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인사동②] 명과 암이 교차하는 변화들

by김인구 기자
2013.04.17 08:53:31

겉핧기식 단체관광 우려 높아
전통·현대 융합하는 변화 추구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 인사동 쌈지길. 건립 초기만 해도 전통을 거스르는 상업 시설로 반대에 부딪쳤으나 어느새 인사동을 대표하는 상징물이 됐다(사진=권 욱 기자 ukkwon@).


[이데일리 김인구 기자] 새봄 온기를 머금은 해가 서쪽으로 기운 늦은 오후의 인사동 문화거리. 빨간색 삼각 깃발을 중심으로 모인 스무 명쯤의 사람들이 한 호떡집 앞에 몰려 있다. 한쪽 손에 호떡, 다른 한손에는 쇼핑백이 들려있는 걸로 봐서는 외국인 단체 관광객이 틀림없다. 이들은 한동안 가게 앞에서 대화를 주고받다가 다시 인근 액세서리숍과 화장품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필방의 먹과 붓, 갤러리의 예술품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무심히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거뒀다. 그 옆으로 철제 장막에 가로막힌 신규 호텔 부지가 왠지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인사동에 명과 암이 교차하고 있다. 옛것을 아끼는 쪽에선 전통의 후퇴와 소멸에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조선시대 인근 도화서를 배경으로 수백년 역사 속에 형성된 인사동이 싸구려 관광지로 전락했다는 얘기다. 2002년 인사동 문화지구 지정 이후 오히려 상업화가 섣불리 진행되면서 ‘깊은 맛’을 잃었다고 보고 있다.

인사동 골목길에 조그만 지하 갤러리를 운영 중인 조남현 피카소갤러리 관장은 “평생 예술을 해오던 공방이나 갤러리 주인들이 인사동 중심에서 많이 밀려나 있는 상태다. 권리금만 3~4억원씩 하는 가게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며 “이러다간 문화지구라는 말이 무색해질 위기”라고 말했다. 이에 조 관장은 작년 말부터 매주 목요일마다 자신의 갤러리에서 인사동예술인모임을 주도하고 있다. 전시회·시낭송회·전통춤과 창퍼포먼스 등을 열며 전통 되살리기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하지만 전통과 현대의 융합, 상생의 상업화에서 변화의 실마리를 찾는 쪽도 있다. 쌈지길로 불리는 복합문화 상업시설이 대표적이다. 2004년 토종 브랜드 쌈지가 들어올 때만 해도 지역주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러나 독특한 외관과 분위기로 이젠 외국인도 찾는 인사동의 랜드마크가 됐다. 지난 3·1절에는 ‘쌈지길 아리랑’이라는 플래시몹 공연이 열려 인터넷에서 큰 화제가 됐다. 공연 동영상은 유튜브에 퍼져 61만뷰를 기록했고, 전 세계인들은 이 동영상을 통해 인사동과 아리랑에 관심을 갖게 됐다.

건립 추진 중인 삼성화재 호텔 속에 인사동 컨벤션센터 설치를 추진하는 것도 이같은 융합의 과정이다. 지금까지는 무조건 호텔 건립을 반대했으나 이제는 이를 통해 인사동이 얻을 수 있는 것을 고민하게 됐다. 또 여행사와 연계해 외국 관광객들을 타깃으로 우리 식문화 및 한복체험전, 한옥음악회 등의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홍보관 운영을 맡고 있는 김병욱 사무국장은 “전통이 사라지고 갤러리가 줄어든 게 사실이지만 젊은 작가들이 계속 배출되면서 앞으로 다시 늘어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며 “전통을 살리는 기획전과 관광객들을 수용할 수 있는 질 좋은 프로그램, 그리고 언제나 즐길 수 있는 주말 공연을 상설화해 가장 한국적인 인사동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