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연호 기자
2015.12.04 06:10:00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승자의 저주`라는 나쁜 선례를 남긴 대표적인 그룹이다. 지난 2006년과 2008년 대우건설(047040)과 대한통운(현 CJ대한통운(000120))을 잇달아 인수하며 재계 서열 7위까지 치고 올라갔지만 ‘새우가 고래를 삼키는’ 식의 무리한 M&A로 그룹 핵심 회사인 금호산업(002990)과 금호타이어(073240)가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 개선작업)에 들어가면서 사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무리한 M&A로 인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과 그의 동생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관계는 루비콘 강을 건너고야 말았다. 하지만 박삼구 회장은 와신상담의 노력 끝에 워크아웃에 들어간지 6년만인 올해말 지주회사격인 금호산업을 되찾으며 그룹 재건을 눈 앞에 두게 됐다.
◇공격적 M&A 뒤탈…`승자의 저주` 초래
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 2010년 이후 2건의 M&A를 성사시켰다. 지난해 금호터미널 등 아시아나항공 자회사들이 금호리조트 지분 50%를 CJ대한통운으로부터 695억원에 인수한데 이어 지난 7월 금호터미널이 금호고속 지분 100%를 4150억원에 인수(지난 10월 재매각)했다. 금호아시아나의 M&A 건수가 다른 30대 그룹들에 비해 적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승자의 저주’로 인한 그룹 유동성 위기 때문이었다.
지난 2006년 당시 국내 건설업계 도급 순위 선두권에 있던 대우건설을 무리하게 인수하면서부터 금호아시아나의 위기가 시작됐다. 대우건설은 당시 수주 잔액만 22조원에 달하는 업계 최정상의 건설업체였던 반면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5년 기준 매출 11조 원 순이익 5079억원에 불과했다. 재계 순위 10위권 밖이던 금호아시아나는 대우건설 인수를 통해 단숨에 서열 8위로 점프하는데 성공했지만 무려 6조4255억원을 대우건설에 쏟아 부었다. 고가 인수 논란이 일었던 것은 물론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8년 대한통운 인수를 위해 4조1040억원을 투입했다. 두 회사 인수에만 10조원이 넘는 돈을 쓴 셈인데 이는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 전체 시가총액보다 많은 금액이었다.
대한통운 인수로 재계 순위는 7위로 한단계 더 올라섰지만 외부에서 끌어다 쓴 인수금융과 대우건설 인수시 설정한 풋백옵션(인수당시 주당 2만6000원이던 대우건설 주식이 상환 만기인 2009년에 3만2000원까지 오르지 않으면 이 가격에 주식을 되산다는 계약)이 발목을 잡았다. 건설경기 불황과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빚을 갚을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지난 2009년 12월말 결국 그룹 핵심회사인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에 돌입했다. 이같은 일련의 과정에서 사이가 틀어진 박삼구-박찬구 형제는 동반 퇴임이라는 초유의 결과를 낳으며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뼈깎는 자구끝에 그룹재건 눈앞에 둬
그러나 지난 2010년부터 대우건설, 금호렌터카(현 롯데렌터카), 대한통운, 금호고속을 차례로 매각하는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도 사재 3300억원을 들여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유상증자에 참여하며 2013년 10월 회장직 복귀에 성공한 박삼구 회장은 올해 금호산업이 매물로 나오자 우여곡절 끝에 이를 7228억원에 다시 품었다. 올해 말까지 인수 대금만 완납하면 금호아시아나그룹 재건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다.
금호아시아나는 워크아웃 과정에서 채권단에 넘어간 금호타이어 인수도 계획하고 있다. 3달만에 재매각한 그룹 모태 금호고속의 경우 금호터미널 또는 금호터미널이 지정한 사람이 6개월 이후부터 2년3개월 내에 주식을 되살 권리(콜옵션)가 있다는 조건을 붙여 칸서스HKB 사모펀드에 팔았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두 건의 무리한 인수로 그룹 전체가 와해되는 위기를 겪었고 금호석유화학 계열 분리로 재계 순위도 많이 하락하게 됐다”며 “하지만 박삼구 회장의 끈질긴 뚝심으로 그룹 재건이라는 명분은 어느 정도 지킬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