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서 방빼는 식음료·유통社

by전재욱 기자
2021.01.08 05:15:00

KT&G 이란법인 청산 절차 개시 허가 지난달 최종 승인
11년째 제자리 BBQ…화장품 미샤, 작년 판매 중단
`기회의 땅` 여겨 2014년 교역 전성기 누렸으나
국제사회 제재 불확실성 커지며 고꾸라진 시장

[이데일리 전재욱 함지현 기자] 한국 식음료·유통기업이 최근 이란 사업 철수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현지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위험을 줄이려는 움직임인데, 최근 양국 간에 불거진 외교 마찰로 이런 기류가 거세질지 주목된다.

7일 업계에 따르면 KT&G는 지난달 이란 정부로부터 현지 법인(KT&G Pars) 청산 절차 개시 허가를 최종 인가받았다. 현지 법인 철수는 2009년 설립 이후 11년 만이다. 애초 이란 법인은 터키 법인과 함께 중동 공략의 교두보였다. 그럼에도 KT&G 이사회는 2019년 12월 이란 법인 청산을 결정했다. 국제사회의 이란 경제 제재 여파가 커진 데 따른 것이었다.

철수조차 KT&G 맘대로 되지 않았다. 이란 당국의 행정 절차가 늘어지면서 청산 절차 개시 허가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개점휴업 상태에 머물며 지난해 매출 ‘0원’을 기록했는데, 법인 운영비가 발생해 분기마다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KT&G 관계자는 “미국 경제 제재가 세지면서 사업을 진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내린 결정”이라며 “우리가 철수를 결정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서 현지 정부 승인이 떨어지기까지 1년을 기다렸다”고 말했다.

치킨 프랜차이즈 BBQ는 이란 사업이 정체한 상태다. 2010년 마스터프랜차이즈(판권 판매) 형태로 1개 점포를 내어 유지하고 있다. 이슬람 교세가 센 중동에서 가금류 수요가 클 것으로 판단했다. 돼지고기를 안 먹기 때문에 대체재로 꼽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출 11년을 맞은 현재까지 외형 확장은 이뤄지지 않았다. BBQ 관계자는 “이란 점포를 유지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뷰티·유통 업계도 마찬가지다. 미샤 브랜드를 운영하는 화장품 제조사 에이블씨엔씨는 지난해 하반기 이란 현지 판매를 중단했다. 거래가 급감한 데 따른 것이다. 회사 측은 “코로나19 여파로 하반기부터 거래가 중단됐다”고 말했다.



2017년 현지에 진출한 BGF리테일도 손해를 보고 철수한 사례다. 당시 편의점 브랜드 CU를 마스터프랜차이즈 형태로 진출했으나 한 해 만에 접었다. 이란 협력사에서 계약을 해지한 탓이다. 이로써 발생한 손실로 대손충당금 46억원을 쌓아야 했다.

이란 식음료 수출 추이(표=김정훈 기자)
이란은 한국 식음료 업계에 기회의 땅이었다. 세계 18위(8502만명) 인구를 가진 이란에서 입으로 들어가는 수요를 잡는 것은 매력적이었다. 한국 식음료업계의 현지 진출이 본격화한 것은 2010년대 초반이다. 그전까지 가전과 공산품 등에 한정돼 있던 이란 수출 품목이 식음료 가공품까지 확장하기 시작했다. 수출입무역통계를 보면 대(對) 이란 수출 규모(액수 기준)는 2014년(4919만 달러) 정점을 찍었다.

한류 열풍도 호재였다. 이란 국민이 먹지 않았던 라면을 반짝 수출하던 시기(2014~2015년)도 있었다. 이란 수출 경험이 있는 업체 관계자는 “현지에서 과즙과 과향이 들어간 껌과 음료 제품의 반응이 좋았다”며 “기후 사정상 다양한 과일을 맛보기 어려운 사정이 반영된 것으로 이해한다”고 전했다. 이어 “매출만 보면 주력 시장은 아니지만 새 시장으로 평가할만했다”고 말했다.

이후 이란으로 수출은 감소하기 시작해 지난해(11월 누적) 56만 달러까지 고꾸라졌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가 이란 압박 수위를 높인 영향을 받았다. 수출 품목도 전성기 때는 축산, 수산, 농산 등 7개였으나 지난해는 농산(소비재)과 음료 2개로 줄었다. 지난해 이란 식음료 수출 99%를 차지한 것은 인삼이다. 그나마 중소업체에서 간헐적이고 산발적으로 이뤄진 무역이다. 인삼 가공산업 국내 1위의 한국인삼공사 관계자는 “이란으로 제품을 수출한 적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