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티로더가 '픽' 닥터자르트…'2조 기업' 일군 이진욱 대표
by함지현 기자
2019.11.20 06:40:00
국내 BB크림 대중화 시작으로 전 세계 37개국 진출
예술적 영감·제품력 더한 더마코스메틱 브랜드
중저가 입지 확고·향후 성장 기대…"기업 가치 적절"
 | 이진욱 해브앤비 대표(사진=해브앤비) |
|
[이데일리 함지현 기자]“이건 못 보던 제품인데…” 지난 2003년 봄. 건축학도 출신으로 건축 감리회사에서 일하던 한 20대 청년은 얼굴에 난 트러블을 치료하기 위해 피부과를 방문했다가 우연히 블레미시 밤(Blemish Balm)의 존재를 알게 됐다.
이른바 ‘BB크림’이다. 독일에서 개발한 기능성 제품으로, 당시만 해도 피부과 치료 후 흉터를 감추기 위해 사용하던 비싼 화장품이었다. 마침 일부 연예인들이 사용한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관심이 높아지던 시기였다.
평소 ‘글로벌 비즈니스’에 대한 환상이 있던 젊은 청년은 눈이 번쩍 뜨였다. 이후 관련 제품 연구에 몰두, 2004년 해브앤비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다음 해 ‘닥터자르트(Dr.Jart+)’라는 이름으로 BB크림을 출시했다.
그로부터 15년 뒤. 글로벌 화장품 기업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로부터 2조원의 가치를 인정받고 아시아 기반 뷰티 브랜드로서 첫 인수가 이뤄졌다. 당시 20대 후반이던 이 청년은 막대한 부의 창출은 물론, 향후 해브앤비의 창립자 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게 됐다. 바로 이진욱 해브앤비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세상에 없는 제품’을 만들어 내는 데 집중해왔다. 예술에서 영감을 받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은 물론, 탄탄한 제품력이 주는 의외성이 닥터자르트의 본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핵심은 코스메슈티컬(Cosmeceutical·화장품과 의약품 합성어)이다. ‘닥터 조인 아트(Doctor Join Art·예술과 만난 의사)’에서 따온 닥터자르트라는 브랜드만 봐도 이 같은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지금의 닥터자르트를 있게 한 BB크림의 탄생도 마찬가지다. 그는 첫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 위해 화장품 관련 세미나에서 의사들과 소통을 하며 인연을 만들어갔다. 이를 통해 18명의 피부과 전문의로 구성된 자문단과 함께 신뢰받을 수 있는 제품을 개발했다.
그 결과 BB크림은 피부과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비싼 병원 화장품에서 소비자가 쉽게 만날 수 있는 화장품이 됐다. 출시 후 ‘생얼’ 트렌드가 맞물리면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출시와 동시에 BB크림 판매 1위 제품이 됐다.
이후에도 소비자들이 궁금해할만한 아이템과 기존에 없던 시장을 개척하면서도 제품력을 놓치지 않는 ‘닥터자르트스러움’을 이어갔다.
그 결과 보습 제품인 ‘세라마이딘’, 중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마스크팩 제품 ‘더 마스크’, 피부회복을 돕는 ‘시카페어’, ‘바이탈 하이드라 솔루션’, ‘V7’ 등 히트 상품을 잇달아 출시할 수 있었다.
 | 닥터자르트 주요 제품들(사진=해브앤비) |
|
국내뿐만이 아니다. 이 대표는 ‘역발상’을 통한 닥터자르트의 해외 진출도 모색했다. 그는 경쟁사들이 중국 시장에 매달리던 2011년 미국의 세계적인 코스메틱 편집숍 세포라에 입점했다. 아시아에서는 널리 사용하던 BB크림이 미국 시장에는 없었다는 점을 기회로 삼고 뷰티 산업의 심장부로 직행한 것이다.
2012년부터는 매년 유명 패션쇼를 통해 자사 제품을 소개했다. 그 덕분에 미국 ‘보그’와 ‘인스타일’ 등 주요 패션 잡지뿐 아니라 NBC 인기 프로그램에 주목할 만한 제품으로 조명되면서 인지도를 높였다.
세계 권역별로 다른 특색에 맞춘 수출 전략도 짰다. 흰 피부를 선호하는 아시아에는 미백(브라이트닝) 제품을, 건조한 날씨가 잦은 서구권에는 보습용 제품을, 히잡이나 차도르를 쓰는 만큼 피부 트러블이 많은 중동에는 스킨케어 제품을 강화하는 식이다.
닥터자르트는 미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미주, 동남아, 유럽 등 세계 37개국에 진출해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닥터자르트의 모기업인 해브앤비가 에스티 로더로부터 17억 달러(한화 약 2조원)의 기업 가치를 평가 받은 비결에 집중한다.
먼저 중저가 브랜드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지고 있는 것이 이유로 꼽힌다. 해브앤비는 지난 2015년 에스티 로더로부터 첫 투자를 받은 이후 매년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였다. 2015년 863억원이던 매출은 올해 약 7.5배 오른 6500억원으로 예상된다. 이 중 국내(면세포함) 매출이 70%, 해외가 30% 비중을 차지한다.
전영현 SK증권 연구원은 “닥터자르트는 업황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국내외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고 인지도도 높아지고 있다”며 “작년 영업이익 1100억원과 성장률을 감안하면 2조원이라는 가치는 적정한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글로벌 뷰티 대기업들이 포트폴리오 확장을 위해 중저가 화장품을 강화하는 추세와 맞물려 이번 인수가 이뤄졌다는 평가도 있다. 지난 2017년 글로벌 생활용품 전문기업 유니레버가 화장품 브랜드 AHC를 운영하는 카버코리아를 3조원이 넘는 금액에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닥터자르트가 핵심으로 진행 중인 더마코스메틱(Dermocosmetic·화장품과 피부과학 합성어)의 시장 상황과도 연관이 있다.
전 세계 더마코스메틱 시장 규모는 2017년 기준 약 52조원으로 전체 화장품 시장의 12%를 차지하고 있다. 내년에는 약 81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에스티 로더는 닥터자르트를 통해 스킨케어 부문을 강화하고 아시아·태평양, 북미, 영국 등에서 영역을 확장하겠다는 방침이다.
파브리지오 프레다 에스티 로더 회장 겸 대표이사는 “닥터자르트가 주안점을 두고 있는 피부과학과 혁신적 역량, 예술적 표현을 결합한 고품질 스킨케어 제품은 에스티 로더의 다양한 고급 뷰티 브랜드 포트폴리오에 전략적으로 추가하기 적합하다”며 “앞으로도 세계적인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1976년 전주 출생 △2004년 해브앤비 주식회사 창립 △2017년 한국을 빛낸 올해의 무역인상 △2017년 제41회 국가 생산성대회 종합대상 대통령 표창 △2018년 제52회 납세자의 날 모범납세자 산업포장 △2018년 제55회 무역의 날 ‘5천만 달러 수출의 탑’ 수상 △2019년 EY 최우수 기업가상 ‘젊은 기업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