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속 `엄친아`가 만드는 녹조 [물에 관한 알쓸신잡]

by이명철 기자
2021.08.21 11:30:00

식물플랑크톤 ‘남조류’가 없었다면

(사진=이미지투데이)
[최종수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녹조(綠潮), 환경에 관심이 많지 않아도 뉴스를 통해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 같습니다.

‘녹조’를 검색하면 ‘4대강 사업’이 연관 검색어로 나타날 정도로 민감한 사회적 이슈지만 정치적 색채는 빼고 생물학적인 얘기만 하려고 합니다.

녹조는 녹조류가 일으키는 걸까요? 질문의 분위기로 눈치 챘겠지만 정답은 ‘아니오’입니다. 녹조를 일으키는 것은 녹조류가 아닌 이름도 생소한 남조류라는 녀석입니다.

남조류(藍藻類, blue-green algae)는 녹조류(綠藻類, green algae)에 비해 약간 푸른색을 띤다고 해 붙여진 이름입니다,

녹조류와 남조류 등을 우리는 조류 또는 식물플랑크톤이라고 부르는데, 물속에 떠다니는 식물이라고 보면 됩니다. 하지만 남조류는 생물학적인 분류체계로 보면 식물로 완벽하게 진화하지 못한 세균입니다. 그래서 남세균(藍細菌, cyanobacteria)이라고도 부릅니다. 녹조류보다 한참 진화가 덜된 생물이라는 것이죠.

남조류가 녹조류보다 진화가 덜된 건 녹조류보다 남조류가 지구상에 늦게 나타났기 때문일까요? 이 물음에 대한 대답 역시 ‘아니오’입니다.

남조류는 29억~34억년 전에 출현한 것으로 추정하는데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구 나이가 46억년쯤 되니까 지구가 생기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생겨난 최초의 생명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랜 기간 동안 남조류는 왜 하등생물에서 고등생물로 진화하지 못했을까요? 진화의 의미가 생명체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변화하는 과정이라면 남조류는 진화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진화하지 않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지금의 덜떨어진 형태로도 지구상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종족을 유지해 왔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매년 여름이면 녹조라는 이름으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물속에서 식물플랑크톤이 성장하는 과정은 땅위에 있는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햇빛과 영양분이 충분하고 온도가 따뜻하면 잘 자랍니다.

햇빛을 잘 받을 수 있도록 물위에 잘 뜨고 영양분이 부족한 조건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 아주 훌륭하죠. 독성물질을 배출해 다른 경쟁자들의 성장을 방해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얄밉게도 남조류라는 녀석은 이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 눈에는 진화가 덜된 생물로 비취지만 사실 남조류는 식물플랑크톤계의 엄친아 또는 엄친딸인 셈이죠.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산다.’ 바로 남조류의 생존전략입니다. 남조류는 군체라고 하는 무리를 형성해 개체의 크기를 키워 포식자가 잡아먹기 어렵게 합니다. 마치 작은 물고기가 떼를 지어 있으면 큰 물고기가 쉽게 잡아먹지 못하는 것과 유사한 방어 방식이죠.

이 외에도 남조류는 독성물질을 분비해 포식자에 의해 잡아먹히지도 않고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식물플랑크톤의 성장을 방해함으로써 성장에 더욱 유리한 조건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쯤 되면 엄친아 수준을 넘어 식물플랑크톤계의 ‘일진’인 셈입니다.

남조류는 물고기의 부레와 같은 공기주머니를 가지고 있어서 항상 수표면에 떠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광합성에 절대적인 햇빛을 마음껏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녹조라고 부르는 수면의 이 띠는 햇빛을 차단하기 때문에 수면 아래에 있는 다른 식물플랑크톤의 광합성을 방해합니다.

남조류는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인 질소와 인이 부족해져도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콩과식물의 뿌리혹박테리아처럼 대기 중에 있는 질소를 이용해 필요한 영양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진화의 잣대로 보면 남조류는 많이 덜떨어진 생물이지만 그들은 나름대로의 생존전략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생물이 되었습니다.

이렇게만 얘기하니 남조류가 지구상에 백해무익한 천덕꾸러기 같지만 사실은 남조류가 없었다면 지구상에 생명체는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 산소 때문입니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명체는 지구에 존재하는 20%의 산소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조류가 처음으로 나타났던 30억년 전쯤의 초기 지구의 대기에는 0.0001% 미만의 산소가 존재했습니다. 지금의 생물이 살 수 없는 조건이었죠.

극미량으로 존재했던 산소가 지금의 20% 수준으로 늘어날 수 있던 것은 바로 원시 지구 해양에 존재했던 원시 미생물 덕분입니다.

특히 남조류는 광합성을 통해 산소와 유기물을 만들어냄으로써 인간을 포함한 산소호흡을 하는 다양한 고등생물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인간에 의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생물이지만 남조류가 없었다면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의 다양한 고등생물은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University of Utah Visiting Professor △국회물포럼 물순환위원회 위원 △환경부 자문위원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자문위원 △대전광역시 물순환위원회 위원 △한국물환경학회 이사 △한국방재학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