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인사이드]사재 300억 턴 현정은 회장, 현대상선 '법정관리行' 피해

by신정은 기자
2016.09.27 06:00:00

기업회생에 도움준 대주주 사재출연
박삼구 회장, 3300억 출연.. 우선매수권 금호산업 되찾아
대주주 의지, 채권단 협력 이끌어내

[이데일리 성문재 신정은 기자] 대주주의 사재 출연은 유동성에 숨통을 틔어주는 효과뿐만 아니라 오너의 강한 회생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잣대로 쓰인다. 그리고 실제 기업회생 과정에서 좋은 결과로 이어진 사례가 적지 않다.

한진해운(117930)과 현대상선(011200)은 가장 최근에 있었던 대주주 사재출연의 대표적인 예다. 해운업 불황이 예상보다 장기화하면서 이들 양대 국적선사는 올들어 나란히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채권단은 즉각 오너에게 고통을 분담할 것을 요구했다.

조양호(왼쪽) 한진그룹 회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자율협약도 개시되기 전인 지난 2월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의 협의를 거쳐 사재 300억원을 출연해 현대상선 차입금 상환에 보탰다. 자신이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017800), 현대글로벌, 현대유앤아이 등의 지분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자금을 마련했다. 채권단은 이에 화답해 현대상선 정상화를 위한 논의과정에 적극 참여했고 결과적으로 최악의 시나리오였던 법정관리는 피했다.

반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조건부 자율협약 기간이 다 지나갈 때까지 사재출연을 포함한 지원방안을 놓고 채권단과 줄다리기만 계속했다. 이미 조단위의 자금을 쏟아부었을 정도로 할 것은 다 했다는 이유였다. 결국 한진해운은 채권단의 출자전환을 받지 못한 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법정관리 후 물류대란이 벌어지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대주주의 책임을 묻자 조 회장은 보유하고 있던 ㈜한진(002320) 및 한진칼(180640)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사재 400억원을 출연했다.

사재 출연 이후 재기에 나서고 있는 대표적인 성공사례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다.



박삼구 회장은 2010년 금호산업(002990)과 금호타이어(073240)가 워크아웃에 돌입하자 3300억원의 사재를 출연해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이 덕에 박 회장은 우선매수권을 받고 지난해말 금호산업을 되찾을 수 있었다. 지난 20일 금호타이어가 시장에 매물로 나온 가운데 박 회장은 7년만에 금호타이어를 다시 인수해 그룹을 재건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그룹 지주사인 웅진홀딩스(현 웅진)가 2012년 10월 법정관리에 들어간 이후 웅진코웨이(현 코웨이), 웅진식품, 웅진케미칼(현 도레이케미칼) 등 주요 계열사를 매각한 뒤 윤 회장 일가의 사재출연 등으로 1년4개월만에 법정관리를 졸업하는 데 성공했다. 놀라운 것은 웅진이 다시 두번째 도약에 나섰다는 점이다. 윤 회장은 렌탈·방문판매 사업의 노하우와 경쟁력을 살려 올해 국내 화장품 시장과 해외 정수기 렌탈시장에 진출했다.

동부그룹은 대주주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룹의 위상과 정체성을 잃어버려 아쉬운 사례로 꼽힌다. 김준기 회장은 2009년 동부하이텍에 3000억 등 지금까지 총 4000억원을 직접 사재출연했고 채권금융기관에 3000억원 이상의 담보를 내놨다. 그러나 동부하이텍 매각이 불발되고 동부제철이 그룹에서 떨어져나가면서 후폭풍으로 그룹 모태인 동부건설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철강·건설 등 제조부문 주력 계열사를 잃은 동부그룹은 재계 순위 10위권에서 40위권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외국기업 중 대주주 사재 출연 사례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경영권 승계 등에서 귀감이 돼 국내에 널리 알려진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 기업들이나 홍콩 최고 재벌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의 경우 경영은 철저히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있다. 이 경우는 애초에 오너에게 경영 부실의 책임을 묻기 힘든 구조다.

배출가스 조작 파문으로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폭스바겐 그룹은 오너가의 지나친 경영 다툼이 배출가스 스캔들의 발단이 됐지만 책임지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