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통토크]"줌마렐라 축구단 총단장이 접니다"

by최훈길 기자
2015.12.14 07:00:00

여성친화 도시 선언한 정찬민 용인시장 인터뷰
“‘빚·비리·호화청사’ 논란 털고 제2 전성기로”
“70% 부채 감축 성과, 내년까지 부채 0원”
“비리는 사전에 차단하고 규제 풀어 기업 투자유치”
“간부 집무실 없애고 시청광장은 시민에게 돌려줘”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정찬민(57·사진) 용인시장 집무실에는 시장 명패가 없다. 정 시장은 “용인시장이 아니라 ‘줌마렐라 축구 총단장’으로 소개해달라”고 말한다. 98만여명이 거주하는 용인은 행정 규정상 특별시가 아니다. 하지만 용인시장 명함에는 ‘여성특별시 용인’이라는 슬로건이 떡하니 박혀 있다.

‘줌마렐라’(아줌마+신데렐라)는 전업주부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축구단이다. 이는 여성친화 도시를 뜻하는 ‘여성특별시’ 관련 용인시가 내놓은 주요 정책 중 하나다. 축구단 창단 당시 반응은 미지근했다. 정 시장은 “여성들이 집에만 있으면 우울증에 걸린다. 축구를 안 하더라도 함께 모여서 시합을 즐기면 스트레스를 푸는 효과가 있다”며 축구단을 독려했다.

불과 6개월 만에 31개 모든 읍·면·동에 줌마렐라 축구단이 꾸려졌다. 지난해에는 ‘축구 페스티벌’까지 열렸다. 올해도 32개팀이 참여해 갈고 닦은 기량을 겨뤘다. 줌마렐라 축구단은 봉사활동, 바자회까지 축구단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정 시장은 “요즘에는 ‘(줌마렐라 축구단) 줌마에요’라며 인사하는 시민들이 많다”며 웃었다. 정 시장의 부드러운 리더십이 용인시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는 평가다.

정찬민 용인시장이 지난 9일 집무실에서 이데일리와의 인터뷰를 통해 “내년까지 부채 0원을 목표로 빚 갚는데 올인하겠다”며 “안정된 도시 이미지를 만들겠다”고 말했다.[사진=이데일리 김정욱 기자]
10여년간 용인시는 수도권 인구유입 효과로 빠른 성장세를 누려왔지만, 그늘도 적지 않았다. 불과 1년여전만 해도 ‘빚·비리·호화청사’라는 세 단어가 용인시 관련 기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1조원 이상을 투입해 건설한 용인경전철은 매년 수백억원씩 손실을 내는 애물단지로 전락했고 시가 출자해 설립한 용인도시공사마저 부도 위기에 내몰려 시 재정을 압박했다. 정 시장은 작년 6월 용인시장에 취임할 당시 용인시는 ‘부도위기’였다.

정 시장은 “그동안 재정위기 극복과 도시 체질 개편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했다”며 “내년 말까지 ‘부채 0원’을 달성하는 게 가장 큰 숙제”라고 했다.

현재까지는 순조롭게 일이 풀리고 있다는 게 정 시장의 판단이다. 용인시에 따르면 시정운영의 발목을 잡아왔던 채무는 1302억원으로 정 시장 취임 당시보다 70% 이상 줄었다.

정 시장은 “사업비 조정과 불용재산 매각 등으로 지방채를 상환하고 환승할인 등을 통해 용인경전철 승객을 늘려 경전철 재정난을 풀어갔다”고 설명했다. 2012년 5153억원에 달했던 경전철 사업의 지방채는 올 들어 모두 상환했다.

역북지구의 매각 지연에 따라 발생한 용인도시공사의 부채는 조기 매각을 통해 풀었다. 정 시장은 역북지구의 강점을 기업들에 직접 홍보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이 결과 지난해 공동주택용지를 사실상 완판해 부채 상환 재원을 확보했다. 또 올해 11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3209억원을 조기 상환해 용지보상채권을 제외한 금융부채를 모두 갚았다.

민선 5기를 거치는 동안 역대 용인시장은 모두 뇌물수수 등 금품비리나 인사비리 등으로 법정에 서는 불명예를 안았다. 부동산 개발 사업과 관련 인허가 과정에서 뒷돈을 받았다가 탈이 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용인시장실 천장에는 폐쇄회로텔리비전(CCTV)가 설치돼 시장실 내부를 24시간 녹화한다. ‘청렴한 시정’을 약속한 정 시장의 아이디어다. 시장실에 찾아와 청탁하는 인사들은 물론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 효과도 있다.

정 시장은 “법조 출입기자 때 경험을 살려 아예 청탁 등 비리에 연루될 만한 일은 사전에 피해 나간다”고 했다. 그렇다고 정 시장이 기업인들을 무작정 멀리하는 것은 아니다.



직접 현장을 돌아다니며 불필요한 규제를 찾아내 풀었다. 작년 말 기준으로 상위법령 개정건의 116건, 자치규제 개선 49건, 임의규제 개선 18건 등의 제도개선 성과를 냈다.

“취임 당시 인·허가 관련 민원이 수백 건이나 쌓여 있었어요.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당사자들을 직접 쫓아다닌 덕에 이제 대부분 해결했어요. 가능하면 풀어주는 쪽으로 해결했지만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때는 ‘절대 안된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습니다.”

시장의 발품은 곧바로 성과로 나타났다. 공장 증설 규제에 막혀 다른 도시로 이전을 검토했던 KCC연구소, 제약회사인 녹십자는 최근 용인시 재투자를 결정했다. 제일약품과 태준제약은 각각 백암면과 남사면에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공장 증설을 추진 중이다. 용인시는 ‘2014년 지자체 규제개혁평가’에서 최우수 지자체로 선정돼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호화 청사 논란은 ‘시청을 시민에게 돌려주겠다’는 의지로 해결책을 찾았다. 시청앞 광장은 용인시민들의 놀이터다. 올들어서만 사이버과학축제, 음식문화축제 등 20여건의 행사가 시청앞 광장에서 열렸다.

여름철에 문을 연 시청앞 물놀이장은 한달여 동안 11만명이나 되는 용인시민이 찾아와 지역사회의 새로운 명소가 됐다. 현재는 이달내 개장을 목표로 썰매장 공사가 한창이다. 내년부터는 용인문화재단 주최로 광장에서 영화도 상영할 예정이다.

불필요하게 넓기만 했던 1층 민원실 로비는 공연장이 됐다. 청사내 태교카페에는 임신부들이 명화 감상을 할 수 있는 갤러리도 운영 중이다.

반면 원목 테이블, 육중한 고가의 쇼파 등 호화로운 시장 집무실 집기들은 실용적이고 저렴한 제품으로 바꿨다. 시청사 5층 간부공무원 집무실도 모두 없앴다.

정 시장은 “‘소통 행정’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내가 먼저 시민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했다”며 “취임 당시에는 ‘호화청사 시장’이라고 많이 두들겨 맞았는데, 요새는 시청에서 일하는 공익 근무요원들까지도 ‘호탕하고 소통 잘하는 시장’이라고 말해줘 뿌듯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남은 임기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묻는 우문(愚問)에 정 시장은 ‘소통 행정’이라는 현답(賢答)을 내놨다.

“기자 일을 할 때 ‘모든 답은 현장에 있다’는 것을 절실히 체험했습니다. 현장에서 시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행정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용인에서 태어나 신갈초등학교와 신갈중학교를 나온 용인 토박이다. 수원 유신고를 거쳐 경희대, 경희대대학원(경영학 석사)을 졸업한 뒤 중앙일보에 입사해 수도권취재본부장을 지내는 등 20여년간 언론인으로 일했다. 정치에 발을 디딘 후 새누리당 경기 용인을(기흥) 당협위원장, 중앙당 수석부대변인을 지냈다. 한국기업경영종합연구원 수석연구원, 경희대 테크노경영대학원 겸임교수 등도 역임했다. (진행=김정민 에디터, 정리=최훈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