시된 제품이다. 부산 경남 지역은 지역소주인 무학의 ‘좋은데이’가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처음처럼은 부산 경남 지역에서 존재감이 없었다.

유독 저도주의 인기가 강한 부산 경남 시장을 뚫기 위해 롯데주류가 전략적으로 내놓은 제품이 바로 처음처럼 순하리다. 좋은데이가 알코올 도수 16.9도인데, 처음처럼 순하리는 그것보다 더 낮은 14도를 파격적으로 채택했다. 유자과즙을 넣어 맛도 단 편이다.

일단 작전은 성공적이다. 처음처럼 순하리는 부산 대학가를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순하리의 돌풍으로 처음처럼의 부산 경남 지역 점유율은 3~5%p 높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고민은 서울 등 전국으로 판매를 확대할지 여부다. 판매 요청이 쇄도하자 롯데주류는 지난달 말부터 기존 강릉공장에 이어 군산공장에서도 순하리 생산을 시작했다. 이달 말 서울 음식점에서도 일부 판매가 시작될 전망이다.

하지만 롯데주류는 본격적인 판매 확대를 주저하는 분위기다. 처음처럼 순하리가 처음처럼 등 기존 소주 제품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많이 내려왔다고 하지만, 아직 처음처럼의 알코올 도수는 17.5도다. 14도인 순하리와는 격차가 매우 크다. 만약 처음처럼 순하리가 소주 시장을 잠식할 경우 자칫 소주 시장 전체의 알코올 도수가 급속히 무너질 수 있다. 17도대의 처음처럼 역시 타격을 받게 된다.

더 큰 고민은 소주 시장이 14도로 내려가면 와인과 직접적인 경쟁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간 소주는 양주와 와인 시장 사이에서 독자적인 시장을 구축했지만, 14도부터는 와인과 영역이 겹친다.

17도 이하의 술에 대해서는 TV 광고를 허용하고 있지만, 롯데주류는 아직 처음처럼 순하리의 TV 광고 계획이 없다. 시장 반응이 좋다고 무조건 판매를 늘리기에는 고민이 많다는 뜻이다.

소주업계 한 관계자는 “처음처럼 순하리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서울 지역에서 공격적인 판매에 나서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이라며 “14도라는 제품은 기존 소주 시장을 흔들만큼 파격적인 알코올 도수인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