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신 현대證 사장이 `스티브 잡스`가 된 이유

by정재웅 기자
2012.06.03 10:20:00

창립 50주년 행사서 `잡스式` 프레젠테이션 진행
"품질·신뢰·실천하는 창의력이 중요..반칙 용납 않겠다"
"'바이코리아'는 반쪽의 성공..위대한 증권사 만들겠다"

[이데일리 정재웅 기자] "생일 축하 합니다"

이어마이크를 낀 채 무대에 오른 그는 먼저 생일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조금은 상기된 목소리였다. 취임 이후 처음으로 300여 명이 넘는 청중 앞에 선 자리였다. 초반의 긴장은 어느덧 몰입으로 바뀌었다. 청중들도 그의 모습에 집중했다.

그는 시종일관 차분하지만 강한 어조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특히 회사의 비전이나, 자신의 원칙에 대한 대목에서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는 무대 양옆을 자연스레 오가며 마치 청중과 대화하듯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했다. 마치 '스티브 잡스'의 그것과 같았다.

김 신 현대증권 대표이사(사장)는 지난 1일 서울 남산 반얀트리에서 열린 '현대증권 창설 50주년 기념행사'에서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 이 자리는 50주년 기념식과 함께 지난 4월 현대증권의 수장을 맡은 김 신 대표의 취임식도 겸한 자리였다.
 
김 신 대표는 증권업에 대한 진단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갔다. 그는 "지난 2008년 리먼 사태이후 증시는 지금까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며 "자본시장법이 나올때만 해도 증권사들은 장밋빛 미래를 꿈꿨지만 3년이 지난 지금은 치열한 경쟁만이 남았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지금 폭포로 향해 달려가고 있는 배에 올라탄 것과 다름 없다"면서 "여러분들은 이 배의 방향을 돌리겠느냐, 아니면 그대로 폭포 아래로 떨어지겠느냐. 나는 이 배의 방향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 김 신 현대증권 대표이사가 지난 1일 서울 남산 반얀트리에서 열린 현대증권 창립 50주년 기념행사에서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고 있다.

폭포를 향해 가는 배로 말문을 연 김 대표는 작심한 듯, 그간의 생각들을 풀어 놓기 시작했다. 또 그의 프레젠테이션에는 폭스바겐의 검사원, 바티칸 궁전을 지키는 스위스 용병, 단순한 스케치에서 14년만에 작품으로 태어난 호주의 오페라 하우스 등 증권업과는 관련 없어 보이는 다양한 사례들이 등장했다.

김 대표는 "지금 현대증권(003450)에게 필요한 것은 품질 경영과 신뢰"라며 "폭스바겐이 도색 직전의 차량에 검사원들이 빼곡히 싸인을 남겨 놓은 것에서 폭스바겐의 무결점 품질 경영을 배웠고 스위스 용병이 로마 교황청, 프랑스에 보여준 신뢰에서 현대증권의 향후 나아가야 할 길을 보았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우리가 투자할 수 없는 상품을 고객에게 권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금융업에서 제일 어려운 A/S를 더욱 강화해 고객과 함께하고, 고객과 함께 보고, 고객과 함께 나가는 현대증권이 돼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까지 말한 모든 것을 우리 또한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며 "아는 것을 실천하지 않는 한, 실천적 창의력은 발휘될 수 없고 실천적 창의력이 발휘되지 않으면 발전과 혁신은 없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하지만 우리에겐 다행히도 실천적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많은 인재들을 이미 확보하고 있다"면서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실천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김 대표는 임직원들에게 두 가지 약속을 했다. 김 대표는 "절대로 반칙을 허용하지 않는 원칙 중심의 경영을 할 것"이라며 "눈 앞의 잠깐의 이익에 현혹되지 않고 공정한 평가를 통해 성과에 대해 제대로 보상하는 것은 물론, 반대로 규칙 위반시에는 엄정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올바른 투자를 하겠다"면서 "90년대 초반 한국 금융업계를 뒤흔들었던 ''바이 코리아''열풍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지만, 리슨크 관리실패로 반쪽의 성공밖에 거두지 못했다. 우리는 이미 성공반, 실패반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만큼 이를 통해 새로운 가치 창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우리가 최고 품질의 증권사가 되겠다는 선언은 시작에 불과하다"며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의 증권사를 만드는 것이 나의 꿈이다. 지난 50년에서 앞으로 100년으로, 좋은 증권사에서 위대한 증권사로 도약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청중들의 큰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함께 자리했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큰 박수로 김 대표를 응원했다.

현대증권 관계자는 "혹시나 해서 무대 앞에 프롬프터를 설치해뒀는데 김 대표가 원고를 외우다시피해서 진행했다"며 "며칠동안 홀로 프레젠테이션 연습을 엄청나게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했던 한 고위임원은 "현대증권이 그동안 보수적이고 변화에 순응하지 못한다는 이미지가 많았고, 실제로도 그랬다"면서 "하지만 이번 대표의 프레젠테이션, 새로운 광고 등으로 우리도 변해야 한다는 위기의식과 함께 변화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