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거래소를 가다]'전력을 사수하라'..전쟁터 방불
by황수연 기자
2012.12.14 09:20:00
[이데일리 황수연 기자]“배전용 전압기 탭 조정하세요” 배전용 변압기 전압을 떨어뜨려 전력량을 줄이는 조치다. 하지만 이도 잠시, 10분도 지나지 않아 두번째 지시가 이어진다. 상황실을 총 지휘하는 조종만 중앙전력관제센터장의 목소리는 더욱 다급해진다. 노란 조끼를 입은 직원들의 움직임도 바빠진다. 하지만 원망스럽게도 남아있는 전력을 가리키는 예비전력 숫자는 더욱 빠르게 줄어든다.
지난 12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거래소 비상대책상황실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이날도 영하 10도에 가까운 한파가 이어지면서 “설악산을 기어오르는 듯 하다”는 남호기 전력거래소 이사장의 표현처럼 이른 아침부터 전력수요를 나타내는 그래프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 12일 오전 조종만 전력거래소 중앙전력관제센터장이 실시간 전력수급 현황을 들여다 보고 있다.(전력거래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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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상황이 어려우니 협조 좀 부탁하고, 추가된 공급능력은 바로 반영하세요” 조 센터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예비전력은 350만kW 아래로 급감했다. 결국 다시 ‘관심’ 단계가 발령된다. 올 겨울 들어서만 네번째다. 그나마 오전 8~9시 사이 구역전기 공급, 민간 자가발전 가동 등과 두 번의 전압조정 조치로 총 109만kW 가량의 예비력을 확보해둔 상태라 긴급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 남 이사장은 “산업체의 수요관리가 들어가는 오전 9시 직전까진 난방과 함께 업체들의 전력수요가 치솟는다”고 말했다.
오전 피크 타임대인 10시가 넘자 조 센터장은 석탄발전소 최대보증출력(MGR) 운전과 최저운전 등(20만kW)을 통해 예비력을 최대한 끌어모았다. 원래 ‘주의’ 단계에서 이뤄지는 조치지만, 이날은 일종의 테스트처럼 시행됐다. 남 이사장은 MGR 운전에 적극적으로 임한 충남 당진 화력발전소에 피자 50판을 보내기도 했다. 전력 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유독 협조를 잘 해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다.
다행히 오전 11시까지 한시간 평균 최대전력은 7389만kW에 그쳤고, 예비력은 402.5만kW(예비율 5.4%)을 유지해 긴박한 상황은 비켜갔다. 조 센터장은 “산업체 수요관리, 민간 자가발전기 가동, 석탄화력 상향 운전 등 모든 조치를 통해 총 406만kW의 예비력을 확보한 덕분”이라며 “별도 조치가 없었다면 예비전력이 마이너스(-)로 갈 뻔한 상황이었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 12일 오전 10시 27분쯤 예비전력이 338만kW를 가리켜 전력수급 비상 경보 ‘관심’ 단계를 유지하고 있다. (전력거래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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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40분. 드디어 예비력이 450만kW 수준으로 회복되면서 경보도 ‘관심’에서 ‘준비’ 단계로 올라섰다. 직원들은 경보 해제와 함께 미리 준비해둔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운다. 벌써 며칠째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지만 빠듯한 전력상황은 이들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 것 같다.
오후 접어들자 날씨가 조금 풀리고 예비력이 500만kW대 이상의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면서 상황실에도 잠시 여유가 찾아들었다. 하지만 다시 긴장감이 고조됐다. 두번째 피크 시간대인 오후 5시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준비’ 단계에 돌입했다. 조 센터장과 직원들의 눈은 전광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다행히 별 일 없이 지나갔다. 오늘은 더 이상 추가 조치는 필요 없을 것 같다.
조 센터장과 직원들에겐 주말이 가까워지면서 날씨가 풀린다는 예보가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다. 일단 당분간 한숨을 쉴 수 있겠지만 그러나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내달 중순에서 2월 초순으로 예정된 전력 피크 시즌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조 센터장은 “1월 중순에서 2월 초순 사이 최대전력이 7913만kW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며 “수요관리 등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예비력이 127만kW 밖에 안돼 전력수급에 큰 어려움이 닥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