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 읽어주는 남자]안경점 김사장, 태풍 때문에 범법자된 까닭은?

by조용석 기자
2015.08.05 06:47:46

가게 앞 매대 강풍에 날아가 행인 덮쳐 업무상 과실치사상
'시설물 관리 미흡' 벌금 150만원…손해배상까지 1천만원
강풍 속 작업하다 근로자 사망하자 사업주 관리소홀로 처벌

[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강풍과 폭우를 동반하는 태풍은 여름의 불청객입니다. 하지만 태풍을 단순히 ‘천재지변’으로만 생각하고 시설물 관리를 소홀히 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범법자가 될 수 있습니다.

태풍 볼라벤이 북상하던 2012년 8월 28일. 경기도에서 안경점을 운영하던 김모 사장은 여느 때처럼 가로 120㎝, 세로 70㎝짜리 소형 판매대를 가게 앞에 설치했습니다. 손님들이 오가며 관심을 가질만한 특가상품들을 진열했겠지요.

문제는 강풍이었습니다. 당시는 태풍 볼라벤의 기세로 서울·수도권 지역에서는 태풍주의보와 경보가 연이어 발효됐습니다. 작은 판매대는 강풍을 이기지 못하고 날아갔고 공교롭게도 인도를 걸어가던 행인 강씨를 덮쳤습니다. 강씨는 전치 5주의 부상을 입었습니다.

검찰은 김 사장을 업무상과실치상으로 기소했습니다. 김 사장이 자신이 관리하는 시설(판매대)이 날아가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하거나 철거할 ‘업무상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수원지법은 검찰 측의 주장대로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 김 사장에게 형법 제268조(업무상과실·중과실 치사상)를 적용해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김 사장은 “태풍으로 인한 불가항력”이라며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 갔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다친 강씨는 김 사장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법원은 치료비와 위자료로 930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습니다. 허술한 판매대 관리 탓에 김 사장은 벌금과 손해배상금으로만 1000만원이 넘는 돈을 썼습니다. 김 사장이 쓴 돈에는 변호사 선임비도 추가됩니다.

이승우 법산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로 발생한 사고에 대해 처벌하려는 의도가 아니다”며 “시설물 관리자가 신경을 썼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종업원을 고용하는 사업주는 시설물뿐 아니라 자연재해로 인해 직원이 다치지 않도록 보호할 의무도 있습니다.

지난해 8월 2일 전남 완도의 한 양식장에서 근무하던 A씨는 새벽 5시께 양식 중인 물고기들에게 사료를 주다가 봉변을 당했습니다. 당시 태풍 나크리의 영향으로 강풍이 불었는데 이로 인해 출입문이 순식간에 닫히며 부서졌고 파편이 A씨의 머리를 강타했습니다. A씨는 20일 뒤 뇌간압박으로 숨을 거뒀습니다.

사업주인 황모씨는 업무상과실치사,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태풍으로 인해 근로자가 위험할 수 있었음에도 작업을 중단시키지 않았고 안전난간 설치 등 산업안전보건법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광주지법 해남지원은 황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피해자 유족에게 1억원의 산재보험급여가 지급됐고 황씨가 형사처벌 전력이 전혀 없고 유족을 위해 2000만원을 공탁한 점 등을 고려한 판결입니다.

법조계 관계자는 “황씨가 사고 발생 후 여러 노력을 기울였기에 벌금형에 그친 것”이라며 “강풍 등 천재지변이라고 해도 사업주들은 미리 예방하고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규정에 따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태풍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가을태풍이 남아 있죠. 신동현 기상청 국가태풍센터장은 “가을태풍은 우리나라 부근에서 여름철보다 훨씬 차가워진 북쪽의 공기와 부딪혀 만들어지기 때문에 여름태풍보다 바람도 세고 비도 많이 내릴 가능성이 크다”며 “마지막 태풍이 한반도를 지나갈 때까지 철저한 시설물 관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