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톺아보기]4년만에 재현된 순환출자금지 논쟁 영향은
by박수익 기자
2016.08.27 10:30:12
더민주 최운열 의원 ''기존순환출자 금지법'' 발의 예정
순환출자 놓고 2012년 대선 공약대결 4년 만에 재현
여소야대·롯데사태로 순환출자 재점화 등 달라진 환경
삼성·롯데는 순환출자 금지가 지배권에 미칠 영향 미미
현대차·현대중공업은 지배권에 직접적인 영향 불가피
[이데일리 박수익 기자] 정기국회가 다음 주 개원합니다. 국회법에 따라 정기국회 개원 날짜는 매년 9월 1일로 정해져있는데요. 물론 개원하자마자 곧바로 법률안을 심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20대 국회 첫 정기국회인 만큼 여·야간 중점 추진 법안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34개 경제민주화 중점입법 과제라는 것을 지난 24일 발표했는데요. 이 가운데 대기업 지배구조와 연관된 법이 다수 있습니다. 특히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기존 순환출자를 금지하겠다’는 법안이 포함돼 있습니다. 아직 발의는 안됐는데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할 예정입니다.
우선 순환출자란 것은 A기업이 B기업에 출자, 즉 돈을 내서 지분 등을 보유하고 다시 B기업이 C기업에 출자, C기업은 다시 A기업에 출자하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A→B→C→A 형태로 한 바퀴가 돌아가는 것입니다.
순환출자는 그동안 아무런 금지규정이 없다가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경제민주화 정책 경쟁을 벌이면서 모든 여야 유력후보 진영에서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대선 이후 ‘앞으로 생겨나는 새로운 순환출자는 금지하고 기존의 순환출자는 인정하되 그 고리를 강화하는 추가출자도 금지한다’는 법이 만들어졌고 2014년 7월25일부터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번에 발의될 예정인 법안은 기존의 순환출자도 일정한 유예기간을 둬서 다 해소하도록 강제한다는 법안입니다.
2012년 대선 때 여야 후보 진영에서 모두 순환출자 금지 공약을 내세웠다고 말씀드렸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차이가 꽤 컸습니다. 당시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 모두 신규순환출자 금지에는 찬성했지만 기존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순환출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습니다. 박근혜 후보 측은 “기존출자는 인정해줘야한다. 기존출자까지 해소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고 소급적용이여서 재산권 침해 논란이 있고, 경영권방어비용도 막대하다. 그래서 그 비용으로 투자와 일자리창출에 쓰는 게 좋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반면 문재인 후보 측은 “순환출자 해소가 재벌들의 주장처럼 큰돈이 들지 않고 경영권 위협논리도 과장된 측면이 있다. 그래서 별도의 외국 투기자본을 방어할 적대적M&A 대비책은 보완하겠지만 기존 순환출자는 3년의 기한을 주고 다 해소하도록 해야 한다”는 공약을 내놓았습니다. 안철수 후보는 신규순환출자만 금지하고 기존출자는 자율적 해소를 유도하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다만 안 후보 측은 계열분리명령제 도입과 같은 다른 강화된 재벌규제 공약을 제시했습니다. 아무튼 대선 승리자는 박근혜 후보였고 이후 만들어진 순환출자 관련법도 결과적으로 박근혜 후보의 공약사항을 반영해서 현재 시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다시 한번 더불어민주당이 기존순환출자 금지법을 발의하면서 4년 만에 다시 한 번 순환출자 문제가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것인데요. 아직 본격 논의가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4년 전 여야 대선후보들이 지금은 대통령이고 각 당의 유력 대선주자이니까 기본적으로 4년 전과 비슷한 입장일 것으로 예상합니다.
다만 달라진 환경도 감안해야합니다. 대선 국면의 정치적 변수는 동일하더라도 4년 전과는 다른 여소야대 국면, 롯데그룹 형제분쟁으로 순환출자 문제 재점화 이슈가 있습니다. 아울러 2014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신규순환출자금지법’도 사실상 입법취지는 ‘순환출자 자체가 소유구조를 왜곡하는 제도이고 따라서 기존출자도 금지해야하지만 부작용이 있으니 그건 자율적으로 해소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법 시행이후 자율적으로 해소하는 움직임을 보이진 않았거든요. 롯데의 경우 작년에 순환출자 고리를 대폭 줄이긴 했지만 형제간분쟁이 촉발한 것이지 자발적 의사결정이라 보긴 어렵습니다.
| 순환출자가 있는 대기업 집단 현황, 연도별 숫자는 순환출자 감소 추이를 보여줌.(자료: 자료 공정거래위원회. 2015년말 기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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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출자 규제대상은 모든 기업이 아니고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불리는 대기업집단만 해당합니다. 그룹수로만 보면 삼성그룹부터 효성그룹까지 총 32개 그룹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순환출자 고리가 있는 곳은 삼성·현대차·롯데·현대중공업·대림·현대백화점·영풍 ·현대산업개발 8개 그룹(2015년 12월말 공정위 자료 기준)입니다.
순환출자하면 그동안 롯데그룹이 대표적인데요. 사실 롯데는 순환출자 고리는 많지만 그룹 지배구조상 큰 변동을 초래할 수준은 아닙니다. 롯데의 순환출자 고리는 작년 6월말 416개였으나 6개월만인 작년 말 349개를 줄여 67개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엄청난 변화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4번의 소규모 지분거래가 있었을 뿐입니다. 롯데의 순환출자는 하나의 고리만 해소하면 굴비처럼 여러 개의 고리가 함께 해소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롯데에 현재 남은 순환출자 고리도 예컨대 롯데쇼핑(023530)이 보유하고 있는 광고계열사 대홍기획 지분을 정리하면 22개 순환출자가 한꺼번에 없어집니다. 대홍기획은 롯데 지배구조 핵심이 아니어서 지배권 변동을 초래하지는 않습니다.
삼성그룹도 삼성물산(028260)과 제일모직 합병 전후로 핵심 출자 고리를 정리해서 순환출자 금지가 이제 큰 이슈는 아닙니다. 삼성화재(000810)(1.37%)·삼성SDI(006400)(2.11%)·삼성전기(009150)(2.61%) 3개 계열사가 보유중인 물산 지분을 정리하면 남은 순환출자가 해소됩니다. 3개 계열사의 물산 지분율 합계는 6.09%입니다. 설령 이 지분을 모두 외부에 매각해도 삼성물산의 경영권이 위협받는 수준이 아닙니다. 이를 제외해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대주주 지분율이 30%를 넘고, 백기사 KCC(8.97%)와 자사주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 그룹보다 순환출자 금지 이슈를 보다 크게 느낄 수밖에 없는 곳은 현대차그룹이고 그 다음은 현대중공업그룹입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012330)가 현대차 1대주주이고 현대차는 기아차 1대주주, 기아차는 모비스 1대주주입니다. 현대차그룹의 뼈대입니다. 그런데 이 구조에서 순환출자 고리를 끊겠다면, 예를 들어 현대모비스가 현대차 지분 20%를 가지고 있는데요. 이 지분을 매각하면 현대차 대주주 지분율은 7%로 확연히 감소합니다. 또는 현대차가 기아차 지분을 34% 가지고 있는데요. 이를 매각하면 기아차 대주주 지분율은 정의선 부회장이 가지고 있는 1.7% 밖에 남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현대차그룹 계열사 숫자도 많지 않아서 다른 계열사가 매입해주기도 어렵습니다. 결국 현대차 입장에서는 순환출자를 금지시키면 그룹의 전체 판도를 완전히 바꿔야합니다.
그래서 시장에서 나오는 관측들은 장기적으로는 현대차그룹이 현 체제에 변화를 준다고 가정할 경우 기아차(000270)와 현대모비스(012330)를 각각 분할해서 홀딩스(지주회사)를 만드는 방안 등이 거론됩니다. 물론 현대차그룹에는 금융계열사도 있어서 중간금융지주회사법 개정 여부도 맞물립니다. 또한 현대글로비스에 주목해야한다는 얘기도 계속됩니다. 정의선 부회장이 지분 일부를 팔긴 했지만 여전히 23.3%를 가지고 있는 글로비스 가치가 커져야 훗날 지배구조 개편 시 활용할 수 있는 옵션이 많을 것이란 관측입니다. 글로비스가 국내외 인수합병(M&A)과 같은 확장정책을 펼칠 지 지켜볼 대목입니다.
현대중공업(009540)은 단 하나의 순환출자 고리가 있는데 이 고리가 그룹의 전부입니다.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중공업으로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가장 지분율이 낮은 고리는 현대미포조선이 가지고 있는 현대중공업 지분(7.98%)입니다. 현대중공업은 앞으로 두 가지 지켜봐야할 변수가 있는데요. 현 최대주주인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에서 2세(정기선 전무)로의 지분 승계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과 주력사업인 조선업 침체국면이 장기화되면서 그룹전반의 사업재편을 모색해야한다는 점입니다. 이 과정에서 순환출자 이슈까지 맞물리면 현 체제와는 다른 지배구조 그림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대중공업이 순환출자를 끊고 후계 지분승계도 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미포조선이 보유한 현대중공업 지분을 2세가 매입하면 되는데요. 하지만 해당 지분 금액이 8000억 원에 이르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그래서 현대중공업의 자사주(13%)를 활용해서 지주회사 전환을 장기적으로 모색하거나, 그룹 사업재편 과정에서 현대중공업이 지분 95%를 가지고 있는 삼호중공업을 합병하는 방안 등도 시장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습니다.
순환출자는 과거 기업들이 계열사를 확장하거나 부실계열사를 지원할 때 부족한 자금을 외부 돈보다는 자체적으로 이리저리 돌려서 출자하다보니 생긴 것입니다. 금지된 상호출자(A기업과 B기업이 서로 지분보유)를 할 수 없으니 파생된 현상인데 기업을 경영하는 입장에서는 불가피했던 측면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순환출자는 일종의 가공자본이어서 총수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전체계열사를 지배해 소유구조를 왜곡하고 한 계열사가 부실해지면 연결된 다른 계열사에도 위험이 옮겨갈 수도 있습니다. 이는 어느 한쪽의 급진적 시각이 아니라 현재 시행하고 있는 신규 순환출자금지법을 도입할 때 입법 취지입니다.
입법취지대로라면 기존 순환출자도 금지해야하지만 부작용이 있으니 자율적이고 점진적으로 해소하도록 해야합니다. 아직 법 개정도 논의도 이뤄지지 않았으니 기업들이 아무런 준비 없이 손 놓고 있을 것이란 가정은 오히려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기업들도 분명 중장기적인 지배구조 개편을 모색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주식시장에서도 지속적으로 관련 기업들의 이름이 오르내릴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