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st SRE]겨울 지난 건설…드디어 봄볕 들까

by김도년 기자
2015.05.12 07:00:00

중동 저마진 프로젝트 감소…부동산 활성화 정책 효과 ‘톡톡’

[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한 증권사 건설담당 애널리스트는 지금의 건설업황을 ‘겨울이 지났다’고 표현했다. 그렇다고 봄볕이 따사롭게 내리쬐기 시작했다거나 녹음이 무성한 여름이 왔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작년 이맘때 대규모 어닝 쇼크로 시장의 ‘문제아’로 떠올랐던 건설업계로선 이 정도가 어디냐 싶다.

회사채 시장 전문가들의 판단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건설업은 SRE가 2009년부터 시작한 업황 악화 설문에서 한번도 다섯 손가락에 들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이번엔 순위권을 모처럼만에 벗어났다.

21회 SRE에서 ‘최근 6개월 내 업황이 나빠진 산업’을 묻는 질문에 건설업은 응답자의 4.6%(8명)만이 선택, 7위를 기록했다. 6.4%(11명)가 선택한 은행업종보다도 적었다. ‘최근 1년 내 업황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되는 산업’을 묻는 설문에는 39.9%(69명)가 선택, 당당히 1위에 올랐다.

SRE 자문위원은 이런 설문 결과에 대해 “과거에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중동 해외 사업장 관련 우려감이 있었지만, 시장이 어떤 곳에 리스크가 있는지 감을 잡은 것 같다”며 “올해 부동산 경기가 좋아지면서 미착공 현장을 털어낼 것이란 전망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업종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은 먼저 대형 건설사들의 중동 저마진 프로젝트 수주 잔고 비중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과거 2009년부터 2011년 당시 중동 수주 시장은 유럽발 금융위기에 따른 내수 부진을 탈피하기 위한 유럽 설계·조달·시공(EPC) 업체들과 우리나라 건설사들의 전쟁터였다. 저마진 입찰이라도 참여해 수주 기록을 쌓아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발주처의 까다로운 설계 변경 요구와 기자재 조달 지연, 공사 지역의 부족한 기반시설, 미숙련 노동자 문제 등 다양한 리스크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의 사우다이제이션(Saudization·자국민 의무고용정책)으로 미숙련 사우디아라비아인까지 노동자로 고용할수밖에 없게 되면서 원가율 상승과 발주지연에 따른 마진 훼손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던 것이다. 여전히 사우다이제이션을 겪고 있는 건설사들은 해외 사업에서의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중동 저마진 프로젝트 수주 잔고는 지난 2012년 말 전체 계약 잔고의 29%를 차지했지만 지난해 상반기에는 14%로 감소했다. 올해 말까지 이 비중은 5~7%로 빠르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또 중동 관련 프로젝트들은 지난 2013년부터 지난해에 걸쳐 대손충당금이 이미 반영된 상태이기 때문에 추가 손실 대응 여력도 어느 정도 확보됐다고 보고 있다.

중동 학습효과는 해외 수주 전략의 변화도 가져오고 있다. 국내 건설사들은 무차별적인 저마진 경쟁 수주를 벗어나 마진이 높은 공사를 선별 수주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동시에 단독 입찰보다는 컨소시엄 방식으로 참여, 리스크를 분산하고 있다. 지난해 3월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 GS건설, SK건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수주한 6조원 규모 이라크 카르발라 정유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부동산 활성화 정책과 저금리 기조로 국내 주택시장이 실수요자 중심의 회복기에 들어갔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건설사들의 골칫거리였던 미분양 아파트 세대수는 전국, 수도권 할 것 없이 최저점으로 떨어지면서 새로운 분양 수요가 주택 공급량을 빠르게 소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택시장 회복은 지표에서도 드러난다. 지난해 주택 매매거래량은 100만 5000호로 2013년과 2012년에 비해 각각 18.0%, 36.7% 상승했다. 주택 매매수급동향 지표도 수급 균형을 나타내는 100에 거의 근접했고 연도별 분양 물량과 연말 미분양 재고로 계산한 아파트 판매율은 2012년 대비 13%포인트 오른 90%를 기록, 2003년 수준을 회복했다.

당분간 저금리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아파트 평당 매매가 대비 전세 가격이 68%에 달하는 것도 재개발, 재건축에 따른 이주 수요와 함께 실수요자 중심의 매매 수요 기반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세련 KB투자증권 연구원은 “아파트 가격은 2013년 1분기부터 하락폭을 줄이다가 지난해 1분기부터 상승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며 “거래량과 가격 모두 2분기 연속 상승 기조가 유지되면서 부동산 사이클은 ‘불완전한 호황기’에 진입했다”고 분석했다.

류종하 한국신용평가 연구원도 “정부 정책은 지난해 부동산 소비 심리를 개선시켰고 올해에도 청약제도 간소화와 중계수수료 인하, 재건축 규제 완화, 공공택지 신규 지정 중단 등이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며 “저금리에 기반한 금융비용 부담 완화, 주택 소유자의 월세전환 선호에 따른 전세물량 감소로 당분간 주택경기 회복세는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올해 국내 부동산 경기는 낙관적이지만, 건설사의 잠재적 리스크는 여전하다. 건설사의 잠재 리스크를 살펴보는 대표적인 재무항목인 미청구공사는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다.

미청구공사는 건설사에는 수익으로 기록이 되지만, 발주처가 이를 반드시 줘야 할 의무는 없어 언제 손실로 돌변할지 모르는 금액이다. 건설사는 스스로 판단한 공사 진행률에 따라 발주처로부터 받아야 할 수익금을 미청구공사 항목에 기록한다. 만약 건설사가 예정대로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면 이 미청구공사는 손실로 전환된다. 미청구공사가 급격히 늘어나는 기업은 어닝쇼크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현대건설의 지난해 연결 재무제표 기준 미청구공사액은 5조 1010억원에 달했다. 전년대비 24.2% 늘었다. GS건설과 두산건설도 각각 22.0%, 20.6% 늘어난 2조 3815억원, 7902억원을 기록했다. 삼성엔지니어링, 대우건설 등 다른 주요 건설사들도 모두 6~8% 수준에서 늘어나는 모습이다. 중동 프로젝트에서의 공사 지연 문제 등이 이 같은 미청구공사를 늘린 주요 원인으로 풀이된다.

중동에서의 저마진 프로젝트 수주 잔고가 줄어들고 있지만, 해외 수주 시장에서의 복병은 유가다. 유가 하락으로 중동 산유국들이 재정적자를 입게 되고 이 때문에 정유, 화학 플랜트 공사 발주를 줄이게 되면 국내 건설사들의 타격도 불가피하다. 우리나라 건설사들은 최근 5년 동안 정유, 화학 플랜트 분야가 산업설비 공종의 성장세를 주도해 왔는데, 유가가 다시 오름세로 돌아서기까지는 해외 수주 호조를 장담하기 어렵게 된다. 이 때문에 증권업계에서는 국내 건설사들에 대해 당분간 국내 주택부문 호조를 기반으로 중동 의존도를 낮추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으로 판단하고 있다.

국내 주택 경기는 단기적으로는 호황을 보이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침체할 수밖에 없는 요인들이 더 많다.

주택 수요의 중요한 기반이 되는 3인 이상 가구가 계속해서 줄고 있는 데다 세대 수가 늘고 있는 2인 이하 가구의 경우 소득 수준이 낮아지고 있는 등 달라지고 있는 가구 구성은 부동산 시장을 낙관할 수 없는 요인이 되고 있다. 추계 상으로는 2020년까지 2인 이하 가구는 연간 30만 가구씩 늘어나는 반면, 3인 이상 가구는 7만~8만 가구씩 줄어든다.

노령화로 경제활동인구가 줄고 있는 것도 수요 측면의 부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일본은 도시 주거용 택지가격이 1980년대 중반까지 오르다가 90년대 이후 계속해서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는데, 우리나라도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국내 총부양비는 2013년을 기점으로 상승 국면에 들어갔는데, 인구 추계 상으로 2040년까지 65세 이상 노령 인구는 149.1% 늘어나는 반면, 15세~65세까지의 생산가능인구는 21.9% 줄어 총부양비가 77%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전자, 조선, 철강 등 주력 산업이 중국 등 신흥국과의 경쟁 심화로 침체 양상을 보이고 있고 이에 따라 경기 전반의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점도 주택 경기에 부정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

1000조원을 돌파한 가계부채도 주택 구매력을 약화시키는 대표적인 원인이다. 원리금 상환 부담으로 내수 경기가 위축될 수 있고 경기 부양을 위한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면 가계부채 부담이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면서 주택 구매 수요엔 부담이 될 수 있다.

특히 중동 등 해외 건설 현장에서의 잠재적인 부실이 계속해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지난 2013년 주요 건설사들이 해외 사업에서의 대규모 손실을 인식하긴 했지만, 여전히 2013년 이전에 저가에 수주한 물량이 6조원 가량 남아 있다.

맹주호 한신평 연구원은 “준공 시점에 인력과 비용이 집중적으로 투입되는 점, 손실의 주요 원인이 됐던 사우디아라비어의 자국민 우선고용정책 등이 계속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건설사의 어닝 쇼크는 반복해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21회 SRE’(Survey of Credit Ratings by Edaily)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21회 SRE는 2015년 5월11일자로 발간됐습니다. 문의: stock@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