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처벌 왜 약할까?…'엄벌' 가로막는 교특법

by성주원 기자
2024.09.04 05:30:00

■음주운전 공화국-엄벌 가로막는 '교특법'
음주운전 사망사고 가해자, 대부분 집행유예
설문 응답 96% "음주 사망사고 처벌 수준 높여야"
교특법 적용으로 인한 처벌 약화 문제 제기
"약한 처벌 관행…법 개정 통해 강화해야"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화물차 운전기사 A씨는 혈중알코올농도 0.075%의 음주 상태로 제한 속도를 초과해 주행하다가 도로를 횡단하던 80대 여성 피해자를 치어 숨지게 했다. 술에 취해 차선을 벗어나 좌회전한 운전자 B씨는 신호대기 정차 중이던 20대 남성 피해자의 오토바이를 들이받아 사망에 이르게 했다. C씨는 무면허 상태에서 음주운전을 하다가 중앙선을 침범해 맞은 편에서 주행하던 오토바이를 정면으로 충돌해 30대 남성 피해자를 사망케 했다.

이들 음주운전 사망사고 가해자에 대해 법원은 모두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양형 고려 요소로는 범행의 중대성, 피고인의 반성, 유족과의 합의, 피고인의 전과 여부, 보험 가입 여부 등이 공통적으로 고려됐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사고 판결들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피해자의 생명을 앗아간 중대 범죄임에도, 가해자들이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사례가 다수 목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판결은 모두 ‘교통사고처리특례법’(교특법)에 따라 처리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교특법 제3조 제1항은 업무상 과실로 인한 교통사고의 경우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더욱이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르면 기본형은 8개월에서 2년, 가중사유가 있더라도 1년에서 3년으로 더욱 낮아진다.

(그래픽=이미나 기자)
교통사고 전문 정경일 법무법인 엘앤엘 대표변호사는 “음주운전 교통사고는 특가법상 위험운전치사상죄(윤창호법)가 적용되면 사망의 경우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형, 부상의 경우 1~15년의 징역형, 1000만~30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진다”면서도 “하지만 교특법이 적용되면 형량이 줄어든다. 실제 처벌사례들을 보면 사람을 사망케 하고도 합의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형이 많이 선고되고 있다”고 말했다.

교특법 적용으로 인해 음주운전 사고에 대한 처벌이 가벼워질 경우 음주운전의 위험성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낮아지고, 피해자 보호에도 미흡한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음주운전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와도 크게 동떨어져 있다. 지난해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과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20세 이상 성인 501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현재 음주운전 가해자 처벌규정(특가법상 사망사고 발생시 3년 이상의 징역)에 대해 ‘적정하다’는 의견은 3.6%(183명)에 불과한 반면, 4명 중 3명(76.1%, 3817명)은 10년 이상의 징역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히는 등 현행 처벌 규정에 대한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징역 5년 이상이 적정하다는 의견도 20%(1005명)에 달했다. 응답자의 96.1%가 ‘처벌수준을 현재보다 높여야 한다’고 한 것이다.

이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48.6%)는 가장 위험한 운전행태로 ‘음주운전’을 꼽았다. 이는 졸음운전(20.1%)이나 과속운전(8.5%), 무면허운전(7.3%)보다도 음주운전의 위험성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사회적 인식을 보여준다.

(그래픽=이미나 기자)
이윤호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국민 2명 중 1명이 가장 위험한 운전행태로 음주운전을 꼽은 것은 그만큼 음주운전이 만연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과거 윤창호 군, 배승아 양처럼 누구든지 음주운전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걱정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음주운전 사망사고의 경우 사법부는 ‘과실’로 판단하고, 심신미약 등의 이유로 판사의 재량권을 너무 크게 부여하고 있다”며 “반면 국민들은 음주운전이 ‘고의’이며, 살인 등과 같이 중대한 범죄로 인식하고 있는 등 간극이 매우 큰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음주운전 가해자를 엄하게 처벌하기 위해 윤창호법을 제정한 이후에도 여전히 교특법이 적용되면서 가해자들이 가벼운 처벌을 받는 상황은 법 적용의 일관성 문제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교특법의 개정 또는 음주운전 사고에 대한 특가법 적용 확대 등의 법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음주운전의 심각성에 걸맞은 처벌 기준을 마련하고,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의 책임 간의 균형을 재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해성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음주운전 사망사고에서 가해자에 대해 보통 징역 8개월에서 2년이 선고되고 이 가운데 77%가 ‘집행유예’로 풀려난다”며 “음주운전의 경우 우리나라에만 있는 ‘교특법’에 의해 그동안 관행적으로 처벌이 약한 것을 알 수 있는 만큼 교특법을 손봐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