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최훈길 기자
2022.07.16 13:05:53
[코인 주간브리핑]
금융위 신속채무조정 특례 논란 확산
“성실하게 빚 갚으면 바보”·“역차별”
“급락하면 또 탕감?” 밑빠진 독 우려
해외는 빚 탕감 아닌 제도정비 집중
“깜짝쇼 아닌 투자자 보호제도 필요”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정부가 가상자산 ‘빚투(빚내서 투자)’로 인한 손실 채무까지 구제하기로 하자 논란이 일고 있다. 투자 실패를 왜 국민 세금으로 보전해 주느냐는 이유에서다. 특히 코인시장 침체가 계속될 수 있어 밑 빠진 독처럼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혈세 지원이 아니라 선제적 규제 정비와 투자자 보호 대책으로 대응하는 해외처럼 가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사태는 지난 14일 금융위원회 발표로 촉발됐다. 금융위는 이날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2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125조원 이상의 금융 지원(2022~2023년 기준 예산 소요 규모 4조7000억원)을 담은 ‘금융부문 민생안정 과제 추진현황 및 계획’을 보고했다. 지난 11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취임한 이후 발표한 첫 금융지원 대책이다.
특히 정부는 ‘신속채무조정 특례 제도’ 신설해 지원하기로 했다. 이는 주식이나 코인 투자를 했다가 손실을 본 ‘저신용 청년(만 34세 이하, 신용평점 하위 20% 이하)’의 채무 이자율을 30~50% 감면해 주는 방안이다. 최대 3년간 원금 상환을 유예하고, 해당 기간 저신용 청년 이자율을 3.25%로 적용하는 것이다.
이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논란이 불거졌다. ‘투자자의 자기책임 원칙’에 어긋나는 조치라는 이유에서다. 이미 가상자산거래소들은 지난 5월 루나·테라 사태 이후 “가상자산은 초고위험 상품으로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이 우선”이라는 공지를 올린 상태다. “성실하게 빚 갚은 사람만 바보가 됐다”며 빚 탕감에 따른 역차별 논란도 일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빚투 청년 구제 방안에 일부에선 상실감을 느끼고 투기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질문을 받자 “완전히 부실화돼서 정부가 뒷수습하기보다는 선제적으로 적기 조치하는 것이 국가 전체의 후생과 자산을 지키는데 긴요한 일”이라고 답했다. 김주현 위원장은 “일부 도덕적 해이 문제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고, 운용 과정에서 최소화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우려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도덕적 해이, 역차별 논란 외에도 ‘밑 빠진 독’ 우려까지 있어서다. 특히 코인 시장은 끝모를 침체여서, 이번에 탕감해줘도 실효성이 크지 않을 수 있다. 만약 현 침체 상황이 계속되거나 더 하락할 경우, 앞으로도 이번처럼 빚을 계속 탕감시켜 줄지도 논란꺼리다. 국민 세금으로 보전해주는 게 결국 한계가 있는 대책이어서다.
시장을 보면 그야말로 ‘크립토 윈터(가상자산 겨울)’ 상태여서 우려를 더 키우고 있다. 16일 비트코인 시세는 1년 전보다 56.54% 하락한 2만741달러(오후 1시 기준)에 그쳤다. 코인텔레그래프는 ‘암호화폐 공포와 탐욕 지수’가 사상 최장 기간(70일째) ‘극도의 공포’ 상태라고 밝혔다. 더 블록 리서치에 따르면 올 2분기 블록체인 분야 벤처 펀딩 규모가 98억달러를 기록, 전분기(125억달러)보다 22%나 줄었다.
가상자산 헤지펀드 스리애로즈캐피털(3AC)에 이어 지난 14일 가상자산 대출업체 셀시우스가 파산 신청을 했다. 카카오(035720)의 블록체인 플랫폼 클래이튼은 최근 두 달 간 10개의 디파이 및 대체불가능토큰(NFT) 프로젝트를 청산했다. 블룸버그의 지난 5~8일 개인·기관투자자 950명 대상 설문에 따르면 ‘비트코인이 1만달러와 3만달러 중 어느 선에 먼저 도달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응답자의 60%는 1만달러를 택했다.
가상자산 공시 플랫폼 ‘쟁글(Xangle)’을 운영하는 크로스앵글은 지난 15일 위클리 리포트에서 “많은 유명 브랜드들이 자사 지식재산권(IP)을 침해했을 수도 있는 NFT거래소 혹은 플랫폼에 대해 법적 대응을 모색 중”이라며 “(향후) 더 높은 금리 인상은 비트코인 시장 참여자에게 더 큰 공포로 다가올 것”이라고 밝혔다. 코인이든 NFT든 악재가 있는 셈이다.
이같은 시장 상황에서 해외는 규제 정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예산으로 빚을 탕감하기보다는 규제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투자 환경을 조성하는 게 정부나 금융당국의 역할이라는 판단에서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루나·테라 사태로 촉발된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규제안을 긴급 제안했다. ECB는 지난 11일 보고서에서 “전통적인 금융 시스템과의 추가적인 상호 연관성이 발생하기 전에 효과적인 규제, 감독이 긴급히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2일 코인텔레그래프에 따르면 미국 특허청과 저작권청은 NFT가 IP에 미치는 영향 관련 연구를 시작할 예정이다. 연구 내용은 △NFT에 적용될 IP 문제 △NFT 소유권 이전 관련 권리 △NFT 보유자에 부여되는 IP 권리 △NFT 라이선스 등이다. 이번 연구는 지난 6월 패트릭 레이히 및 톰 틸스 상원의원 요청에 따른 것이다.
반면 국내는 정부의 코인 빚투 탕감, 의원들의 현장방문은 잇따르고 있는데 제도화 속도는 더딘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를 비롯해 김병욱·노웅래·백해련·양기대·전용기·민병덕 의원이 지난 13일 5대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 CEO를 만났지만 특단의 대책은 내놓지 못했다. 현재 국회에는 13개 업권법이 반년 넘게 제대로 된 논의조차 없이 계류 중이다.
루나·테라 사태가 두 달이 지났지만 가상자산 거래소의 공동의 가이드라인 마련 등 철저한 투자자 보호 방안도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심지어 국민의힘·금융위·금융감독원 논의 구조가 5대 원화마켓거래소 따로, 나머지 코인마켓거래소 따로다. 가상자산거래소 전반의 공동가이드라인조차 만들지 못하는 논의 구조인 셈이다.
그렇다고 국정과제에 언급한 ‘시장 성장환경 조성’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것도 아니다. 5대 거래소는 △‘한 거래소당 1개 은행 실명계좌’라는 현 규제를 풀어 ‘1거래소-다(多)은행 허용 △코인거래소의 해외 송금 허용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규제도 진흥도 엉거주춤한 상황에서 제도 논의보다는 코인 빚 탕감을 하는 상황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재정으로 코인 빚투를 탕감해주는 게 아니라 제도 정비부터 할 것을 주문했다. 시장의 규제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투자자 보호 방안을 마련하는 게 정부 역할이라는 판단에서다.
가상자산 전문가인 최화인 블록체인 에반젤리스트는 통화에서 “빚을 탕감해주고, 기업인들을 불러내서 기금에 넣을 돈을 내놓으라고 한다고 해서 루나·테라 사태, 조유나양 일가족의 비극적 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없다”며 “깜짝쇼를 할 게 아니라 17일까지 국회 원 구성을 한 뒤 당정이 실효성 있는 투자자 보호 제도을 진중하게 논의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