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rd SRE]현대상선.한진해운 구조조정 성공할까

by김도년 기자
2016.05.16 07:37:04

‘악화 업종’ 공동 1위…불황에 대처하지 못한 죄

[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현대상선, 재무능력 대비 과다한 부채로 자체 재무구조 개선 불가능’ ‘한진해운, 근본적인 재무구조 개선과 선대 개편 등 경쟁력 향상 없이는 중장기적 생존 가능성 불확실’

크레딧애널리스트가 내린 평가가 아니다. 정부가 보도자료에서 밝힌 해운사들의 현실이다. 정부는 조선업과 함께 해운업을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구조조정 대상 업종으로 꼽았다.

23회 SRE에서 해운업은 최근 6개월 내 업황이 악화한 산업으로 조선업과 공동 1위에 올랐다. 설문에 참여한 회사채 시장 참여자 141명 중 58명(41.1%)이 해운업에 표를 던졌다. 지난 22회 SRE에선 업황 악화 순위 4위에 올랐는데 6개월이 지난 사이 1순위로 오른 것이다.

해운업의 위기는 곧 두 대형 해운사인 현대상선(011200)과 한진해운(117930)의 위기라고 볼 수 있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이 두 해운사의 신속한 구조조정 필요성에 대해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왔다. 한 신평사 연구원은 “돈이 될 만한 자산은 모두 매각하는 내용의 자구계획을 진행하면 할수록 기업이 더욱 망가지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며 “지원해서 살려내기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편이 효율적일 것”이라는 냉정한 의견마저 내놓고 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현재 채권단과 조건부 자율협약을 맺고 구조조정 절차에 들어갔다. 한진해운은 올해말까지 총 1조5115억원의 차입금 만기가 도래한다. 금융기관 차입금이 4811억원으로 가장 많고 선박금융과 리스가 4207억원을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는 공모회사채 3166억원, 사모회사채 2932억원으로 구성돼 있다. 당장 올 6월말 71-2회차 회사채 1900억원에 대한 상환자금 마련이 필요하지만 지난해 말 기준 가용 현금은 1800억원 수준에 불과한 상황이다. 현대상선의 유동성 사정도 녹록치 않다. 올해 말까지 만기도래하는 총 1조 4146억원 규모의 차입금 중 이달 7월 24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가 도래하는데 가용 현금은 1200억원에 불과하다.

두 해운사가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지 않고 살아날 수 있으려면 해외 선주사들과의 용선료 인하 협상, 선박금융과 회사채 등 비협약채권의 출자전환 등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채권단 자율협약이 끝나기 전까지 운영자금을 감당하면서 빠른 시일 안에 이 모든 것들을 결론낼 수 있을 지도 관건이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국내 해운업계에서 해운사 부실을 이유로 용선료 인하 협상에 성공한 사례는 없었다. 이스라엘 컨테이너선사인 짐(ZIM)이 지난 2014년 용선료와 채무 재조정에 성공한 사례가 있었지만 이를 조정하는데도 1년 가까이 걸렸다.

선주사와의 협상에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회사채 등 기타 비협약채권 처리 문제와 채권단 채무 재조정 등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선주들에게 보상 방안을 제시하기가 쉽지 않고 선박금융 출자전환 비율과 채무조정 후 지분율 등 구체적인 협상안을 준비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선주사들도 용선료 인하에 동의할 가능성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한진해운, 현대상선의 법정관리 행(行)으로 용선계약이 파기되면 시장에선 훨씬 낮은 수준의 용선료 계약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약간 내리더라도 두 해운사와의 계약을 유지하는 것이 이득이다.

사채권자들도 마찬가지다. 법정관리 행으로 회사채 원금을 모두 돌려받을 수 없게 될 바에야 주식이라도 받는 것이 낫기 때문에 출자전환에 동의할 가능성이 더 크다.



채권단 자금 지원의 전제 조건들이 충족되면 금융기관들도 출자전환에 나서 부채비율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부채비율을 400% 이하로 낮추게 되면 시장과 정책당국이 함께 조성한 ‘선박펀드’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정책 당국은 ‘선박 신조 프로그램’을 마련, 해운사에 초대형 컨테이너선박 등을 지원해 세계 해운동맹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유지시켜 주기로 했다. 물론 이 모든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부채비율을 현재 수준보다 절반 이상 낮춰야 한다. 지난해 말 기준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은 1565.2%에 달하고 한진해운도 817%에 이른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물동량 감소는 해운업계에 직격탄이 됐다. 운임은 계속 하락해 경영 상황을 악화시켰고 세계 해운업계의 동맹 재편 움직임에 따라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는 상황이다.

위기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개별 해운사의 경영 실패는 위기를 더욱 키웠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모두 컨테이너 단일 사업부문에만 집중해 사업을 다각화하지 못했고 미주 노선에만 집중한 레드오션 전략을 수정하지 못했다. 컨테이너 단일 사업 부문 비중은 한진해운이 92%, 현대상선이 77%(지난해 연결 재무제표 기준)에 달하고 경쟁이 치열한 미주 노선 등의 집중도는 한진해운이 68%, 현대상선이 65%(올해 2월 운항선대 기준)에 이른다. 1만3300TEU 이상의 대형 선박을 보유, 원가 경쟁력을 높이지도 못했다. 불황을 이기려는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실패한 경영 전략을 수정할 노력을 게을리해왔던 것이다.

회사채 신속인수제 등 정부의 정책자금 지원도 이들이 경영 혁신을 하지 않고 정책자금에 의존하게 했다. 회사채 신속인수제로 지난해 말까지 한진해운 8387억원, 현대상선 1조432억원 등 총 1조9000억원 안팎의 차환이 이뤄졌지만 ‘밑 빠진 독에 세금 붓기’가 돼 버렸다.

구조조정이 진행되면 회사가 정상화되든 법정관리 절차로 가든 기존 대주주가 계속해서 경영을 할 수는 없게 될 전망이다. 채권단의 출자전환이 이뤄져 정상화 절차로 간다면 산업은행이 사실상 최대주주가 될 수 있고 법정관리 절차로 가게 되면 부채를 탕감 받은 회사를 헐값에 사들이려는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인수자로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대주주가 바뀌게 되는 것은 물론 비용 절감 차원에서의 인력 구조조정도 수반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고용 사정이 급격히 나빠질 것으로 보이는 하도급 업체와 업계 전반의 고용조정 상황을 고려해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 지원에 나서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되면 고용유지지원금으로 노동자의 고용 유지를 지원하고 퇴직자에 대해서도 전직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이 밖에도 갑작스럽게 직장을 잃게 된 사람들을 위한 실업수당 등 구조조정을 연착륙시키기 위한 사회적 안전망도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23회 SRE(Survey of credit Rating by Edaily)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문의: stock@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