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물품 쌓아둘 곳 없어 고물상에 넘기는 상황입니다"
by김영환 기자
2024.09.12 05:35:02
[절망의 자영업자]②황학동 땡처리 상가에도 창업 위한 발길 끊겨
최악으로 치닫는 소상공인 지표…코로나급 악재 직격탄
코로나19 이후 처음 자영업자 6개월 연속 감소
내수 회복 신호도 보이지 않아 더 문제
"취약 자영업자 위한 대책 마련 시급"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지난 9일 오후 2시께 찾은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가구 거리에서 만난 한 상인은 이처럼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당장 작년만 하더라도 가게를 새롭게 연다면서 필요한 물품을 문의하는 사람들이 제법 됐는데 이제는 아예 찾는 사람조차 없다”고 한탄했다.
거리에는 실제 3~4명의 손님들만 제품 문의를 하고 있었을 뿐 손님보다 오히려 가게를 지키고 있는 상인들이 더 많았다. 주방 물품을 알아보러 왔다는 한 손님은 “기존에 쓰던 냄비를 바꾸기 위해 왔다”며 “예전에 비하면 손님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황학동 주방·가구거리는 주로 폐업한 자영업자들이 한 푼이라도 건져보고자 쓰던 물품을 중고로 판매하는 ‘땡처리 상점’들이 즐비한 곳이다. 최근 경기 악화로 음식점 신규창업자가 줄면서 중고물품 판매보다는 폐업에 따른 중고물품만 쌓여가는 상황이다.
이곳에서 10년째 주방용품을 팔았다는 박모씨는 “코로나 때는 국가에서 재난지원금을 주니 그래도 먹는 장사는 되는 편이었다”며 “최근에는 기존 단골고객 중에서 장사가 잘 되는 분들이 가게 확장관련 문의가 올 뿐, 새로 가게를 차리기 위해 황학동을 찾는 사람들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했다.
그러면서 “매출이 1년 전의 50%로 팍 줄었다”라며 “팔리지 않는 물건을 쌓아둘 공간이 없어서 오래돼 안 팔릴 것 같은 물건은 그냥 고물상에 넘기기까지 했다”라고 덧붙였다.
자영업자 감소세는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7월 자영업자는 572만 1000명으로 전년동기대비 6만 2000명 가량 감소했다. 지난 2월부터 6개월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자영업자가 6개월 연속 감소한 것은 코로나19 이후 처음이다.
더 큰 문제는 자영업자 사이에서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인 ‘나홀로 사장님’이 지난달 427만 3000명으로 지난해 7월보다 11만명 가량 급감했다. 11개월 연속 감소세다.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가 4만 8000명 가량 증가해 144만 8000명이 된 것과 대조된다. 경기가 좋을 때는 나홀로 사장님이 고용원을 늘려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로 전환하기도 하지만 최근 경기를 고려하면 폐업률이 높아진 것으로 해석된다.
올 상반기 폐업을 이유로 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지급된 노란우산 공제금도 7587억원에 달한다. 전년동기대비 13.8%나 늘어난 수치로 이 역시 사상 최대치다. 지난해 사상 최대치 기록을 올해 다시금 경신했다.
대출로 버티던 소상공인들은 높은 노동시간에도 불구하고 겨우 빚을 갚는 데 허덕이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소상공인 37.1%는 월평균 휴일이 7일 이하인 것으로 조사됐다. 일주일에 채 2일을 쉬지 못하고 가게를 여는 것이다. 신용보증재단중앙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소상공인이 갚지 못해 지역신용보증재단(지역신보)이 대신 갚은 은행 빚만 1조221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4.1% 급증했다.
문제는 경기 회복 시그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매달 집계하는 체감경기지수(BSI)는 8월 55.4으로 7월(54.5)에 비해 소폭 상승했다. 다만 BSI는 100 미만의 경우 경기 실적이 악화됐음을 뜻하는 지수로 여전히 소상공인들이 느끼는 경기는 악화일로인 상황이다. 추석을 끼고 있는 9월 BSI 전망 지수는 82.8로 이 역시 지난해 9월 98.0에 비해 기대감이 낮아진 상황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자영업자는 완전히 내수 경기로 먹고 사는데 우리나라 가계수지가 2년째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소비위축이 올 수밖에 없다”라며 “코로나 이전부터 5~6년째 이어진 경기 불황의 여파로 자영업자 폐업률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자영업자 중에서도 취약한 상황에 있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생계는 꾸릴 수 있도록 그 계층에 대한 지원책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