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 서가]②박원순 시장 “99대1 불평등…사회· 경제 몰락의 원인”

by정태선 기자
2016.09.28 06:30:00

노벨경제학상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 ''불평등의 대가''
재벌 중심 틀 갇힌 한국경제 역동성 상실해 성장 못해
저자 만나 한국에 적용할 실천모델 먼저 만들자 제안도
시장실패 원인은 정치실패, 불통을 소통으로 바꿔야 해소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명사의 서가’ 박원순 서울시장 인터뷰
[이데일리 정태선 기자] “대한민국에 불이 났습니다. 불평등, 불공정, 불합리, 불통. 4불(不)로 꽉 막혀 있지 않습니까?”

박원순 서울시장이 진단하는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이다. 그는 이데일리와 가진 명사의 서가 인터뷰에서 최근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학 교수가 2012년 발간한 ‘불평등의 대가’를 꼽았다. 박 시장은 북미 순방길에서 그를 직접 만나 오랜시간 깊은 교감을 나눴다고 했다.

“뉴욕을 가는 12시간 동안 ‘불평등의 대가’를 빨간 줄을 그어가며 정독했어요. 99대1의 사회현상과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더라고요. 전율을 느낄 정도로 공감할 수 있었죠. 이런 내용을 보다 발전시켜 최근 나온 책이 ‘리라이팅 더 룰스 오브 아메리칸 이코노미(Rewriting the rules of American Economy)’죠.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캠프의 정책과제를 집약한 책인데, 미국사회의 뿌리가 깊은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 미국경제의 규칙을 바꿀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스티글리츠 교수를 만나 미국은 워낙 큰 사회라 바꾸기 힘드니, 한국에 적용할 실천모델부터 먼저 만들어보자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박 시장은 “‘불평등의 대가’는 99대 1의 사회, 즉 1%가 너무 많은 경제적 효과와 소득을 독식하면 시장의 역동성이나 효율성, 지속가능성을 해치고 사회·경제가 몰락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하고, 부자들의 낮은 세 부담의 문제, 완전고용이나 재정정책의 종언 등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박 시장은 스티글리츠 교수와 미국뿐 아니라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에서도 서로 의견 일치를 봤다고 했다. 바로 일자리다. 박 시장은 완전 고용이 결코 꿈이 아니라는 게 스티글리츠 교수 조언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완전고용은 가능합니다. 정부가 투자를 해야죠. 대량 해고, 구조조정, 비정규직 증가 등으로 국민의 호주머니가 텅 비었어요. 구매력이 낮아지니까 일자리 대부분을 창출하는 중소기업이 어려워지고, 중소기업이 어려워지니 일자리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거죠. 정부가 돈을 풀어서 고용을 늘리면 근로자의 수입이 생기고, 이를 생활에 쓰면 중소기업의 매출이 증가해 거둬들이는 세금도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듭니다. 완전 고용이 결코 꿈이 아니라는 게 스티글리츠 교수의 조언이었는데 굉장한 시사점을 얻었습니다.”

대기업 중심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우리 경제가 역동성과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역시 99대 1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문제다.

“대기업이 아무리 성장하고 수익률을 높인다고 해도, 윗목에서 아랫목으로 돈이 내려오지 않잖아요. 대기업 월급은 계속 올라가는데 이걸 유지하기 위해 중소기업을 약탈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죠. 정부가 엄격하게 통제하고 보호해야 하는데 사법부, 검찰이나 공정거래위원회 등 대기업을 감시해야 할 정부기관도 재벌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정부의 제도와 자원도 이들 1%를 지원하는 데 편중돼 있어요.”

박 시장은 1%를 위한 사회는 역동성이 사라져 경쟁력을 잃고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 10대 기업을 보면, 3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도 거의 순위에 변화가 없어요. 반면 구미선진국을 보면 3년만에도 새로운 기업이 등장해 순위가 바뀌는 사례가 많습니다, 보수적인 일본조차도 30대 기업을 보면 주류회사인 산토리만 10년 전 그대로이고 다 바뀌었습니다. 혁신과 역동성이 경제를 이끌어 가야 하는데 우리 경제는 성장동력이 식어버렸어요. 경제정의가 실종되면서 사회적 불만과 불평등, 불공정이 뿌리내렸기 때문입니다.”



박 시장은 ‘4不’가운데 불통을 우선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3不’(불평등·불공정·불합리)은 불통을 소통으로 바꾸면 해결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불안사회, 불공정사회, 불평등사회가 심각하지만, 소통이 있으면 많은 전문가와 시민이 함께 문제를 인식하고 대안을 찾을 수 있어요. ‘불평등의 대가’를 읽고 스티글리츠 교수를 만나 얘기하면서 찾은 해법이에요.”

박 시장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불평등 뿐 아니라 경제난에도 정치의 책임이 크다고 했다.

“우리는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고 하지만 진짜 문제는 정치에요. 시장 실패가 경제를 망가트린 1차적인 원인이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보면 정치가 경제 실패를 만들거나 방임, 치유하지 못한 탓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더 근본적으로 보면 국민에게 선택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그런 정치를 하는 정당을 뽑는 것도 있구요. ”

박 시장은 시대정신인 불평등 해소와 경제민주화에 대한 해법 모색을 위해 최근 경제서적과 미래비전에 대한 서적을 많이 읽고 있다고 했다. ‘블평등의 대가’ 외에도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쓴 ‘왜 분노해야 하는가?’, ‘한국의 자본주의’ 등을 비롯해 한국 산업의 미래를 위한 제언을 담은 ‘축적의 시간’(서울대 공대·한종훈), 미·중관계를 심도깊게 분석한 ‘프레너미’(박한진·이우탁) 등이 최근 탐독한 책이다.

“누가 되고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정신이 있는 겁니다. 지금은 정권이 교체돼야 하고, 시대가 교체되고 미래가 교체돼야 합니다. 어떤 비전과 어떤 청사진을 지닌 사람이 어떤 정부를 탄생시키느냐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지금이 바로 시대의 교체, 미래의 교체 시기인 것입니다.” 야권의 대권 잠룡으로 꼽히는 박 시장이 인터뷰 말미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1956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다. 경기고 졸업 후 서울대 사회계열에 합격했으나 유신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제적됐다. 4년 뒤 단국대 사학과에 다시 입학해 학사학위를 받았다.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대구지방검찰청에서 1년간 검사 생활을 했다. 1983년 변호사 개업후 본격적으로 시민운동에 투신했다. 역사문제연구소 초대 이사장(1986년)을 시작으로 참여연대 사무처장(1995년),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2001년), 희망제작소 상임이사(2006년) 등 대표적인 시민운동가로 활동했다. 현재는 35~36대 서울특별시장이다.

막사이사이상, 불교인권상, 심산상, 단재상 등을 수상했으며 ‘희망을 걷다’, ‘내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고문의 한국현대사’, ‘국가보안법 연구 등 공동 집필을 포함해 50여권의 저서를 펴냈다.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명사의 서가’ 박원순 서울시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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