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우리 사회를 울고 웃게 한 당신은 누구?

by김정민 기자
2014.12.31 08:20:20

팬티바람에 도망친 세월호 선장에 ''분노''
구명조끼 양보한 영웅에 ''뭉클''
공직사회 무기력 무능력으로 질타..고위직 잇딴 낙마

[이데일리 김정민 기자] 2014년 4월 16일. 304명의 희생자를 낳은 세월호 침몰 사고는 우리 사회를 경악과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일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몰염치한 행태들 또한 우리를 참담하게 했다. 갑오년 한해를 보내면서 우리가 잊지 못할 얼굴들, 잊지 말아야할 사람들을 되돌아 봤다.

세월호 침몰 당시 승객들을 버리고 탈출한 이준석 선장과 14명의 선원은 무책임과 무능력한 기성세대의 민낯을 대표하는 얼굴들이다. 이들이 탈출한 배에 갇혀 295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고 9명의 실종자는 끝내 찾지 못했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실질적 경영자로 지목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도피 행각 끝에 변사체로 발견됐고, 핵심 인물로 수배된 유씨의 차남 혁기(42)씨는 아직까지 행방이 묘연하다.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공직자들도 국민들의 가슴에 많은 상처를 남겼다.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잇단 실언 끝에 자리에서 물러났고,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 또한 “(금융분야) 개인정보 유출 관련 발언에 사과한다”며 머리를 숙여야 했다.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에서 미숙한 대처와 무책임한 발언으로 국민의 가슴에 생채기를 냈던 공직자들도 잇따라 옷을 벗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에 일조했던 관피아(관료+마피아)들은 ‘척결’ 대상으로 전락했다.

복지 사각지대에서 쓸쓸히 죽어간 사람들도 우리를 부끄럽게 했다. 지난 2월 26일 송파구 석촌동 단독주택 지하 1층에서 숨진 채 발견된 ‘송파 세모녀’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죄송하다’는 메모와 함께 전재산인 70만원을 월세와 공과금으로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지난 11월 자신의 장례비와 공과금, 시신을 수습할 사람을 위한 ‘국밥값’ 봉투를 남긴 채 목숨을 끊은 60대 노인의 사연도 많은 사람을 눈물 짓게 했다.





아비규환의 참사 속에서도 사람다움을 잃지 않은 의인들도 적지 않았다. 보건복지부는 세월호 참사 당시 승객들을 구하고 자신은 차가운 바다 속에 몸을 누인 의인 5명을 의사자로 지정했다. 고 박지영(22)씨는 비정규직 여성 사무원인데도 승무원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자신은 목숨을 잃었다. 그는 구명조끼가 부족하자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여학생에게 벗어줬다. 여학생이 걱정하자 박씨는 “걱정하지마, 난 너희들 다 구조하고 나갈거야”라고 대답했으나 끝내 침몰하는 선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박씨의 어머니 또한 대학생들이 모아온 성금을 “더 어려운 가족을 도와달라”며 양보한 사실이 본지 보도를 통해 알려져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아르바이트생으로 승선했다가 승객들을 구하고 숨진 고 김기웅(28)씨, 이벤트회사 대표 고 안현영(28)씨, 승무원 고 정현선(28)씨, 세월호 수색작업 도중 유명을 달리한 고 이광욱(53) 잠수사 등 살신성인의 의인들이 세월호 참사로 상처입은 국민들에게 위안을 줬다.

세월호 참사 현장 외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많은 의인들이 자신의 목숨을 받쳐 타인의 생명을 구했다. 동네병원을 지키는 원장이자 중학생 딸을 둔 아버지인 고 한증엽(55)씨는 물에 빠진 소녀를 구하고 자신은 구순의 노모와 부인, 그리고 어린 딸을 둔 채 세상을 떠났다. 고 양성호(25·부산외대 미얀마어과)씨는 2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낸 경주 마우나리조트 참사 당시 사고 현장에 뛰어들어 후배들을 구조하다 추가 붕괴로 숨졌다. 환자와 간호사 등 22명이 사망한 효사랑 요양병원 화재 당시 간호조무사 김귀남(55)씨는 환자를 구하기 위해 소화기를 들고 화재를 진압하다 유독가스에 질식돼 목숨을 잃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선행을 베푸는 얼굴 없는 이웃들도 올 한해 우리 사회를 훈훈하게 했다. ‘신월동 주민’이라고만 밝힌 60대 남성은 명동 구세군 자선냄비에 1억원짜리 수표를 넣고 사라졌다. 올해로 4년째다. 대구에서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60대 남성이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2500만원을 기부했다. 수표와 함께 전달된 편지에는 ‘매달 500만원씩 적금을 넣어 모은 돈이다. 소중하고 귀한 돈이니 꼭 필요한 곳에 사용해 달라’는 당부가 담겨 있었다. 이 남성은 3년간 4억7200만원을 기부했다. 전국 각지에서 익명으로 전달되는 기부의 손길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