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거길 누가 가나요?”…이태원 상권의 몰락

by황현규 기자
2020.05.12 07:23:56

식당 90% 손님 아예 없다…서울 최다 공실
“보증금에 월세 내려도 매수자 없어”
‘이태원 클럽’사태로 폐업 위기 몰려
유흥주점 문 닫자…인근 상권도 여파

[이데일리 황현규 기자] “임차 문의요? 밖을 보세요. 거리가 텅 비었는데, 누가 여기서 장사를 하겠다고 오겠어요. 권리금은 커녕 월세를 낮춰도 안나갑니다.”(이태원역 S공인중개사무소)

“마스크 사러 오는 손님도 없어요. 손님은 반의 반토막이 났어요. 다들 문을 닫아야 하나 더 버텨야 하나 고민중입니다.”(이태원역 인근 M약국)

서울 용산구 이태원 상권이 치명타를 입었다. 안그래도 ‘젠트리피케이션’(둥지내몰림현상)에 늘어나는 공실로 건물주들이 울상인 가운데 코로나19 확산으로 도시가 텅 비어가고 있다.

11일 찾은 이태원 상가 골목은 ‘이태원 클럽’발(發) 코로나19 집단 감염 우려로 방문객이 뚝 끊긴 가운데 임차인을 구하는 플래카드들만이 빈 상가 유리벽을 채우고 있었다.

이태원역 주변 상가골목은 코로나19가 장기화 속 유흥주점들까지 영업 중단 명령이 내려지면서 일반 상점 수요까지 끊긴 상태다. ‘이태원역= 집단감염 발원지’라는 인식이 계속되면 상가들의 줄폐업은 시간문제라는 위기의식도 커지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8일부터 서울 일대 유흥 주점·클럽 등의 영업을 정지시켰다. 이태원역 상권의 영향을 미쳤던 유흥주점이 일시적으로 문을 닫으면서 주변 가게 매출도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가방 가게를 운영 중인 황모(64)씨는 지난달 이어 이번달도 내야 할 월세 80만원 벌기도 빠듯할 것이라며 울상을 지었다. 황씨는 “지난달 매출이 50만원으로 마이너스 수익을 냈다”며 “지난 달 말에 방문객이 좀 느는가 싶더니, 어제 오늘은 손님이 단 한명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전문가들은 이태원역 일대 상권이 초유의 ‘공실 사태’를 맞게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해 초 기준 이태원역의 상가 4곳 중 약 1곳은 공실 상태다. 지난해 4분기 공실률은 26.5%로 서울에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공실률이 높은 사당역(16.7%), 테헤란로(14.1%)보다 10%포인트 이상 공실률이 높다.



조현택 상가정보연구소 연구원은 “이태원 클럽 사태로 이태원역 일대 상권은 코로나19의 가장 큰 피해 지역이 될 수 있다”며 “가뜩이나 방문객 유입 감소, 높은 임대료, 차별화 악화 등으로 수익성이 떨어지는 이태원역 상권이 더 큰 악재를 맞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미 쌓여있는 공실에 ‘폐업 상가’까지 더해지면서 올해 공실률은 작년보다 더 높을 것 같다”고 예상했다.

이태원역 인근 음식 골목에 위치한 상가 (사진=황현규 기자)
이번 이태원클럽 코로나 확진 사태가 아니더라도 이 일대는 6개월, 길게는 1년 넘게 공실 상태에서 매물시장에 나온 상가가 수두룩하다.

네이버부동산에 따르면 현재 이태원역 인근 상가 매물은 총 210여개로 추정된다. 공인중개업계에 따르면 매물로 나온 상가 절반 이상이 6개월 이상 공실 상태다.

K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5년 전만 해도 ‘핫’한 이미지가 있던 이태원역 주변이 요즘은 죽었다(침체됐다)”며 “임대료가 싸지 않은데다가 다른 나라 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장점도 많이 퇴색했다”고 말했다.

종종 있던 매수문의도 코로나19 집단 감염 우려 이후엔 뚝 끊겼다. 애가 탄 건물주들은 보증금이나 월세를 내리고 있지만 매수자들을 찾는 건 하늘의 별따기다.

이태원역에서 도보 4분 거리에 있는 A상가(전용 50㎡)는 보증금 3000만원, 월세 250만원에 매물로 나왔다. 기존 월세 350만원에서 100만원 내린 가격이다. 역과 인접해 ‘알짜 입지’로 꼽히지만 일주일 째 매수 문의조차 없다.

신축 건물도 매수자를 찾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두 달 전 준공을 마친 B건물(전용 60㎡·3층)은 모든 층이 비어 있다. Y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한 달 전에 임차인이 가계약을 했다가 장사가 안 될 것 같다며 파기했다”며 “1개층이 보증금 4500만원에 월세 260만원으로 신축 건물치고 싼 편인데도 임차인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점심시간에 방문한 이태원역의 음식 거리 식당 10곳 중 9곳은 손님이 단 한 명도 없었다. 한정식집을 운영하는 한모(41)씨는 “외국인이라도 오던 IMF보다 더 장사가 안 된다”며 “지난달 말부터 조금 나아지는가 싶더니 다시 코로나가 터지면서 이태원에 아무도 찾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태원소방서 뒷 골목에 위치한 ‘음식 거리’. 11일 낮 점심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방문객은 단 한 명도 업었다. (사진=황현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