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밑으로 원샷?..'직급별 소주잔' 홍보 물의

by유태환 기자
2016.08.04 06:30:00

''처음처럼'' 홍보 목적 제작
"강압적 음주 문화 조장" 비난 쇄도
롯데주류 "직장인 애환 고뇌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것"

GS25 편의점에서 ‘처음처럼’ 6병이 들어 있는 세트를 구입하면 사은품으로 제공하는 5종류의 직급별 소주잔. (사진=GS25 페이스북 페이지 갈무리)
[이데일리 유태환 기자] 롯데주류와 편의점 프랜차이즈 GS25가 공동 진행 중인 ‘처음처럼’ 홍보 이벤트가 그릇된 음주 문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수평적 관계’와 ‘탈(脫)권위’가 화두인 시대 흐름을 거스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유통업계 등에 따르면 GS25는 지난주부터 ‘처음처럼’ 소주 6병 들이 세트를 사면 ‘직급별 소주잔’ 가운데 2개를 사은품으로 주고 있다. 문제는 소주잔에 적힌 글귀가 기업 내 권력 서열화와 음주 강요 문화를 반영하고 있어서다. 직급별 소주잔 중 ‘사장처럼’ 잔에는 ‘내 밑으로 원샷! 나는 반 샷’, ‘부장처럼’ 잔에는 ‘끝까지 남는 놈이 내 새끼여, 마셔!’, ‘과장처럼’ 잔에는 ‘내 밑으로 꺾지 마라’, ‘대리처럼’ 잔에는 ‘안주 하나만 더 시킬까요?’, ‘사원처럼’ 잔에는 ‘주는 대로 마시겠습니다’고 적혀 있다.

사은품 사진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대학 커뮤니티 게시판 등 온라인에 퍼지면서 “술 강요 분위기 ‘극혐’(극도로 혐오)이다 진짜” “회사의 음주 강요 문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고 있다”는 등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공무원인 박모(29·여)씨는 “주는 대로 마시겠다니…술 못 마시는 사원은 어떡하라는 말이냐”며 “마치 술 잘 마시는 사람이 살아 남는다는 조직 문화를 조장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 불쾌하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잘못된 풍속을 과장하거나 부추겨도 판매만 늘리면 된다는 사고 방식은 잘못”이라며 “강압적인 음주 문화를 바꾸기 위해 공공기관과 대기업부터 의식을 개선하고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당 업체 측은 그러나 “직장인들의 애환과 고뇌를 우스개로 표현한 것일 뿐”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롯데주류 관계자는 “사원부터 사장까지 직급에 맞는 회식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해 그들의 애환을 담아내고자 기획했다”며 “직장인들의 일상생활을 함께 공감하자는 차원에서 준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전에도 강압적인 음주 문화를 대수롭지 않게 언급했다 여론의 지탄을 받은 사례들이 있었다. 지난해 말 기획재정부는 공식 페이스북에 ‘연말 술자리 예절 알려드립니다’란 제목의 글을 올렸다가 빈축을 샀다. 당시 기재부는 △어른에게 술을 받을 때나 따를 때는 두 손을 이용 △어른과 술을 마실 때에는 어른의 반대쪽 방향으로 고개 돌리기 △술은 못 마셔도 첫 잔은 예의상 받기 △적당히 마시고 취기에 실수하지 않기 등을 술자리 예절로 꼽았다. 이를 본 네티즌들 사이에서 ‘전형적인 윗사람의 시각’ ‘정부가 이젠 술 먹는 법까지 주도하냐’는 등 거센 비판이 일자 기재부는 해당 글을 삭제했다.

하종은 카프성모병원 알코올치료센터장은 “술을 강요하는 게 당연하고 술을 마시지 못하면 마치 인간 관계·경쟁 관계에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듯한 인식이 우리 사회의 왜곡된 음주문화를 조장하고 있다”며 “각자의 상황에 맞게 술을 조절하며 마시고 즐길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음주문화를 개선해 나가야한다”고 강조했다.

5종류의 직급별 소주잔 가운데 2개를 사은품으로 받을 수 있는 GS25 편의점 ‘처음처럼’ 6병 들이 묶음. (사진=GS25 페이스북 페이지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