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강종구 기자
2006.06.08 08:48:46
[이데일리 강종구기자] "인플레이션이 높은 수준에서 하락할 때 받게 되는 경제적 이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동시에 역사는 소비자물가 안정이 거시경제 안정을 보장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지 않아도 경제위기기가 발생한 적은 과거에도 여러번 있다. 생산성 향상으로 디플레이션이 발생했던 기간에 고속성장을 했던 역사도 있다. 최근 글로벌 경제의 구조적 변화는 이러한 역사가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것보다 훨씬 더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만약 그렇다면 물가안정을 추구하는 정책은 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으며, 최근의 상황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 초점을 맞추고 수행될 필요가 있다" (`Is price stability enough?` 올해 4월 BIS 발표)
요즘 채권시장에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성장이 앞으로 둔화될 것 같고, 이성태 총재도 5월에 올해 성장률 5%가 힘들 것 같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거기다 물가는 오르지도 않는데, 사실상 더 이상 콜금리를 올리기는 힘든 것 아닌가요"
이같은 예상을 하는 이유는 성장률이 예상보다 나오지 않거나 현수준보다 하락할 것으로 예상될 경우 콜금리 인상이 어렵고, 한국은행은 물가안정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물가가 오르지 않으면 콜금리 인상의 필요가 줄어든다는 믿음 때문이다.
앞으로 최소한 2~3분기동안에는 지난 3~4분기동안의 높은 성장세가 힘들다는 것이 한국은행을 비롯한 대부분 예측기관들의 전망이다. 또 물가는 혹시 오른다고 해도 고작해야(?) 현재 한국은행의 목표범위 하단을 간신히 상회하는 정도가 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은 금리인상 기조를 버리지 않고 있다. 콜금리를 동결한 지난 3~5월에도 여건이 되면 올리겠다는 시그널을 계속 줘 왔다. 이는 `동결`이라는 결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지난 석달동안의 통화정책방향 발표문을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지난달 금통위 다음날 한국은행의 한 고위 관계자는 "환율과 유가가 저모양으로 요동을 치는 상황에서 금리 올리자고 하는게 어디 쉽나. 그렇지만 우리가 지금 인상하자는 기조인데 그런 뜻은 발표문에 담아야 되지 않겠나"고 말했다.
지난달 금통위날 이성태 총재는 환율하락과 국제유가 급등이 성장률을 낮추는 쪽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해 5% 성장 회의론을 급속 유포시켰다. 그러나 그말만 한 것은 아니다.
"금통위 시각은 작년 하반기에 상당히 빨랐던 경기회복속도가 올해 들어 약간 감소 내지는 숨고르기 정도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중략) 금리나 유동성 면에서 볼때 통화정책의 기조는 아직까지 경기부양적인, 느슨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게 금통위가 보는 경제에 대한 근본적 시각이다." (5월 금통위 기자회견 모두발언 중에서)
이 총재는 지난달 금리동결의 이유를 환율급락과 국제유가 급등 때문이라고 했지만 환율이 오르고 유가가 내려야만 금리를 올릴 수 있다고는 하지 않았다.
"원유가격이 지금과 같은 수준에서 안정된다든가 떨어진다든가 달러에 대한 원화가치의 급상승이 급속히 진행되지 않는, 말하자면 지금보다 상황이 크게 나빠지지 않는다면 한은은 우리 경제가 그만한 압력 내지는 영향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한은이 과거 몇개월동안 취해왔던 통화정책의 방향은 유효하다고 말할 수 있다"(5월 금통위 기자회견중 답변)
5% 성장론을 불러왔던 발언도 다시 음미할 필요가 있다.
"내수 부문은 최소한 지금까지 나타난 실적은 당초 예상과 별로 다르지 않다. 단지 우리를 둘러싼 환경, 특히 우리 수입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원유가격이나 원화의 대외가치 등이 당초 예상보다 다른 경로를 가고 있다. 경제성장률로 보면 성장률을 낮추는 쪽으로 여건이 바뀌었다. 경제 흐름을 바꿀 정도가 되겠는지를 따져보고 있는데 현재까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경제성장 관련해서 말하면 그동안의 상황변화가 낮추는 쪽으로 전개는 됐지만 크지는 않고, 당초 예상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본다"(5월 금통위 기자회견중 답변)
종합해 보면 국제유가 급등과 환율급락으로 성장률은 5%를 약간 밑돌 가능성이 생겼지만, 유가가 `더 오르거나` 환율이 `급락`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가 충분히 견딜 수 있기 때문에 금리인상 기조는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통화정책의 적시성을 위해서는 다소의 불확실성을 감수하고라도 통화정책을 결정해야 한다"던 총재의 4월초 취임사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를 지난달 상황에 적용하면 환율과 유가의 방향이나, 그로 인한 경제충격이 매우 불확실해 금리인상을 늦춘 것이고, 향후 그 불확실성의 크기가 `다소`의 정도로 줄어들면 그때는 적시성이 우선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5% 성장률과 5%를 약간 밑도는 성장률은 얼마나 큰 의미의 차이가 있는 것일까. 혹시 `5%대 성장률`이란 우상에 사로잡혀 작은 차이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이총재나 한은은 그정도만큼의 의미부여를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은행도 성장을 추구하지만 `성장률`을 타깃팅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5%라는 성장률이 한은이 보기엔 결코 낮지 않은 성장률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성장률이 높은지 낮은지를 일률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아무래도 잠재성장률을 기준으로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한은이 보는 잠재성장률은 이미 4.6% 수준으로 낮아져 있다.
앞으로 남은 세분기 동안 얼마나 성장하면 5%가 가능할까. 이미 1분기에 전기비 1.2%를 벌어놓았기 때문에 세분기동안 평균 0.9%면 연간 5% 성장할 수 있다. 만약 매분기 0.9%씩 성장을 하게 된다면 전년동기대비 성장률은 4분기에 3%대로 하락하게 된다.
최근 한국은행 한 집행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한은이 봐야 할 것이 성장률만은 아니다. 길게 봐서 경제가 잘 굴러갈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너무 빨리 가면 고삐를 당겨야 하고,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지 않게 해야 하고,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너무 느리게 간다면 문제가 달라지지만 좀 늦게 간다고 채찍질을 하는 것은 한은에게 중요한 임무는 아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잠재성장률보다 못하게 성장을 하더라도 금리를 올려야 할 때가 있다. 하물며 잠재성장률보다 높게 성장하고 있다면 성장률을 다소 떨어뜨리더라도 위험요인을 되외시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경제가 장기적으로 안정성장을 하도록 하는 것이 한은의 궁극적 목적이라면, 안정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 한은에게 주어진 임무인 셈이다. 말하자면 한은은 브레이크인 동시에 지뢰제거반쯤 될까.
"중앙은행이란, 작동여부가 확실치 않은 나침반을 가지고, 통제여부도 불투명한 배를 운항하여, 불빛 하나 없고 풍랑이 이는 바다를 건너 목적지에 도달해야 하는 선장과 같다" (한국은행 발간 `우리나라의 통화정책` 중에서)
오는 16일 한국은행에서는 창립 56주년을 기념해 `2006 국제 컨퍼런스`가 열린다. 이 컨퍼런스는 아마도 앞으로 한은이 펼치는 금리정책을 해석하고 예상할 때 두고 두고 회자될 중요한 사건이 될 것 같다. 어쩌면 언젠가는 한국은행법 제 1조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예감마저 들게 한다.
이 법은 한국은행을 설립하고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하여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한국은행법 제1조)
이날 컨퍼런스의 주제는 이시대 전세계 중앙은행들의 화두이자 특히 물가안정목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은행으로서는 최대의 난제인 `저인플레이션하에서의 통화정책`이다. 장기간의 저금리로 인해 과다하게 풀린 유동성, 치솟는 자산가격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표범위를 하향이탈한 인플레이션하에서 한국은행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야흐로 저인플레이션 시대다. 중국과 인도가 수출하는 디플레이션이 전세계를 격랑처럼 휩쓸고 있다. 막강한 교섭력을 가진 대형 할인점들은 가격 인상을 막고 있고, 첨단기술의 등장과 글로벌 아웃소싱으로 생산성이 높아진 기업들은 제품가격을 올리지 않고도 더 많은 이익을 내고 있다.
물가안정목표제만 끌어 안고 있다가는 한은의 존재 이유가 사라질 판이다. 중국의 노동력과 미국의 자본이 글로벌 아웃소싱과 글로벌 금융을 등에 올라타 세계 어디든 가고 있다. 말 그대로 `생산요소의 무국적화`인 셈이다.
미국이나 일본 유로존처럼 기축통화를 가진 나라의 중앙은행들도 세계화의 물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판이다. 하물며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의 한국은행이 느끼는 무기력감은 얼마나 클까. 금리를 내린다고 경제가 살아나는 것도 아니고, 금리를 올린다고 물가를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물가가 안정적인 것으로 보여도 금융시장 어디선가 위험(결국엔 거품)은 자라게 마련이다. 그곳은 주식시장일 수도 있고 부동산일 수도 있고, 혹은 채권이거나 원자재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를 방치하다간 자칫하면 거품이 일거에 붕괴되면서 금융불안이 야기될 수 있고 그로 인해 실물경제가 심대한 타격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은이 새롭게 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 `금융안정`이다. 물가가 지금은 안정적일지라도 유동성이 갑자기 늘거나 줄면서 금리나 주가, 환율의 급변동을 야기하는 것을 막아야 금융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고 그래야 장기적인 물가안정과 경제의 안정성장을 함께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안정에서 범위를 좀 더 좁히면 한은이 정조준하고 있는 곳은 부동산가격인 것으로 보인다.
"금통위에서 관심을 갖고 보는 분야가 역시 자산시장 및 금융동향인데 부동산 주택 아파트 가격은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통화정책당국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한편 금융쪽에서는 지난 3~4월에 은행들의 대출 증가폭 등이 빨라졌다."(이성태 총재 5월 금통위 기자회견 모두발언 중에서)
"저인플레이션 정착과 함께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중앙은행들은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유동성이 증가하면서 급등세를 보이고 있는 자산가격을 통화정책에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이성태 총재 16일 한은 국제 컨퍼런스 `모시는 글` 중에서)
그러나 한국은행이 부동산가격과 금융안정의 깃발을 들고 조기에 콜금리를 올릴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을 사고 있다. 정책효과를 극대화하고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시장과 충분한 대화를 통해 이해를 나누었어야 하지만 그같은 노력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최근 수개월 동안의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 나타난 바에 따르면 한은 집행부와 금통위원의 경기관은 상당한 괴리를 보이고 있다. 환율에 대한 전망이나 시각도 다르다. 이같은 괴리는 시장으로 하여금 "한은 집행부가 금리인상을 원해도 금통위는 다른 생각을 할 것"이란 기대를 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