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소리]반려동물의 영주권
by김영환 기자
2022.07.23 13:30:00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그리스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영화 `더 랍스터`는 45일 내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로 변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배경이다. 그나마 원하는 동물을 고르게 해주는 것이 인간적 면모일까. 주인공 데이비드(콜린 패럴)는 `랍스터`, 곧 바닷가재를 선택하면서 “귀족과 같은 푸른피를 지녔고 100년도 넘게 살며 죽을 때까지 번식이 가능하다”고 이유를 댔다. 사실 랍스터가 100년밖에(?) 살지 못하는 것은 탈피해야 할 껍질이 두꺼워져서다. 껍질을 빠져나와 200년을 산 것으로 추정되는 개체가 기네스북에 기록되기도 했다. 미국의 초기 개척 시절 메인주와 매사추세츠주에는 랍스터가 지천에 깔려 있었다고 한다. 농장주들은 노예들에게 “빵이 없으니 랍스터를 먹으라”고 했다.
개척 시절 미국과 달리 유럽은 랍스터의 풍미를 높여줄 향신료가 많았다. 이미 16세기 무렵부터 유럽에서는 랍스터가 고급 요리 재료로 활용됐다. 랍스터에 대한 애정이 달라서일까, 지난 2018년 3월부터 스위스는 랍스터를 산 채로 끓는 물에 넣어 조리할 경우 벌금형에 처하는 법안을 시행했다. `갑각류는 중추신경계나 뇌가 거의 발달하지 않아 고통을 느낄 능력이 없다`던 주장보다 `랍스터도 고등 신경계를 가지고 있어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면서다. 살아 있는 사람의 살을 한점씩 발라내는 `능지`나 끓는 가마솥에 넣어 삼는 `팽형` 같은 고대 형벌을 생각하면 랍스터의 권리는 `푸른 피를 가진 귀족`처럼 고대 인간보다도 높은 곳에 자리하게 된 셈이다.
4년전 휴가차 스위스에 사는 친구 부부를 방문해 `둘이 살면 적적하니 반려견을 키워보라`는 참견을 했다가 스위스에서는 강아지를 키우려면 기백만원이 드는 학교 수강이 필수적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스위스는 2008년 모든 반려인이 의무적으로 `반려견 학교`를 다녀야 하는 연방법을 제정했다. `인간의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오기 위해 참을성을 비롯한 인간 사회에서 요구되는 덕목을 반려동물들이 배워야했고, 그 의무를 반려인들에게 부과한 것이다. 취식의 대상이 되는 랍스터의 권한은 챙겨주면서 동시에 애완의 대상인 반려견들이 인간과 어울려 살 수 있는 최소한의 문턱을 만들어두는 것, 이상적인 공존이다. 같은 인간끼리도 타국에 머물기 위해서는 `영주권`을 취득해야하는데, 짐승의 본능이 남은 동물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지난 2020년 농림축산식품부는 2022년부터 `반려동물 보유세` 도입을 거론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걷어다 어디에 쓸 것인가`에 대한 답변이 명확하지 않아서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당시 이를 언급했다. 윤석열 정부는 `반려동물 의료보험`을 골자로 하는 반려동물 공약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같은 정책이 인간과 동물의 공존에 가장 우선시돼야하는 정책인지에는 의문이 따른다. 최근 울산 울주군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서 초등학생이 개에 물려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매년 한 두건씩 `개 물림`에 의한 사망 사고도 보고된다. 관리가 부실한 견주는 상해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 사망에 이르게 할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지만 이보다 중요한 건 반려동물로부터의 공격을 사전에 막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반려견과 반려인에게 보다 무거운 책임감을 부여해야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