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톺아보기]나폴레옹의 모자가 땅을 사다

by박수익 기자
2016.05.14 09:10:00

엔에스쇼핑 자회사 엔바이콘이 파이시티 부지 인수
자체자금외 2500억원 차입해 조달…회사채 발행
이자받던 회사가 이자내는 회사로…무배당정책 논란
본업의 현금창출력은 건재…투자자 신뢰의 문제



[이데일리 박수익 기자] 나폴레옹이 쓰던 모자가 2014년말 유럽의 경매시장에 나왔습니다. ‘바이콘’이라고 부르는 두 개의 뿔(이각·二角)이 달린 모자인데, 키가 크기 않았던 나폴레옹이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이 모자를 가로로 썼다는 속설도 있습니다. 아무튼 그 모자 하나가 26억원(188만유로)에 팔렸는데요, 금액 못지않게 화제가 됐던 것은 모자를 낙찰받은 사람이 한국인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주인공은 닭고기업체 하림(136480)으로 유명한 하림그룹의 김홍국 회장이었어요.

오늘의 주제는 나폴레옹의 모자가 땅을 샀다는 얘기입니다. 종목명은 하림홀딩스(024660)의 자회사인 엔에스쇼핑(138250)(NS쇼핑)입니다.

엔에스쇼핑이 최근 공시한 내용을 보면 자회사 엔바이콘(N-BICORNE)이라는 회사에 500억원 유상증자를 했습니다. 5월 중에 한 차례 더 엔바이콘이 유상증자를 하고 거기에 또다시 엔에스쇼핑이 참여한다는 내용도 공시에 있습니다. 엔바이콘의 ‘엔(N)’은 회사이름의 첫 글자를 뜻하기도 하지만 나폴레옹(Napoleon)의 ‘N’을 동시에 의미하고 ‘바이콘’은 모자입니다. 그러니까 엔바이콘은 ‘나폴레옹의 모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엔에스쇼핑의 모회사 하림그룹의 총수 김홍국 회장이 나폴레옹 모자를 구입한 것과 연장선에 있는 이름이죠. 김 회장은 당시 나폴레옹 모자를 구매한 이유를 “나폴레옹은 끝없는 도전과 개선을 상징하는 인물이어서 평소 존경했다”고 밝혔습니다. 그의 철학이 엔바이콘이라는 회사의 사명에도 녹아든 셈입니다.

엔바이콘은 최근 하림그룹이 매입키로한 땅(파이시티·서울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을 인수하는 주체입니다. 나폴레용의 모자가 땅을 사는 셈이죠. 하림그룹은 이 땅을 개발해 물류단지와 연구개발(R&D센터)로 활용한다는 계획입니다. 땅을 매입하는 주체는 엔바이콘이지만, 자금줄은 엔에스쇼핑입니다. 엔바이콘은 명목상의 회사이고, 엔에스쇼핑이 유상증자해준 자금으로 엔바이콘이 매입하는 것입니다.

엔에스쇼핑이 지난 10일 증권신고서를 제출했습니다. 증권신고서라는 것은 회사가 주식을 발행하는 유상증자나 채권을 발행하는 방식을 통해서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집할 때 의무적으로 금융감독원에 제출하는 서류입니다. 투자자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돈을 집어넣어선 안되기 때문에 투자위험요소 같은 것을 쭉 설명해놓는 장문의 서류입니다. 엔에스쇼핑은 회사채를 발행하려고 증권신고서를 제출했습니다.

증권신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회사채 발행총액(1500억원)과 무관하게 2500억원 범위에서 수량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이 얘기는 회사채 발행이나 유상증자를 하면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주문을 접수하는 수요예측을 하게 되는데 이때 주문이 많이 들어오면 발행금액을 더 늘리겠다는 의미입니다. 말 그대로 2500억원 어치 주문 들어오면 회사채 2500억원을 발행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어도 엔에스쇼핑은 땅 매입대금 중 절반이 넘는 2500억원을 외부에서 빌리기로 했기 때문에 회사채 발행으로 부족한 금액이 발생하면 금융권 대출로 충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빌린 돈 2500억원을 어디에 쓰느냐. 바로 ‘나폴레옹의 모자’ 엔바이콘에게 유상증자 형태로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엔바이콘은 그 돈으로 땅을 사는 것이고요.

엔에스쇼핑 상장이후 주가 추이
결국 홈쇼핑 업체인 엔에스쇼핑이 땅을 쇼핑하는 셈인데요. 이번에 매입하는 땅은 9만1000제곱미터, 평수로는 2만7000평 정도입니다. 땅 자체는 싸게 산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공매로 산 땅인데 최초 공매가격이 1조원이었지만 계속 유찰이 되면서 가격이 하락했고, 결국 4520억원에 낙찰을 받았습니다. 공시지가(5900억원)에 비해서도 낮습니다.

땅은 싸게 산 것 같은데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빌려야 하는 상황이어서 재무적으로는 부담이 있습니다. 엔에스쇼핑은 작년말 기준으로 현금성자산(현금+단기금융상품) 2000억원이 있고, 영업으로 얼마를 벌어들이느냐는 지표인 에비타(EBITDA)가 연간 1000억원은 나오는 곳입니다.

개인에 비유하면 월급도 많고 예금도 있어서 이자수입이 짭짤한 상황이었죠. 그렇게 제법 풍족했던 엔에스쇼핑이 갑자기 땅 사겠다고 돈을 2500억원을 빌리는 상황입니다. 그동안 이자를 받던 사람이 앞으로는 이자를 내는 상황이 돼버린 모양새입니다. 실제로 엔에스쇼핑은 그동안 연간 40억원의 이자수입이 들어오던 곳인데 이제는 반대로 연간 70억원 가량의 이자를 내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돈을 빌리는 결정을 누가 했느냐는 것인데요. 자본금 50억원의 엔바이콘이 지난달 28일 이사회를 열어 2500억원의 파이시티 매입 결정을 했습니다. 혼자 결정할 순 없고 결국 실제로는 엔바이콘의 모회사 엔에스쇼핑, 그리고 엔에스쇼핑의 모회사인 하림그룹의 의사결정에 따라서 한 셈이죠. 파이시티를 꼭 사야겠는데 엔에스쇼핑이 다른 계열사보다 비교적 돈을 잘 벌고 형편이 좋으니까 대표로 나서서 자금을 마련하는 것으로 역할분담이 이뤄진 셈입니다.

엔에스쇼핑은 작년 3월27일 코스피시장에 상장했습니다. 당시 공모가격이 23만5000원인데 지금 주가가 16만원대여서 공모가 보다 낮습니다. 무엇보다 상장 이후 배당을 하지 않았습니다. 현금성자산 2000억원 있고 매년 1000억원을 영업으로 버는 회사라고 말씀드렸는데 상장 후 배당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보는 시각에 따라선 주주정책이 실망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배당하지 않던 엔에스쇼핑이 그룹정책에 따라 땅 매입자금 4500억원을 마련하기 위해 보유현금 2000억원을 소진하는 동시에 2500억원을 외부에서 이자를 주고 빌리게 됩니다. 지배구조 리스크, 투자자와의 신뢰 문제도 거론됩니다. ‘나폴레옹의 모자’를 개인돈으로 사는 것과 회삿돈으로 사는 것은 다릅니다. 특히 그 회사가 본업과 무관한 곳에 비용을 지출하느라 주주들을 신경쓸 겨를이 없다면 논란의 지점은 분명합니다.

엔에스쇼핑은 앞으로도 당분간 배당정책이 불투명할 수 있습니다. 엔에스쇼핑은 회사채를 3종류 발행하는데 1년 6개월, 2년, 3년이내에 만기가 돌아옵니다. 만기별 최소 금액이 500억원이며 발행금액에 따라 더 될 수도 있습니다. 회사채 만기 때마다 꼬박꼬박 상환하겠다는 재무정책을 펼친다면, 그 기간에는 최소한 벌어들인 돈을 우선 회사채상환에 투입하면서 배당 여유가 그만큼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죠.

주요 홈쇼핑 5개사 취급고 순위(단위: 억원, %)
자료: 한국기업평가
엔에스쇼핑은 홈쇼핑 업체 중 5위입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선 채널이 14번입니다. 홈쇼핑은 정기적으로 재승인을 받아야 하는 문제를 제외하면 특별히 대규모 투자가 집행되는 것은 많지 않다고 합니다. 내수경기 급격히 침체되거나 평판리스크 같은 것이 없다면 어 느정도 꾸준한 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입니다. 또한 이번에 매입하는 땅에 대한 개발 인허가를 받아서 잘 개발하면 일부는 하림그룹이 쓰고 상당수는 외부에 분양하거나 매각해서 투자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인 요인이 될 것입니다. 엔에스쇼핑이 땅값을 조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출한 증권신고서는 방대한 분량입니다만 이 문구에 모든 것이 담겨 있는 듯 합니다. 회사측이 작성한 내용입니다.

“(이번에 매입한) 부지는 향후 하림그룹의 물류단지 및 R&D센터로 개발하고 자체 활용뿐 아니라 건물 임대를 통한 추가 수익 창출을 도모할 예정입니다. 해당 부지가 강남권 교통 요지이며 (중략) 당사가 그룹 및 회사 자체 활용의 목적으로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다는 점은 향후 장기적인 그룹 성장전략 차원에서 긍정적인 시각이 존재합니다. (중략) 개발 관련 인허가가 아직 진행 중이라 완공까지 시간을 알 수 없는 상황, 홈쇼핑사업과 개연성이 없는 비관련 사업다각화로 회사 자원이 그룹사를 위해 활용되는 모습, 현 시점에서는 취득자산이 미래에 어느 규모의 수익창출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 가늠하기 어려운 바 대규모 자산인수에 대한 불확실성이 상존하니 투자시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