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임윤선 “연예인병이라는 악플에 시달렸지만….”(종합)
by김성곤 기자
2016.08.01 07:59:19
6월 3일 첫 비대위 회의서 “새누리당 매력없는 이성” 발언 화제
비대위 활동 본인 평가 5점…절반의 실패이자 성공
“특정정당 꼬리표에 이유없는 비판도 감수해야 할 일”
“유승민 복당 파문 상황 오래갔다면 비대위원 그만뒀을 것
| 임윤선 새누리당 혁신비상대책위원은 지난달 29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비대위 활동 최고 성과는 유승민 의원 등 무소속 탈당파 7명에 대한 일괄복당 결정”이라고 말했다(사진=노진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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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20대 총선 참패 이후 새누리당의 상황은 말그대로 ‘안습’이었다.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대략난감’의 상황이 줄곧 이어졌다. 계파갈등이 총선패배의 최대 원인이라는 지적에도 친박·비박계는 사생결단식으로 내부총질에 여념이 없었다. 원유철 비대위 체제와 김용태 혁신위 체제가 차례대로 무산됐다. 비대위원장 구인난은 백사장에서 바늘찾기였다. 새누리당은 무중력 진공상태에서 한 달 반 이상을 허공에 날려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새누리당 혁신비대위가 출범한 것은 지난 6월 3일. 총선 참패 이후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선출직 최고위원들이 사퇴한 뒤 이후 정확히 50일만에 김희옥 혁신비대위원장 체제로 당 지도부 아침회의가 부활했다. 이 자리에서는 신데렐라가 등장했다. 30대 임윤선 변호사의 깜짝 등장이었다. 외부 혁신비상대책위원이었던 임 변호사는 이날 여의도당사에서 열린 첫 비대위 회의에서 “지금의 새누리당을 비유하자면 아주 정말 매력 없는 이성으로 어디에도 쓸모가 없는 남자”라고 혹평했다.
한마디로 대형 사고를 친 것이었다. 특히 여의도 정치권에서 보기 드문 화법을 구사한 덕택에 임 변호사는 단숨에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임윤선’이라는 정치권 햇병아리의 이름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했다. 그녀의 휴대폰은 하루 종일 기자들의 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렸다. 8.9 전당대회가 마무리되면 임 변호사는 새누리당의 구원투수로 활동한 비대위원 자리를 내려놓는다. 임 변호사와 더불어 지난 두 달간 새누리당 혁신비대위 활동의 이모저모를 들여다봤다. 인터뷰는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 커피숍에서 한 시간 가량 이뤄졌다.
다음은 임윤선 변호사와의 일문일답-두 달 전 비대위 첫 회의에서 “새누리당이 과연 20대, 30대의 울부짖음에 대해 귀는 제대로 열고 있는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두 달 동안 새누리당은 무엇이 바뀌었나?
“비대위 첫 회의에서 마지막 멘트는 바꾸기 위해서 온 게 아니다. 바꿀 자신이 없다였다. 질문하기 위해서 왔다. 솔직히 말하면 바뀌지 않았으나 그래도 안 그런 분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다. 나보다는 조금 더 기회가 선천적으로 덜 주어진 사람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 애쓰는 분들도 새누리당에 있구나라는 걸 알게 된 것은 1번 소득이었다. 2번 소득은 나이든 경력이든 많은 것이 미천한 제 목소리에게 과연 귀를 기울일 것이라는 의문이 있었다. 그냥 얼굴마담, 30대에 여성에 충청도 TO로 앉혀 논 것 아닐까 의문도 있었다. 정말 의외로 귀를 열어주셨다. 제안한 것 중 통과된 것도, 안된 것도 있지만 그래도 일단 제안한 순간 치열한 논의가 이뤄졌다. 청년창업 현장방문, 쪽방촌 간 것도 제가 제안한 것이다. 두 달 만에 바뀔 것이라는 것은 제게 지금 당장 별을 따달라는 것만큼 허황된 꿈이다. 제가 여전히 꼴보기 싫다라고 비판할 정도의 애정은 남아있다.”
-임윤선 변호사의 연관검색어로 새누리당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비대위 활동을 후회한 적은 없나?
“정계로 와달라는 제안을 받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두 달 동안 이라는 것 때문에 비대위원 제안을 감사히 수락했다. 이번이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제가 무엇을 선택하건 항상 꼬리표는 붙어다녔을 것이다. 이유없는 비판을 꼬리표 하나 때문에 받겠죠. 제 모든 행동을 꼴보기 싫어하는 특정 당파 사람이 생길 것이다. 제가 어느 당을 갔던 간에 감수해야할 일이다. 그렇다면 이왕이면 제 색채가 보수가 맞다. 그러나 보수가 현재는 긍정을 미래는 희망을 하는 게 정의라고 생각한다. 꼬리표는 보수당이고 싶었다. 제가 생각하는 보수는 존 스튜어트 밀을 되게 좋아한다. 개인의 자유는 최대한, 하지만 그것을 반하였을 때 엄격 처벌이라는 게 보수의 또 하나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비대위원 인선 발표 시 새누리당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었는데?
“채널A 돌직구쇼 하차할 때 6월 2일 오전 9시경 발표한다니까 돌직구쇼를 할 수가 없었다. 왜냐면 극비로 부치고 있는데 아침 9시경 속보로 뜨면 방송의 신뢰성이 떨어진다. ‘뭐야’ 소리가 나올텐데 그렇다고 전날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 ‘낼 아침 알게 될 텐데 저는 하차해야 한다’고 피디분께 사죄하고 양해를 구했다. 도대체 뭔 일이냐면서 각자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어떤 분은 ‘임 변호사 청와대 대변인 가는 거 아니냐’, 어떤 분은 ‘새누리당 비대위네. 오늘 발표날 것 그것 밖에 없네’, 또 어떤 분은 ‘절대 아니다. 임 변호사는 새누리당 스타일이 아니다. 국민의당 가면 갔지 어떻게 새누리당이냐’. 재미있는 게 방송을 같이 했던 많은 분들이 제가 갈 거라고 생각을 못한 것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보수의 이미지와 제가 생각하는 보수의 이미지의 간극인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새누리당과 보수의 정의는 기득권 우선, 강자 우선, 기존 가치 절대 신봉, 나만 잘 먹고 잘 살기, 8대 2 세계에서 2만 대변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제가 생각하는 보수는 사람들을 이 상태로 그냥 두는 거니까, 존 스튜어트 밀의 가치와 일치하는 것이다. 일단은 그냥 둬라 주의다. 그렇지만 그 틀을 벗어나면 강하게 규제를 들어가고 이 사람들이 국가의 권위에 설득할 수 있는 가장 큰 가치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으니까 따르면 된다. 제가 너무 순진한 것인가.”
-주변 지인들의 반응은 어땠나?
“많이 응원해주셨다. 심지어 부모님마저도. 그런데 부모님은 걱정을 할만도 하다. 시집도 못간 혼자 사는 딸이 새누리당 비대위원 꼬리표 붙어서 시집이나 갈까하고(웃음).”
-본인이 생각하는 보수의 이미지와 새누리당의 간극은 매우 커 보이는데 좁혀질 수 있나?
“지금 전당대회 흐름이 그렇지 않나요. 제가 만나는 분들은 비대위원들이 대분인데 사석이나 비공개 회의에서 늘 강조하는 게 지금은 중원다툼 싸움이라고 한다. 지금은 더 이상 있는 자들만 대변해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모두 다 안다. 새누리당 내에서 머리로 아는 사람들도, 가슴으로 아는 사람들도 있다. 머리로 아는 사람들은 그래야지 공학적으로 이긴다. 가슴으로 아는 사람들은 그것이 옳다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있는 자들만 대변해서는 결코 이길 수 없다. 지금은 중원다툼이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전대도 그 사람들 좀 더 많은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 제일 인상깊은 분이 이학재 의원이다. 어느 식사자리에서 작은 토론을 한 적이 있다. 어떤 분이 젊은이들이 다 대기업을 가고 싶어하고 중소기업은 취업난이다. 그러니 더더욱 대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저랑 이학재 의원은 크게 반발했다. 이학재 의원이 ‘대기업을 계속 키우면 중소, 중견기업 다 잠식하게 두자는 거냐. 중소, 중견기업을 어떻게 강성하게 만들어 줄 것을 우리가 고민해야지 어떻게 대기업을 더 육성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냐. 미안하지만 그것은 70년대 사고’라고 말했다. 이학재 의원은 같이 회의할 때 보면 당신의 이익과 상관없는 여성과 청년의 이익을 위해 ‘우리가 내놔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청년최고위원은 청년들로만 뽑게 하자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런 분들이 참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비대위원으로 본인의 활동에 몇 점을 주고 싶나?
“10점 만점에 5점 주고 싶다. 비대위 자체도 5점 주고 싶다.”
-비대위 활동 중 가장 화제가 된 발언이 “새누리당 매력없는 이성”(비대위 첫 회의 6월 3일) 발언이었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도 하루 종일 오르내릴 정도로 화제를 모았는데?
“포털사이트 다음과 네이버에서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했다. 화제가 되면서 두려웠다. 인터뷰 요청이며 뭐며 다 피했다. 정말 분에 넘치는 관심이었다. 그 이야기가 화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다른 분들 말씀도 다 비슷하게 셌는데 좀 낯선 워딩이었던 것 같다. 좀 튈 거라는 건 알았지만 그 정도로까지는 화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혹시 기사 댓글에 악플은 없었나?
“많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관심의 대부분은 욕이지 않느냐. ‘연예인병 걸렸다’, ‘왜 혼자 사는지 알겠다’ 등등.”
-비대위 활동 중 가장 힘들었을 때가 역시 유승민 의원에 대한 복당결정과 김희옥 비대위원장의 칩거 파동 때였나?
“그 때는 저도 그만두고 싶었다. 저는 눈물이 많지만 멘탈이 강한 사람이다. 욕을 먹어먹는 게 무섭지만 툭툭 털고 일어서는 성격이다. 복당 문제에 대해 신념대로 했으면 아무리 욕을 먹더라도 이겨낼 자신은 있었다. 내가 당장 평생 꼬리표가 붙을 걸 알면서도 저뿐만 여러 사람들이 나름 십자가를 지는 기분으로 우리가 안고 간다고 말했다. 그걸 한 유일한 이유는 새누리당이 다른 길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국민의 명령대로 통합과 혁신을 따르겠습니다는 마음 뿐이었다. 통합과 혁신을 위해 우리 나름대로 한 것인데 오히려 또 다른 분열의 계기가 된다는 게 제일 마음이 아팠다. 우리는 통합과 혁신이라고 했는데 또다시 쪼개져서 난리난 모습만 국민들은 보고 있으니 난 뭐한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혹시 비대위원 사퇴를 언급한 적이 있나?
“당시 외부 비대위원들이 속내를 이야기할 때 이 상황이 더 오래가면 우리도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솔직하게 있었다. 속상했다. 그때는 언론에서 전화 오는 것도 다 피했던 기억이 난다. 저희 딴에는 통합을 위해서 결정을 했는데 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또 다른 분열의 씨앗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아끼는 게 새누리당을 위해서 맞는 거 같다고 양해를 구했다.”
-만약 그 당시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유승민 의원을 포함한 무소속 탈당파 7명에 대한 일괄복당을 결정했을 것인가?
“정확하게 6월 16일이었다. 비대위 되고 2주만이었다. 비대위 유령이냐 허수아비냐 맨날 연일 때려되고 난 다음에 저희가 조용히 있다가 2주 만에 폭탄을 빵 터뜨린 것이었다. 비대위가 한 가장 큰 성과다. 다시 일괄복당을 결정하라고 해도 그대로 했을 것이다.”
-비대위가 무소속 탈당파에 대한 일괄복당을 결정했을 당시 상황을 설명해줄 수 있나?
“무기명투표로 결정하자고 맨 처음 이야기한 사람은 김영우 의원이었다. 그 다음에 여러 사람이 거기에 대해 딱히 반대하지 않았다. 논의가 한쪽으로 모아진 상황에서 민세진 비대위원이 제가 ‘투표용지를 만들까요’ 하면서 A4용지를 찢었다. 이후 제가 투표용지를 나눠주고 개표를 진행했다. (일괄복당이 결정난 뒤) 개표를 스톱하고 나머지 투표용지를 파쇄한 사람도 저였다.”
-총선백서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데?
“네이밍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백서라고 하지 않고 목소리라고 붙였으면 달랐을 것이다. 비대위원들은 아무도 중간에 내용을 보지 않았다. 진통은 있었다. 비대위 활동 중에 전당대회 전에 무조건 내야 한다. 비대위의 의지가 들어간 것은 ‘당 사람 그 누구의 입맛에 따라서 편집돼서는 안된다. 그 전에 누가 봐서는 안된다. 국민의 목소리를 100% 전달한다’였다. 우리는 백서보다 국민에 강점을 뒀다. 거기에 개누리당, 성누리당 다 나온다. 다만 언론은 백서에 방점을 뒀다. 누구의 잘못에 대한 판단이 없냐는 비판이 있었다. 국민백서였기 때문에 국민의 목소리를 100% 담고 거기에 사람들의 입김 안 들어간 것에 만족한다.”
-개인적으로 새누리당이 왜 총선에서 참패했다고 보나?
“소리없는 분노를 특유의 오만함 때문에 읽지 못했다. 그 오만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찍어주겠지. 고개 한 번 숙이면 찍어주겠지’였다. 이제 어머어마한 정보화 시대에 많은 사건 사실들이 노출된 시기에 더 이상의 상대가치가 가고 절대가치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걸 나이든 보수들만 모르고 있었다. 많은 정보가 노출되지 않은 시기에는 브랜드나 이름의 충성도가 높다. 예컨대 애플빠는 애플만 사고, 삼성빠는 삼성만 산다. 저도 얼마 전에 10년 동안 쓴 노트북이 고장나서 저 사양에 딱 맞는 중국산 25만원 짜리를 샀다. 저는 인터넷과 문서만 쓰면 그만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어떤 브랜드, 그게 맞겠지 본능적인 충성을 보이지 않는는다. 자기에게 맞는 것이 뭔지를 적극적으로 검색하는 능력이 생겼고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에 절대가치를 추구한다. 그런데 새누리당만 여전히 자신의 브랜드에 의존한 채 사람들이 새누리당 브랜드에 충성심을 보일 것이라는 바보같은 오만함에 빠져있었다. 사람들의 분노는 기본적인 경제침체에서부터 왔다. 집권여당이나 보수당이나 정부가 그 어떤 비전도 보여주지 못한 것에 대한 상실감이다. 비전을 충분히 보여주면 싸워도 된다. 그런 비전도 전혀 못보여주는 상황에서 싸우니 화가 난 것이다.”
-공천개입 녹취록 파문에 대한 비대위의 입장이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이것이 복당결정 전에 터졌다거나 아니면 최근의 녹취록이라면 비대위 차원에서 어떤 결정을 했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 비대위가 또 어떤 언급을 하는 것은 국민들의 눈에 이전투구로 보일 것이라는 게 다수였다.”
-내년 대선국면에서 여야 정당의 영입 제안이 온다면 수용할 것인가?
“진짜 모르겠다. 이 분은 존경할만한 분이라는 마음이 들면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줄 것 같기도 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저랑 아주 친한 몇몇 분들의 의견이 중요하다. 그 사람들하고 협의해봐야 한다. 제가 도움이 된다면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렇지만 그로 인해 제 친한 사람들의 삶이 불편해진다면 제가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의 의견은 더 중시할 것이다.”
△1978년 생, 충북 충주 △서울대 불어교육과 졸업 △제47회 사법시험 합격 △법무법인 지평지성 변호사 △법무법인 민 변호사 △새누리당 혁신비상대책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