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개발 '니치버스터' 시대 개막…국내 바이오벤처에 기회

by강경훈 기자
2017.08.10 06:04:00

개발비·안전성 이슈로 블록버스터 개발 요원
대형 제약사, 신기술 바이오벤처 협력 필수
국내 바이오벤처 기술 선진국과 대등
생태계 성장 지속 위한 장기 정책 필요

1

신규 투자 대상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인터베스트 이태용(오른쪽) 대표와 임정희 전무.(사진=강경훈 기자)
[이데일리 강경훈 기자] “앞으로 블록버스터 신약은 더 이상 나오기 힘들 겁니다. 대신 의료와 IT가 접목된 맞춤의료, 디지털헬스케어, 인공지능과 새로운 진단법 등을 기반으로 하는 니치버스터(niche buster)의 시대가 올 겁니다. 국내 바이오벤처의 기술수준은 세계 무대에 내놓아도 결코 떨어지지 않습니다. 창업환경도 우호적으로 바뀐 만큼 이런 기회를 활용한다면 충분히 도전해 볼만하다고 봅니다.”

이태용(58) 인터베스트 대표는 현 시점을 “제약업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고 있는 중대한 시점”이라고 정의했다. 그가 제시한 근거는 이렇다. 화이자, GSK, 노바티스 등 글로벌 제약사들의 최근 연평균 성장률은 1~3%대에 머물고 있다. 환자 보호와 안전이 강조되면서 임상시험은 더 어려워지고, 시간은 더 오래 걸리면서 비용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데 허가에 성공하는 약은 매년 20개 안팎에 불과하다. 1990년대에는 많게는 1년에 60개의 신약이 쏟아져나오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그동안 연간 수조원의 매출을 안겨줬던 블록버스터 약물은 지속적으로 특허만료가 다가오고 있다. 바깥 사정도 썩 좋은 편이 아니다. 세계 각국 정부가 재정 건전성을 위해 약가인하나 제너릭·바이오시밀러 같은 대체제 우대정책을 펼침에 따라 제약사들이 ‘돈 벌기 어려운 세상’이 오고 있다.

인터베스트는 국내 최대 바이오벤처 투자 캐피털 중 하나로 전체 운용자산이 4360억원에 이르며, 이중 30여개 바이오벤처에 1300억원을 투자하고 있다. 대부분이 니치버스터 관련 기업들이다. 신약개발은 성공률은 1% 미만이지만 성공하면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이오투자를 총괄하는 임정희 인터베스트 전무는 “유전자분석, 마이크로비옴(인체공생 미생물), 세포 내 치료기술, 줄기세포 등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유전체 분석을 통한 개인별 맞춤의료 같은 새로운 진단법이나 유전자 편집·마이크로비옴 같은 기존에 없던 치료법, 희귀질환 치료제 ‘니치버스터’ 분야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눈독을 들이는 분야”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개발 과정에서 독성이나 효과 미비 등으로 탈락하는 수백 수천개의 후보물질 중 일부는 특정한 사람들에게 효과가 있을 수 있다”며 “유전자 분석을 통해 효과를 볼 사람을 미리 알 수 있으면 신약 개발이 훨씬 쉬워진다”고 말했다.



최근 제약업계의 화두는 오픈 이노베이션이다. 자체적으로 연구를 하기 보다는 외부에서 유망한 기술을 조달하는 게 오픈 이노베이션의 특징이다. 미국 버텍스는 유전자가위치료법 바이오벤처인 크리스퍼 테라퓨틱스에 2조6000억원을, 암젠은 이중표적항체치료제 바이오벤처인 젠코어에 1조7000억원을 각각 투자하는 등 이미 오픈 이노베이션은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그동안 남을 따라하는 ‘미투(too me)’ 전략에 의존했던 국내 제약사들이 글로벌 제약사들과 대등한 경쟁을 펼치기 위해서는 혁신기술을 가진 기업과의 오픈 이노베이션이 필수로 여겨지고 있다. 이 대표는 “자본이 있는 대형 제약사나 기술이 있는 바이오벤처나 모두 각자의 힘만으로는 생존이 어려워 오픈 이노베이션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생존전략으로 자리잡고 있다”며 “국내 바이오벤처의 경쟁력은 오픈 이노베이션에 상당히 유리하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내 대표적인 오픈 이노베이션형 바이오벤처인 툴젠은 전세계에 3곳에 불과한 유전자가위 개발 기업 중 한 곳이고, 천랩은 마이크로비옴 후보균 데이터베이스가 탄탄하다. 또 오름테라퓨틱은 암세포 안으로 항체치료제를 전달하는 원천기술을, 싸이퍼롬은 유전체 분석을 통해 약물 부작용을 예측하는 솔류션을 개발했다.

이런 바이오벤처가 연구개발을 특화시키고 대형 제약사가 오픈이노베이션으로 이를 상용화하는 생태계가 구축되기 위해서는 벤처캐피탈, 정부, 재무적 투자자(LP)의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업계의 판단이다. 이 대표는 “바이오기술은 개발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바이오벤처를 지원하는 벤처캐피탈이나 LP가 장기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단기적인 성과에 신경쓰면 생태계가 풍성해지지 못한다”고 말했다.

◇니치버스터: ‘커다란 틈새시장’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표적항암제, 자가면역치료제 같은 수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큰 시장을 형성하던 블록버스터와 달리 개개인의 유전적 특성에 맞는 맞춤의학을 기본적인 접근법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