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은의 지구 한바퀴]⑪`토레스 델 파이네`를 품다
by김재은 기자
2015.08.01 06:00:00
[이데일리 김재은 기자] 오늘은 토레스 델 파이네(파이네의 탑) 일일 트레킹을 하는 날.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쨍하게 맑다. 파이네 3봉도 저 멀리 선명히 보인다.
| 사진 오른쪽 저 멀리 보이는 토레스 델 파이네의 3봉. 사진=신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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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캠프 파타고니아에서 파이네 3봉까지는 왕복 8시간정도 걸리는 만만치 않은 거리다. 하지만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의 ‘백미’인 토레스 델 파이네를 가까이 보지 않고선 내내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아 트레킹을 가기로 결정했다. 어떻게 온 남미인데, 어떻게 온 파타고니아인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날씨부터 확인한 우리는 이른 아침을 먹고 트레킹 채비를 했다. 8시간이 걸리는 산행이라 점심에 먹을 샌드위치도 직접 쌌다. 호텔에서는 트레킹 숙박객을 위해 샌드위치 재료들을 늘어놓고, 취향껏 넣어 포장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사실 이 샌드위치 가격도 풀보드 식사에 포함됐으리라….)
가이드 3명에 숙박객 등 20명 남짓한 인원은 토레스 델 파이네를 가까이 보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 가이드 중 리더는 “오늘같은 날씨는 일주일에 단 1~1.5일에 불과하다”며 “당신들은 정말 행운아”라며 엄지를 치켜 세웠다.
| 빙하가 녹아 흐른 호수와 만년설로 덮힌 토레스델파이네 산맥들. 사진=김재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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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날씨는 쨍하게 맑고, 햇살은 빛났다. 분명 우리가 묵은 호텔에서 저 산 넘어 오른쪽(동쪽)에 토레스 델 파이네가 있는데 가이드는 자꾸 우리를 반대편인 서쪽(왼쪽)으로 걷게 한다. 길이 없어서겠지만, 그렇게 구비구비 돌아 토레스 델 파이네 속살을 하나하나 만나며 걷는다.
| 트레킹중에 만난 안내 표지판. 자연친화적이고 귀여워 보인다. 사진=김재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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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만년전 화강암으로 형성된 토레스 델 파이네(파이네의 탑)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다양한 곳들을 거쳤다. 우리나라처럼 나무가 울창하고, 계곡 물이 흐르는 곳을 지나 처음보는 이끼들이 나무를 차지한 습지, 이름 모를 빨간 꽃들과 빙하가 녹아 생긴 에메랄드 빛 호수가 조화를 이루는 입이 딱 벌어지는 풍경까지….
| 오두막에서 바라본 토레스 델 파이네 공원 풍경. 화강암과 푸른 숲이 대조를 이룬다. 사진=김재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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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 세시간을 걷자 중간에 쉴 만한 오두막 같은 곳이 나왔다. 화장실도 가고, 목도 축이고, 간식도 먹는다. 화장실은 별도의 이용료를 내야 했다.
한 10여분 휴식을 취한 뒤 또 다시 걷는다. 날씨가 어떨지 몰라 파카에 바람막이까지 껴입고 걷자니 다소 더운 느낌도 든다.
길을 따라 걷자니 왼쪽엔 푸르른 나무들이 무성하고, 오른쪽엔 시커먼 점판암에 하얀 눈이 쌓여있다. 분명 기후는 비슷할 텐데 이렇게 대조적인 풍경이 펼쳐지니 신기하기만 하다.
| 돌무더기를 지나는 중에 저 멀리 토레스 델 파이네 3봉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김재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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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걷고 또 걸으니 토레스 델 파이네의 꼭대기 부분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화강암들이 무성히 쌓인 돌 산을 지그재그로 걸어 올라 드디어 최종 목적지인 토레스 델 파이네에 닿았다.
아침을 먹고 출발해 4~5시간은 족히 걸은 것 같다. 토레스 델 파이네를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에메랄드 빛 호수를 머금은 이곳엔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날아갈 것 같다는 표현이 적확하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11월인데도 바람이 차다. 다시 털 모자를 꺼내 쓰고, 옷을 여몄다.
| 파타고니아 백미 토레스 델 파이네서 점프샷. 안타깝게 끝부분이 잘렸다. 사진=가이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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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보고싶던 토레스 델 파이네를 배경으로 점프샷도 찍고, 기념샷을 원없이 남겼다. 토레스 델 파이네는 사진으로 너무 많이 봤는지, 좀 익숙하다. 에메랄드빛 호수는 신비롭기 그지없고, 뒤에 우뚝 솟은 파이네의 3봉은 웅장하기만 하다. 단렌즈로 한 번에 담기엔 무리다.
| 에메랄드빛 호수와 파란하늘, 파이네 3봉이 조화롭다. 사진=김재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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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레스 델 파이네엔 화강암으로 이뤄진 3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가장 높은 봉우리는 파이네그란데(가운데)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죽기전에 꼭 가봐야 할 50곳중 하나로 토레스 델 파이네를 꼽기도 했다. 다른 건 몰라도 파타고니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절경임엔 틀림없다.
| ‘바람의 땅’ 파타고니아답게 바람이 무척 거셌다. 털모자에 장갑까지 완전 무장했다. 사진=신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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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레스 델 파이네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마친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널찍한 바위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불어오는 세찬 바람탓에 바위 아래 몸을 피할 수밖에 없다. 아침에 싼 샌드위치를 꺼내 먹는데 돌처럼 차갑다. 배가 고팠지만, 너무 차서 제대로 먹기 힘들다. 대충 절반정도 먹고 포기했다.
바로 눈앞에 펼쳐진 토레스 델 파이네 풍경은 먹지 않아도 배부를 정도다. 역시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문득 돌아갈 생각을 하니 다리가 벌써부터 후들거린다.
꿈같은 시간은 너무나 빨리 지나간다. 얼마쯤 지났을까. 가이드들이 우리를 불러모은다. 내려가는 건 3시간~3시간반정도면 된다고 하는데,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 내려오는 길에 만난 계곡과 푸른 나무들. 뒷쪽으로 화강암으로 이뤄진 산들이 자리한다. 사진=김재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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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을 이루고 내려오는 길은 길기만 하다. 신랑이랑 도란도란 얘기하고, 동영상도 찍고 했지만, 아직도 한참이나 남았다. 그렇게 걷고 또 걸어 절반쯤 왔을까. 돌무더기가 있는 내리막길에서 그만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말았다. 긴바지를 입어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무릎이 아린 게 까진 듯 하다. 그래도 호텔까지는 아직 많이 남았기에 기운을 내 걷는다.
| 다양한 풍경이 공존하는 토레스 델 파이네. 사진=김재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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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갈 때와 동일한 코스지만,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어 그런지 또 새로운 풍경들이다. 내려올 때 만난 풍경들이 좀 더 여유있고 운치있게 다가오는 건 목적을 이룬 자의 여유인걸까?
| 빙하가 녹아 흐른 호수의 푸르름이 싱그럽다. 사진=신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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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걷고 걸어 무사히 에코캠프로 돌아왔다. 아침을 먹고 9시쯤 출발한 우리가 숙소에 돌아온 시간은 5시가 다 될 무렵이었다.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들자 갑자기 허기가 밀려왔다. 아직 저녁시간까지는 2시간정도 남았는데…. 다행히 우리에겐 푼타 아레나스에서 산 비싼 컵라면과 햄, 아스트랄 캔맥주가 있다.
순식간에 싹 해치우고 나니 피로감이 찾아왔다. 발에는 물집이 잡혔고, 무릎은 생채기가 났지만, 다시 생각해도 놀랍기만한 풍경이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잠시 잠을 청한 우리는 에코캠프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먹고, 짐을 꾸렸다. 내일은 또 이동해야 한다. 칠레에 속한 토레스 델 파이네에서 아르헨티나에 속한 엘 칼라파테로 간다.
| 에코캠프 파타고니아의 자연친화적인 모습. 사진=김재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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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 도착한 첫 날에 교통편을 묻던 우리에게 걱정말라던 지배인은 이제서야 다들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가는 손님밖에 없다고 한다. 우리는 다시 돌아갈 시간이 없기에 어떻게 해서든 차편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신랑은 돈이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무조건 칼라파테에 가는 차편을 구해달라고 했다 한다.
별이 쏟아질 것 같은 에코캠프에서의 마지막 밤을 아쉽게 보낸다. 설령 남은 여생동안 남미를 다시 오더라도 여기를 또 오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지금이라도 온 게 다행이라고 위안해본다.
내일은 드디어 아르헨티나 엘 칼라파테로 간다. 파타고니아 지역에서 국경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페리토 모레노 빙하를 볼 수 있는 곳이라 설렌다. 남극이나 북극이 아니어도 빙하를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난 이때만해도 미처 몰랐다. 국경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인지….)