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지역조합 아파트 '묻지마 홍보' 그만

by박종오 기자
2015.11.06 08:35:09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박 기자, 잘 좀 부탁합니다.”

최근 한 홍보대행업체 대표에게서 전화가 왔다. 메일로 보도자료를 보냈으니 기사화해줬으면 좋겠다는 얘기였다. 수도권에서 조합원을 모집 중인 지역주택조합 홍보 일을 맡았단다. 나이가 까마득하게 높은 지인이라 손을 내젓기가 마뜩잖았다. 그렇다고 선뜻 응하자니 그것도 영 찜찜한 일이었다.

예전에는 비슷한 부탁에 쉬이 응했다. 어차피 조합주택 분양 관련 홍보자료 하나 원고지 3~4매짜리 기사로 정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야 10분 남짓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기자 이름과 주택조합을 함께 검색하면 과거에 쓴 홍보 글이 줄줄이 쏟아지는 까닭이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위험천만한 사업이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지역주택조합은 이웃끼리 돈을 모아 땅을 사고 아파트를 짓는 일종의 ‘주택 공동구매’ 사업이다. 청약통장 없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기도 하다.



문제는 투자 위험성이 높다는 점이다. 사업 전반을 주민 손에 맡기고 제도적 안전장치도 미흡한 까닭이다.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2005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전국에서 155개 지역주택조합이 설립인가를 받았다. 이 중 아파트를 짓고 입주까지 마친 조합은 34개뿐이다. 사업 성공 확률이 20% 정도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조합인가조차 받지 못하고 중간에 자빠진 사업장을 헤아리면 확률은 더 낮아진다.

옥석을 가릴 책임을 모두 소비자에게 떠넘길 순 없다. ‘불완전 판매’(투자 위험성 안내 없이 상품을 판매하는 것)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도 사업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 작업에 착수했지만, 연내 법 개정은 물 건너갔다고 한다.

그래서 제안한다. 조합주택 홍보업체는 사업 가능성과 조합의 토지 확보 여부를 직접 따져보고, 조합 규약에 독소조항이 없는지 등을 확인하자. 무턱대고 사업장을 장밋빛으로 포장하지 말고 자체 검증을 거치자는 이야기다. 그것이 집 없는 서민 소비자의 눈물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상도의(商道義)’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