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성지 런던을 가다]⑤런던에서 만난 핀테크 스타트업들 "블록체인이 대세"

by김유성 기자
2018.03.08 06:12:00

동유럽, 캐나다 등 다양한 국가에서 모인 스타트업
핀테크 성지에서 '블록체인'은 '흔한' 창업 아이템

[런던(영국)=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런던의 핀테크의 또 다른 프리미어리그였다. 세계 각국의 유명 축구 선수들이 모인 영국프로축구처럼 다양한 나라의 창업자들이 각자 자신들의 사업 비전을 갖고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사업 아이템은 제각각이었지만 눈빛 하나만은 진지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저개발국 금융 인프라를 블록체인으로 구축하겠다는 스타트업부터 전 세계 가상화폐를 하나로 묶는 ‘가상 기축 통화’를 만들겠다는 ‘돈키호테’도 있었다.

개중에는 블록체인을 활용한 스타트업이 꽤 눈에 띄었다. 블록체인의 보안성은 아프리카, 아시아 국가들의 금융 인프라에 활용될 수 있다. 에인핀( AinFin)은 실제 이런 아이디어를 추진하고 있다. 런던 카나리워프에서 만난 조셀린 브라운 에인핀 대표(CEO)는 모바일 기반 송금과 예금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일종의 디지털 화폐를 갖고 가상 계좌에서 송금과 입금하는 식이다. 저개발 국가 국민 누구나 휴대폰을 갖고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2020년까지 10억 가입자를 모으는 게 목표다.

거래간 신뢰는 블록체인 기술로 보증한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실시간 금융거래까지 하겠다는 계획이다. 브라운 대표는 “기존 금융 인프라가 부족한 나라일 수록 블록체인의 활용성은 높다”고 강조했다.

사진 왼쪽부터 조셀린 브라운 에인핀 대표, 자카리 라포르테 에인핀 ICO 프로젝트 매니저
캐나다 스타트업 ‘BTL’은 프라이빗 블록체인 ‘인터비트’를 설계·구축하는 스타트업이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비트코인 등 공공이 사용하는 블록체인과 달리 제한된 사용자들이 쓰는 폐쇄형 블록체인이다. 기업 간 거래에 계약 신뢰성을 높일 수 있는 데 사용된다.

가이 할포드 톰슨 BTL 공동 창업자는 2011년 비트코인 브로커를 했다. 이후 그는 블록체인에 대한 가능성을 감지하고 2015년부터 블록체인 사업을 시작했다. BTL의 시작이었다.

BTL의 연구·개발 조직은 캐나다 벤쿠버에, 글로벌 본부는 레벨39에 두고 있다. 기업 가치는 2500억원 정도. 2015년 11월 우리나라의 코덱스(Codex) 격인 캐나다 토론토 벤처거래소(TSXV) 상장해 있다. 창업 5개월만에 가능했던 증시 상장 덕에 BTL은 블록체인 사업에 필요한 초기 자금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었다.

BTL은 시범적이지만 세계적인 석유회사 BP, Eni Trading, Wien Energy간 거래 플랫폼을 블록체인으로 시연하는 데 성공했다. 거래 계약부터 송장 송부, 사이버 공격에 대한 방어 등을 블록체인으로 구현한 것이다. 이를 통해 매출도 올리고 있다.

가이 할포드 톰슨(Guy Halford-Thompson) BTL 공동 창업자




케샤(CASHAA)는 블록체인 기반 가상지갑 서비스다. 송금, 지출 등을 할 수 있다. 케샤는 거래 인프라를 마스터카드 망을 이용한다. 거래에 대한 데이터는 마스터카드망을 이용하고, 거래에 대한 신뢰는 블록체인 기술로 보증한다.

거래 시스템은 지난달부터 올해 7월까지 테스트하고 있다. 2월 한달 간 사용자 수는 141개 국가 1만2000명 정도다. 거래액은 100억원 정도다.

자니나 로위츠 캐샤(CASHAA) 공동 창업자
원칭(Wanchain)은 가상화폐 위의 가상화폐를 꿈꾼다. 전세계 기축 통화가 ‘달러’인것처럼 전 세계 유통되는 가상화폐를 통용할 수 있는 기축 가상화폐를 꿈꾼다. 본사는 싱가포르에 있다.

스코트 트로우브릿지 영국 비즈니스개발 디렉터는 “원코인이 비트코인을 비롯한 모든 통화를 유통하는 매개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듣는 이에 따라 허황되게 들릴 수 있지만, 원코인을 유통하겠다는 뜻이다.

그에 따르면 원칭의 가상화폐 원코인(WanCoin)은 ICO(가상화폐 공개)까지 간 상태다. 원칭의 아이디어에 모집된 투자 금액만 3500만달러 가량이다.

스코트 트로우브릿지(Scott TrowBridge) 영국 비즈니스 개발 디렉터
런던에는 한국 대학생 스타트업도 있었다. 고려대 주관 창업 경진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들이다. 이들은 레벨39에 한 달 일정으로 연수를 왔다.

성민준 씨는 고려대 기계공학부, 박조은 씨는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재학생이었다. 성 씨는 쓰레기 분리수거 자동화 아이디어로, 박 씨는 셀카 추천 앱 아이디어로 수상했다. 성 씨는 “한국의 경우, 정부 사업이나 교내 대회에서 수상해 지원금을 받는 것을 첫 단계로 여긴다면, 이곳은 민간 투자자들로부터 받는 투자를 기본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박 씨는 “또 창업을 전문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아이디어가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게 눈에 띄었다”며 “자신의 아이디어를 남이 뭐라고 평가하든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게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한국처럼 나이나 출신에 대한 편견이 없는 점도 런던 스타트업 업계 장점이라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성 씨는 “한국은 이미 형성된 자기들끼리의 카르텔을 넘기가 어렵다”며 “이곳은 그런 부분에서 자유로워 보였다”고 말했다. 박 씨는 “한국은 조금 더 창업자 간 네트워킹이 활발했으면 한다”며 “런던에서는 다른 이들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생 창업에 대해 낮게 보는 사회적 인식이 있는 데 이 부분은 고쳐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레벨39에 창업연수를 온 성민준 고려대 기계공학부(오른쪽), 박조은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학생(왼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