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UN이 정한 물 부족 국가? [물에 관한 알쓸신잡]

by이명철 기자
2021.11.27 11:30:00

하천·호수·지하수에서 끌어오는 물

[최종수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우리나라는 국제연합(UN)이 정한 물 부족 국가일까요? 우리 예상과는 달리 답은 ‘아니오’입니다.

십 수 년 전 우리나라는 UN이 정한 물 부족 국가라는 것이 정설처럼 됐습니다. 일부 시민단체가 근거가 없다는 주장을 제기하며 정부의 답변을 요구했는데요, 정부는 우리나라가 UN이 정한 물 부족 국가라는 것은 잘못 알려진 사실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우리가 정설처럼 알던 물 부족 국가라는 것은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요? 출발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93년 미국의 인구행동연구소(PAI·Population Action International)는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간 가용 수자원 양이 153개 국가 중 129위라며 ‘물 스트레스 국가’로 분류했습니다.

몇 년 뒤 UN 인구국이 발간한 보고서에 이 수치가 인용됐고, 국내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UN이 정한 물 부족 국가’로 됐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보고서를 쓴 인구행동연구소는 인구문제 해결에 관심을 둔 미국의 사설 연구소일 뿐으로 UN과는 아무 관련 없는 단체입니다. UN이 보고서를 인용했다는 점에서 공신력을 인정했다고 볼 수는 있지만 UN이 직접 우리나라를 물 부족 국가로 지정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인구행동연구소는 1인당 연간 물 사용 가능량이 1000㎥ 미만은 물 기근 국가, 1000~1700㎥는 물 스트레스 국가, 1700㎥ 이상은 물 풍요 국가로 분류했습니다. 이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물 사용 가능량은 1500㎥ 가량으로 산정돼 물 스트레스 국가로 분류됐습니다.

정부 해명으로 우리나라는 UN이 정한 물 부족 국가가 아니라는 점은 설명이 됐지만 물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국가라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물이 부족하고 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나라는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물 부족을 느끼는 이유가 강수량이 적어서가 아닐까 생각할 수 있지만 일 년 동안 내리는 비의 양은 1300㎜ 정도로 세계 평균 강수량 807㎜의 1.6배 정도 많습니다. 하지만 비가 여름에만 집중돼 쏟아지기 때문에 적절하게 관리하기가 어렵고 인구밀도가 높아 1인당 이용 가능한 강수량은 세계 평균의 6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의 강수량에 국토 면적 10만363㎢를 곱하면 우리나라에 일년 동안 내리는 비의 양이 되는데 이는 약 1323억t 정도입니다. 저수량 29억t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소양댐과 비교하면 이 댐을 45개 정도 채울 수 있는 양입니다.

1323억t 중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양은 372억t으로 3분의 1이 채 되지 않습니다. 이중 농업용수가 가장 많은 40% 가량을 차지하고 생활용수는 20%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여름 기간에 장마 등으로 이용하지도 못하고 하천을 통해 바다로 흘러나가는 물의 양은 388억t입니다. 이용하는 양보다 버려지는 물의 양이 더 많은 셈이죠. 이렇게 많은 물이 한 번도 이용되지 못하고 바다로 버려지는 이유는 비가 일정 기간에 너무 집중돼 모아 두고 이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같은 강수량을 가지고 있어도 비가 어떻게 내리는지 인구밀도가 얼마인지에 따라 이용 가능한 물의 양은 달라집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강수량인 영국을 예로 들면 강수량은 비슷하지만 인구밀도가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이기 때문에 1인당 이용 가능한 수자원량은 2400㎥ 정도로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큽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우리나라를 물 부족 국가로 분류한 기관이 UN인지 아닌지 여부를 떠나 수치로 볼 때 우리나라의 물 사정이 넉넉하지 않음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1인당 물 사용량은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은 편입니다. 우리는 하루에 1인당 280ℓ의 물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과 일본보다는 작지만 우리보다 물 사정이 넉넉한 유럽과 호주에 비해서는 큰 값입니다. 우리가 처한 물 사정에 비해 많은 양의 물을 사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나라가 물이 부족한데도 평상시 물 부족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상수도 보급입니다. 우리나라의 상수도 보급률은 99.3%로 거의 모든 가정이 상수도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상수도 보급이 잘 돼있다 보니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물 부족으로 단수 등 급수가 제한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에 물 부족을 체감하지 못하는 것이죠.

수도꼭지만 틀면 깨끗한 물이 쏟아지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다양한 곳에서 물을 끌어다 쓰고 있습니다. 하천과 호수에서 끌어다 쓰고 지하수를 퍼 올려서 쓰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하천과 호수는 말라가고 지하수도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물 스트레스 국가인 대한민국의 하천과 호수, 그리고 지하수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셈입니다.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University of Utah Visiting Professor △국회물포럼 물순환위원회 위원 △환경부 자문위원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자문위원 △대전광역시 물순환위원회 위원 △한국물환경학회 이사 △한국방재학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