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Talk]치열한 견제에…반도체 패권, 서쪽으로 움직인다
by이다원 기자
2023.01.21 11:18:24
겔싱어 “반도체 공급망 아시아에 치우쳐”
脫중국 이끄는 미국…따르는 유럽·일본
글로벌 반도체 생산거점, 서쪽으로 이동
‘양강 보유국’ 韓도 부랴부랴 마련했지만
인적 자원·법인세 등 파격적 경쟁력 찾아야
[이데일리 이다원 기자]
지난해는 전 세계가 반도체에 초집중한 한 해였습니다. 산업계뿐만 아니라 각국 정부까지 나서서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고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나서면서 뜨거운 패권 경쟁이 벌어지기 시작한 건데요. 각국 정부의 파격적인 세액공제와 보조금 지원에 힘입어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대규모 공장 건설을 속속 예고했었죠.
올해는 패권 경쟁의 수혜를 입은 글로벌 반도체 팹(생산 공장)이 본격적으로 등장할 예정입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 재편 흐름 역시 더욱 가시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19일(현지시각)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 참석한 패트릭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불과 30년 전에 미국과 유럽이 세계 칩(반도체) 생산량의 80%를 차지했었지만 이제 아시아가 이를 차지했다”며 “이를 고치는 데 수십 년이 걸릴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반도체 산업이 아시아 지역에 지나치게 쏠린 점을 문제삼은 겁니다. 겔싱어 CEO는 “이같은 공급망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깨닫기 위해 전 세계적인 위기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며 “미래를 위해서는 탄력적인 공급망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전 세계적인 공급망 재편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죠.
반도체 패권 경쟁의 핵심은 ‘탈(脫)중국’입니다. 겔싱어 CEO가 언급했듯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축은 아시아, 특히 중국에 있습니다. 중국은 반도체를 많이 만들고 많이 팔며, 많이 사는 국가로 꼽힙니다. 거대한 산업 기반에 더해 ‘반도체 굴기’를 천명한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까지 더해지면서 중국 반도체 산업은 빠른 속도로 성장해 왔습니다.
경쟁을 촉발한 미국은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축을 중국에서 미국으로 가져오기 위해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반도체 기술 및 제조 장비 등에 대한 대(對)중국 수출 규제 조치를 내렸습니다. 첨단 기술과 장비가 중국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겠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중국을 막는 것뿐만 아니라 공급망 패권을 미국으로 가져오기 위한 조치도 있죠. 미국은 반도체 지원법안을 마련해 미국 땅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들에 5년간 우리 돈으로 60조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주고, 파격적인 세액 공제를 제공했습니다.
미국을 본 글로벌 반도체 강국들도 속속 비슷한 혜택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은 지난해 말 1조 3000억엔(약 12조 3500억원) 규모 반도체 관련 예산을 배정해 연구개발(R&D)과 공장 건설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은 430억유로(약 60조원)를 반도체 산업 육성에 투입하는 내용의 유럽반도체법 의회 통과를 남겨놓고 있고, 유럽 국가별 보조금도 지원 중이죠.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생산 거점을 미국으로 속속 옮긴 이유입니다.
특히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생산 공장의 이동이 눈에 띕니다. 주문을 받아 생산하는 파운드리 특성을 고려하면 신속한 물품 공급과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AMD 등 고객사 근처에 위치할 수 있는 데다, 혜택까지 누릴 수 있으니 일석이조죠.
당장 대만 파운드리 전문기업 TSMC는 지난해 말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공장에서 장비 반입식을 열고 첨단 공정 반도체 생산을 예고했습니다.
|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이 ‘삼성 고속도로’라고 써있는 도로 표지판을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경계현 삼성전자 사장 인스타그램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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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005930)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짓고 있는 파운드리 공장은 올해 안으로 완공될 예정입니다.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은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해 “테일러시 (팹) 공사는 잘 진행되고 있다”며 “올해면 팹이 완공되고 내년이면 미국 땅에서 최고 선단 제품이 출하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공장 부지 앞 도로이름이 ‘삼성 하이웨이’일 정도로 지역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죠.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이 빠른 속도로 새로 짜이고 있습니다. 파격적인 혜택과 전방위적 압박에 글로벌 기업들이 발 빠르게 움직인 결과물입니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유럽과 일본으로도 눈을 돌리는 분위기입니다. 미국 기업인 인텔이 낙점한 곳은 독일입니다. 인텔은 지난해 3월부터 독일에 반도체 공장을 지어 오는 2027년 가동하기 위한 협의를 이어 왔습니다. 독일 정부와 EU가 제공할 보조금도 70억유로에 달하는 수준이었습니다.
TSMC는 일본에 반도체 R&D센터를 지은 상태입니다. 지난해 6월 개소한 R&D센터의 경우 사업비 370억엔 중 절반(190억엔)을 일본 정부가 부담했습니다. 최근에는 독일에 차량용 반도체 생산 공장을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달 초 열린 실적발표 간담회에서 웨이저자 TSMC CEO가 “유럽에서 자동차 기술에 특화된 전문 반도체 공장을 신설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인데요.
| SK하이닉스 반도체 생산 공장. (사진=SK하이닉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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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메모리 ‘양강’ 보유국인 한국도 부랴부랴 세액공제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대기업의 반도체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을 추가 투자 증가분을 포함해 최대 25%까지 올리는 내용의 세액공제 방안이 지난 3일 발표됐습니다. 앞서 세액공제율을 6%에서 8%로 ‘찔끔’ 올렸던 데서 나아간 셈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K-반도체의 위상을 지키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전 세계 정부는 현지 제조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반도체 칩은 전략적 자원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나라도 한 발 더 나아간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제언이 나옵니다. 인적 자원이든 기업 혜택이든 더 나은 부분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규석 한경연 부연구위원은 “법인세 인하, R&D 및 시설투자세액 공제율 인상 등 최소한 해외 주요국 수준의 지원을 통해 한국 반도체 기업의 효율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기업을 유치하려는 각국 정부의 유혹(?)을 막아낼 묘수가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