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를 부탁해]②반년만에 표류하는 무상보육

by김상윤 기자
2012.08.16 08:56:40

정치일정과 재정상황에 따라 하루 만에 급조
불법적 운영 등 보육업계의 도덕적 해이 발생
무상보육 혜택 못받는 사각지대 존재

[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열악한 민간 어린이집과 미어터지는 국공립 어린이집. 보육 전문가들은 열악한 보육환경에 대해 이같이 일갈했다.

처음부터 하루 만에 급조된 무상보육이었다. 지난해 연말 국가 예산을 최종적으로 심사하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소위 내내 별 얘기 없다가 마지막 날인 12월31일, 갑자기 증액된 3600억여 원의 보육료가 논란이 됐다. 실제 보육수당이 필요한 만 3~4세엔 터무니없이 부족한 금액인 만큼, 상대적으로 인원이 적을 것으로 예상한 만 0~2세를 대상으로 책정됐던 것. 다음해 4월 총선을 앞둔 터라, 정치일정과 재정상황을 고려한 생색내기라는 비판이 거셌다.

부모들의 발걸음은 빨랐다. 보육시설에 굳이 안 보내도 되는 영아들을 어린이집으로 보냈다. 집에서 혼자 키우면 손해라는 생각 때문이다. 정부 예상과 달리 영유아 어린이집 취원 경쟁은 대학입학보다 더욱 치열해졌다.

그럴수록 지방재정은 구멍이 났다. 만 0~2세 무상보육 정책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같이 돈을 대는 ‘매칭펀드’로 지원된다. 지방정부가 예산을 마련하지 못하면 보육료 지원 사업은 중단된다. 무상보육을 시행하고 있는 25개 자치구 가운데 20곳(80%)은 다음달 무상보육 관련 예산이 모두 소진될 예정이다. 지자체들은 국고 지원 없이는 운영이 어렵다면서, 무상보육 중단이 불가피하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운영상 편법도 나타났다. 일부 민간 어린이집 운영자들이 집에 있는 아이들을 마치 어린이집에 다니는 것처럼 조작해 정부 보조금을 야금야금 타갔다. 비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정식교사가 아닌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쓰기도 했고, 난방비와 식비들을 최대한 줄였다. 그들에겐 보육시설은 아이를 안전하게 키워줄 시설이 아니라 하나의 돈벌이 수단에 불과했다.

서울 용산구에서 3년간 어린이집 선생님을 한 김영아(가명, 30대 후반)씨는 민간 어린이집은 이미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에 지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는 “한 원장이 대리원장을 내세워 2~3곳을 운영하는 곳도 상당히 많다”면서 “아이들을 제대로 키울 선생님마저도 원장과 친한 사람이 자격증을 빌려서 하는 등 편법이 자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원장은 잇속을 챙겼지만, 선생님들 처우는 점점 나빠지고, 그만큼 아이들도 제대로 된 보육을 받기 어려워졌다.

무상보육 사각지대도 존재했다. Child Care Group에 따르면, 만 0~5세 277만명 중 29%인 80만명 정도는 보육기관이 설치돼 있지 않은 곳에 거주하고, 월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20%을 넘는다는 이유로 수당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시설 중심으로 보육료를 책정하다 보니 지원을 받지 못하는 층도 나타난 것이다.

유해미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현재 보육정책이 시설위주로 지원되다 보니 이를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서 “보편적으로 아동을 두고 있는 가정에 현금을 지원하는 아동수당제도 도입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