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는 반토막, 사고 땐 본인 책임..비정규직만 못한 '학연생'

by박진환 기자
2016.08.04 06:30:00

25개 출연연 ''학연생'' 4대 보험 제외
월 평균 150만원 받아
작년 연구실 안전사고 205건..중대 사고 때 상해보험 못 받아

[대전=이데일리 박진환 기자]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 비정규직보다 처우가 더 열악한 ‘학생연수생(학연생)’ 제도를 남발, 과학기술계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학연생은 대학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들로 학·연 협업과정의 일환으로 각 출연연에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소속은 대학이지만 실제 업무는 각 출연연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규·비정규직 연구원과 동일한 실험 및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급여는 출연연에서 가장 낮은 직급인 원급 연구원에 비해 50% 이하 수준에 머물고 있고, 복리후생비나 4대 보험 등의 기본적인 혜택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3일 국회 미래창조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문미옥 의원이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서 받은 ‘출연연 연구실 인력 및 급여 현황’에 따르면 25개 출연연에서 근무 중인 박사과정 학연생의 월평균 급여(연수장려금)는 신임 정규직 연구원(원급)의 평균 47.6%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출연연의 직급 체계는 원급-선임급-책임급 연구원으로 구분된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의 경우 올 6월 기준으로 책임급 연구원의 월 평균 급여액은 825만원, 선임급 605만원, 원급 460만원 등으로 조사됐다. 기관별로 보면 녹색기술센터 박사과정 학연생 월급은 150만원으로 원급 연구원(458만원)의 32.7%에 그쳤다. 뒤를 이어 KIST(167만원, 원급 연구원 대비 36.2%), 국가핵융합연구소(187만원, 37.6%), 한국생명공학연구원(186만원, 38.7%), KISTI(180만원, 39.2%), 한국표준과학연구원(197만원, 39.1%), 한국원자력연구원(183만원, 39.7%) 등으로 정규직 연구원 급여의 30%대 수준에 불과했다. 여기에 정규·비정규직 연구원들에게만 지급하는 복리후생비 등을 감안하면 학연생의 실급여 차이는 더욱 벌어진다. 문제는 이들 학연생이 각 출연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2011년 2691명이었던 학연생은 매년 증가해 지난 5월말 기준으로 5년 만에 43.3%나 증가한 3858명으로 25개 출연연 전체 인력(1만 9667명)의 19.6%에 달했다. 문미옥 의원은 “학생연구원은 정규직 연구원과 거의 동일한 연구를 수행하면서도 학위를 취득할 때까지 수년간 안전사고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으며, 고용보험 혜택조차 받을 수 없는 애매한 처지에 놓여 있다”면서 “학생연구원에 대한 근로계약 의무 체결을 통한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3월 한국화학연구원에서 근무하던 A(26) 씨는 실험 중 폭발사고로 왼쪽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손가락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다. 완쾌된다고 하더라도 평생 후유증이 남는 큰 사고였지만 A 씨와 가족들은 당장 치료비조차 마련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굴려야 했다. A 씨는 정식 연구원이 아닌 학연생이라는 이유로 산업재해 보상조차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출연연과 대학 연구실 등지에서 안전사고가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학연생과 학생들에 대한 산업재해 적용 등과 같은 기본적인 안전망 구축은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민의당 오세정 의원이 미래창조과학부에서 받은 ‘연구실 안전사고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대학과 연구기관 실험실에서 발생한 안전사고는 전년대비 16.4% 늘어난 205건으로 조사됐다. 2013년 112건에서 2014년 176건 등 해마다 실험실 안전사고가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실험실 안전사고의 관리를 위해 도입한 중대사고 분류조차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다. 2011년부터 지난달까지 ‘중대사고’로 분류된 것은 2013년 경상대와 공주대에서 발생한 사고로 단 2건에 불과했다. 중대사고는 ‘연구실 안전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사망 또는 후유장애 부상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3개월 이상의 요양을 요하는 부상자가 동시에 2명 이상 발생한 사고를 의미한다. 학연생의 경우 출연연에 소속된 인력이 아니라는 이유로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산재보험 적용은커녕 중대사고 분류에도 포함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국공공연구노동조합 관계자는 “2~3년 전부터 정부가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비율을 낮추도록 권고하자 출연연이 비정규직에도 포함되지 않는 학연생을 늘리는 편법을 쓰고 있다”면서 “이들은 정규직과 같은 연구를 하면서도 ‘학생’ 신분으로 간주돼 4대 보험 혜택과 기본적인 노동 3권마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세정 의원도 “이공계 대학원생들은 국가연구개발과제에 참가해 연구역량을 키워나가며 학생인 동시에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4대 보험 대상에서도 제외되는 등 처우가 열악한 실정”이라면서 “재해 발생 시 이에 대한 적절한 보장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