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전재욱 기자
2015.07.24 06:30:00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이 58%로 가장 많아
재판만 한 법관은 18명뿐…전체 12% 그쳐
"행정처 출신 실력과 조직 충성도 인정 받아"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고위직 판사들은 대부분 행정과 연구 보직을 거쳤다. 재판정에서 판결문만 쓰다가 고위직에 오른 판사는 전체 고위 법관 열 명 가운데 한 명꼴에 불과하다. 행정과 연구업무 근무 경력이 고위직 승진을 위한 ‘로열코스’인 셈이다.
23일 이데일리가 사법부 고등부장급 법관(대법관·대법원장 제외) 146명의 경력을 전수조사한 결과,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법원행정처, 사법연수원, 헌법재판소, 법원도서관을 거친 고위 법관이 전체 87.7%(128명, 교차·중복근무 포함)나 됐다.
대법원 재판연구원을 지낸 고위 법관이 85명(58.2%)으로 가장 많았다. 법원행정처 심의관 근무 경력이 있는 고위 법관은 49명(33.5%)을 차지했다. 사법연수원 교수를 지낸 고위 법관이 48명(32.8%)으로 뒤를 이었다. 순수하게 재판 경력만으로 고등법원 부장판사에 오른 판사는 18명(12.3%) 뿐이다.
이어 헌법재판소 연구원 경력 고위 법관이 14명(9.5%), 법원도서관을 거친 고위법관이 5명(3.4%) 순이었다. 이민걸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1991년 판사로 임용된 이래 11년 8개월 동안 행정처 등지에서 연구 및 행정업무를 했다. 전체 경력의 절반을 재판정 밖에서 쌓았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행정업무 경력이 승진을 위한 발판으로 굳어지는 현상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익명을 요구한 판사는 “행정처 쪽을 거친 판사가 승진에 유리한 것은 실력을 인정받은 측면도 있지만 조직에 충성도가 높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뒤늦게 사법부에 들어와서 실력을 인정받아 고위 법관에 오른 사례도 있다. 윤성근(56·사법연수원 14기) 서울남부지법원장은 10년 남짓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1998년 판사로 임용돼 올해 2월 법원장에 올랐다. 노정희(52·여·19기) 광주고법 부장판사는 판사로 임용된 뒤 퇴직했다가 2001년 다시 법원으로 돌아와 지난 2월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했다.
법원장까지 마치고 다시 재판정에 복귀하는 고위 법관도 늘고 있다. 법원은 2012년 법원장 임기 후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복귀해 정년퇴직할 수 있도록 한 ‘평생법관제’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법원장 임기를 마쳤다는 이유로 오랜 경력을 쌓아온 유능한 판사가 법원을 떠나는 게 아깝다는 지적을 수용한 조치다.
현재 법원장 출신 고등법원 부장판사 10명이 재판 업무에 복귀해 활동 중이다. 조병현(11기) 서울고법원장이 지난 2월 임기를 마치고 일선으로 돌아가는 등 올해 들어서만 5명이 다시 법복을 입었다. 평생법관제가 자리 잡아가고 있어 현장에 복귀하는 고위 법관 숫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