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추억서, 맏딸의 펜끝서 다시 읽는 박완서

by김은비 기자
2021.01.20 06:00:00

타계 10주기…소설 개정판·에세이 출간
세대 관통하는 보편적 정서 담겨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박완서 선생님의 자리는 세상사의 만변한 날들 속에서도 자기 고유의 질서를 유지한 채 생을 더해가는 나무들을 떠올리게 한다.”(김금희 작가)

“어머니가 떠오르는 그리운 장면은 거의 다 부엌 언저리에서, 밥상 주변에서 있었던 시간이었다. 나 자신도 지금까지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하다.”(호원숙 작가)

‘현대 문학의 거목’으로 불리는 박완서(1931~2011) 작가의 소설을 2021년에 다시 읽으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오는 22일 박 작가 타계 10주기를 맞아 관련 도서가 속속들이 출간되고 있다. 박 작가는 작품에 시대를 정직하게 기록하면서도 세대를 막론하고 관통하는 인간사의 보편적 정서를 담았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시대에 뒤처지거나 정서에 맞지 않는 것이 없다. “나의 생생한 기억의 공간을 받아줄 다음 세대가 있다는 건 작가로서 누리는 특권이 아닐 수 없다”던 생전 박 작가의 말처럼 독자와 후배 문인들이 지금껏 그의 작품을 찾는 이유다.

오는 22일 박완서 작가 타계 10주기를 맞이해 관련 도서가 출간되고 있다(사진=웅진지식하우스)
지금껏 스테디셀러에 올라 있는 박 작가의 대표적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이상 웅진지식하우스) 개정판이 22일에 맞춰 출간된다. 2005년 이후 두 책의 개정판이 나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웅진씽크빅 관계자는 “15년이란 세월 동안 독자층도 많이 바뀐 만큼 새로운 시각에서 작품을 바라보기 위해 개정판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두 작품은 모두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1930년대 개풍 박적골에서 보낸 어린 시절부터 1950년 한국전쟁으로 황폐해진 서울에서의 스무 살까지를, 이어진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서는 성년이 된 후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금껏 책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자, 그 어려움을 꿋꿋이 이겨낸 여성의 서사로 읽혔다.

이 관계자는 “이제는 새로운 독자들에 맞게 시각을 사회적 역경으로 확장해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기존 한복을 입은 소녀가 그려진 표지도 페미니즘적 감성을 담아 바꿨다. 김금희·정세랑·강화길·정이현 등 젊은 여성 작가들의 서평 ‘지금 다시 박완서를 읽으며’도 개정판에 담았다.



소설가에 앞서 엄마이자 아내였던 박 작가의 새로운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책도 출간됐다. 박 작가의 맏딸 호원숙 작가가 쓴 에세이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세미콜론)을 통해서다. 박 작가가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머물렀던 ‘노란집’에 여전히 살고있는 호 작가는 책 속에서 “엄마가 물려주신 집의 부엌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서재도 아니고, 마당도 아니고, 부엌이었다”고 털어놨다.

책에는 요리책이 꽂혀 있던 박 작가의 서재 풍경부터, 다듬고 난 미나리 뿌리도 버리지 않고 항아리에 넣어놨다가 끊어 먹었던 박 작가의 알뜰함, 남편의 술상을 차리던 박 작가의 모습 등 음식과 관련된 추억이 담겨 있다. 그렇지만 책은 단순히 ‘음식’ 자체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삶에 대한 태도를 폭넓게 담아내고 있다. 훌륭한 소설가의 딸이면서도, 슬하의 자식들 역시 훌륭하게 키워낸 어머니, 또 자애로운 할머니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박 작가의 소설 속에서 음식은 아주 중요한 문학적 장치이자 시대상의 반영이었다. 책을 읽다 보면 그의 소설 속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음식에 대한 묘사가 어디서 왔는지 자연스레 유추하게 된다. 그가 부엌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고, 동시대 보통의 일상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밥상을 정밀하고 섬세하게 관찰했는지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지난달에는 박완서의 에세이 35편을 엮은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세계사), 지난 11일에는 수필 465편을 골라 아홉 권의 양장본으로 엮은 ‘박완서 산문집’ 세트(문학동네)도 각각 출간됐다. 박완서의 자전적 연애 소설이자 마지막 장편인 ‘그 남자네 집’(현대문학)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