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송길호 기자
2017.04.06 06:00:00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 구조조정의 지휘관은 곡예사와 같다. 아찔한 외줄 위에선 자칫 조그만 실수도 용납 되지 않는다. 허점을 보이면 곧바로 반격을 받게 마련. 구조조정의 칼잡이는 그래서 부실과의 전쟁, 바로 그 한복판에서 논란의 파고를 홀로 헤쳐나가기 어렵다. 구조조정의 동력이 원맨 플레이보다는 유기적인 파트너십을 통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대우조선 회생방안을 내놓은 금융당국이 곤혹스러운 모습이다. 수주전망에 대한 안일한 상황인식, 추가 자금 투입 약속 번복, 그에 따른 밑빠진 독 물붓기식 자금 지원, 대마불사론에 따른 모럴해저드 유발. 구조조정 과정에서 제시될 수 있는 각종 비판들이 거세게 몰아친다.
눈여겨 볼 대목은 전쟁터의 한복판에 유독 금융위원장 임종룡만 보인다는 점이다. 직접 구조조정의 플랜을 짜고 이를 실천에 옮기고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설득까지 1인3역이다. 국정공백으로 마비된 청와대의 정책조율기능을 기대하기는 무리. 하지만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할 부총리도, 구조조정의 한 축을 책임져야 할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모두 한발 뒤로 물러선 모습은 납득하기 어렵다. 홀로 고군분투(孤軍奮鬪)하는 모습. 구조조정 컨트롤타워는 오작동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김대중 정부 초기 경제정책 라인은 드림팀으로 불렸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진가는 드러났다. 청와대 경제수석 강봉균이 밑그림을 그리면 재정경제부 장관 이규성이 이를 지원하고 금융감독위원장 이헌재가 칼을 휘둘렀다. 스포트라이트는 야전사령관이 받았지만 그 배후엔 든든한 후원군이 있었던 셈이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조조정이 비교적 일사불란(一絲不亂) 하고 강도 높게 진행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규성의 리더십, 강봉균의 기획력, 이헌재의 돌파력, 바로 삼위일체의 앙상블이었다.
경제 전반의 부실과 전면전을 벌였던 외환위기 당시와 지금 상황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 정치 경제적 상황, 금융산업의 발전 정도가 다르고 구조조정의 범위와 규모도 차이가 있다. 하지만 지금 정치적 행정적 재정적 지원이 빈약하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더욱이 의사결정 단계에선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조화를 이루며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할 경제팀이 불협화음을 내며 힘이 분산되고 있는 모습은 유감이다.
구조조정은 설득의 과정이다.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손실분담, 대규모 구제금융 모두 무능과 부정에 대한 보상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경제 금융시스템의 안정이라는 ‘혜택’이 추가 지원이라는 ‘비용’보다 훨씬 크다는 점을 납세자에게 납득시키기란 녹록지 않은 일이다.
전면에서 진두지휘하는 야전사령관이 이 모든 비판을 떠안는 꼴이니 구조조정에 탄력이 붙을리 없다. 외환위기 당시에도 부실규모 산정 오류, 그에 따른 공적자금 추가 투입 논란 등 각종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이 구조조정을 담대히 진행할 수 있었던 건 청와대나 재경부가 이에 공동 대응하며 긴밀히 협력한 결과다.
임종룡은 이번 대우조선 정상화 방안을 (관료생활) 마지막 졸업작품이라고 했다. 변양호 신드롬이 팽배한 현실에서 보신과 안일의 울타리를 벗어나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나서는 관료가 있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경제라인 전체의 힘이 하나로 결집되지 않은 채 이뤄지는 나홀로 구조조정으로는 한계가 있다. 모든 구조조정의 성공 그 밑바탕에는 공조의 미학이 작용하는 법. 지금 같은 모래성체제로는 구조조정의 복잡한 실타래를 풀어 헤치길 기대하는건 언감생심(焉敢生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