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 칼럼] ‘촛불 정권’의 쳇바퀴 청문회

by허영섭 기자
2019.03.29 06:00:00

또 한 차례 인사청문회가 끝났지만 개운치가 않다. 장관 자리를 떠맡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왜 한결같이 그 모양인줄 모르겠다. 겉으로 내세운 경력에 관계없이 저마다 큼직한 의혹 덩어리를 두어 개씩은 숨기고 살아 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고도 어떻게 국민을 이해시키며 정책을 이끌어 가겠다는 건지 납득하기 어렵다. 더구나 윗분들께서는 이들의 흠결을 미리 파악하고도 임명 절차에 나선 것이라니 도대체 무슨 의도였을까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위장전입에 다운계약서 작성, 논문표절, 연구비 유용 등 거론되는 의혹도 엇비슷하다. 등장인물은 바뀌었어도 결국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개인적 소신을 반영하는 평소 처신까지 들여다보면 가히 가관이다. 얼마나 다급했는지 그 소신까지 바꿔가며 사과와 변명으로 일관하는 모습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촛불 이념’을 앞세운 지금 정부에서도 이처럼 희화적인 현상이 그대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적어도 ‘국정농단’으로 지탄받았던 과거 정부와는 달라져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첫 다짐도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똑같은 잘못이 반복되는 중이다. 전 정권의 적폐를 몰아붙이면서도 새로운 적폐를 쌓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 결과가 부처 정책에 대한 불신은 물론 정권에 대한 거부감으로 확대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의지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그동안 흙탕물로 흐려 있었기에 그 속에서 흠 없는 사람을 찾는다는 게 여간 어렵지 않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정한다. 인재 발탁의 범위를 넓힌다고 해도 사정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역대 정권을 거치면서 여야 간에 티격태격 공방을 주고받았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촛불 혁명’이 이뤄졌다고 하면서도 우리 사회에 여전히 탁류가 넘실대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들을 포함한 지도층 인사들의 일탈 행위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이나 기업인들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대학교수가 자기 자녀 논문 작성과정에서 대학원생을 동원한 것은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논의를 확대하자면 ‘장자연 사건’이나 ‘원주별장 사건’도 마찬가지다. 진상이 아직 규명되지 않고 있지만 지도층 인사들이 깊숙이 개입돼 있다는 것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잘못된 인사가 지속된다면 당사자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 것은 물론 그 자녀들에 대해서도 새로 기득권 세력에 진입하는 발판을 마련해 준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처세술 뛰어난 부모를 둔 덕분에 명문 대학을 나와 해외 유학은 물론 공기업 인턴 취업에도 특혜를 받고 있는 것이다. ‘흙수저’들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스펙이다. 이미 중·고교 시절 좋은 학군을 찾아 스스럼없이 위장전입을 하면서부터 갈라진 신분의 차이다.

비록 늦어지긴 했지만 지금부터라도 올바른 인사 관행을 세워나가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에 있어서도 품성이 제대로 갖춰진 인물을 찾기 어렵게 된다는 얘기다. 지도층 부모의 거듭된 반칙 덕택에 채워진 이력서로 사회적 대접을 받게 된다면 너무 불공평하다. 장·차관 인사나 공기업 기관장에 대한 인사가 조속히 제자리를 찾아야 하는 이유다.

지금 이뤄지는 인사가 과거부터의 관행이라고 주장한다면 더 이상 ‘촛불 정신’을 들먹여서는 안 된다. 당장 사람이 없다고 해서 흠집이 뻔한 사람을 자리에 앉히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청문 보고서도 채택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임명을 강행할 게 아니라 차관으로 직무대행을 하도록 하는 방안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청문회 과정에서 과오가 드러난 경우에는 오히려 책임을 묻는 관행도 확립해 나갈 필요가 있다. 공개 사과로 끝나는 요식 절차의 푸닥거리 청문회는 다시 보고 싶지 않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